법문·칼럼

관세음 관자재보살 / 일타 큰스님

선바우1 2019. 4. 21. 21:27





        관세음 관자재보살 / 일타 큰스님 불자들이 자주 암송하는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의 첫머리는 '관자재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 오온이 모두 공함을 비추어 보시고 일체 고액을 건너가게 되었다.'는 구절로 시작된다. 관하는 것이 자재한 보살, 즉 마하반야 그 자체가 되신 분이 관자재보살이며, 반야의 활용이 자유자재한 분이 관자재보살인 것이다. 관자재의 '관'은 곧 반야이다. 관자재보살의 관은 '볼 관'자이지만, 눈으로 보는 관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는 관'이다. 마음으로 보는 것이 자재한 분을 관자재보살이라 하는 것이다. 그분은 중생의 고통을 귀로써 듣는 분이 아니다. 그분은 중생들이 호소하는 모든 고통의 소리를 마음으로 보고 마음으로 듣는 분이다. 마음으로 보고 마음으로 중생의 고통을 관하여, 무한 자비를 베풀고 중생의 영원생명을 일깨우는 분이다. 이렇게 마음을 관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게 되면 모든 중생들을 보살피는 대자대비의 마음이 저절로 일어나지 아니할 수 없게 된다. 그 사람의 입속에는 언제나 향기가 가득 차 있기 때문에 말 한마디를 하더라도 그 말은 온통 향기로 가득하여 모든 사람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안겨 주고, 그 사람의 얼굴을 보는 모든 사람의 마음이 푸근해지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입가에는 언제나 미소를 띄우는 사람이요. 가슴에는 태양을 안고 사는 사람이며, 언제나 희망과 용기가 가득 차 있으니 기쁘구나! 즐겁구나! 편안하구나! 좋고 좋은 것뿐이다. 뜨거우면 따뜻해서 좋고, 차가우면 시원해서 좋고 좋다. 좋은 것뿐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반야의 빛이요 관자재의 묘한 작용인 것이다. 나아가 이 자재로운 마음이 밖으로 밖으로 퍼져나갈 때, '세계는 하나의 꽃'이 된다. 자재롭고 기쁘고 즐거운 내 마음을 따라 온세계는 밝고 맑고 깨끗한 한 송이 연꽃으로 피어나는 것이다. 관자재보살은 바로 온세계의 한송이 꽃으로 피어난 분이다. 세계를 한 송이 꽃으로 삼고, 세계를 기쁨과 즐거움이 가득한 꽃으로 피어나게 하려는 것이 마하반야를 체득한 관자재보살의 서원이요 진면목인 것이다.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한다. 참된 반야는 곧 바로 자비로 통한다는 것을. 깊은 삼매는 반야를 길러내고, 반야의 대광명은 마하의 대자대비를 발현하는 것이다. 도인은 그 깊은 삼매 속에서 이와같은 경지를 얻었던 것이다. 내 얼굴을 보는 사람이나 내 이름을 듣는 사람이 모두 해탈의 경지에 이르는 동체대비의 경지. 바로 관자재한 관세음보살의 경지에 이른 것이다. 우리가 염불을 하든 참선을 하든 주력을 하든, 꿈 속에서도 생시에도 한결같이 염할 수 있는 삼매의 경지에 이르면, 그 삼매로부터 무한의 능력은 저절로 샘솟게 되고, 모든 문제는 저절로 해결된다. 이것은 우리 모두가 원래부터 갖추고 있는 본연의 자아에서 우러나오게 된다. '영원생명, 무한능력'의 마음을 바깥세계로 흩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마하의 마음을 집중하고 한 곳으로 모아 삼매를 이룰 때 반야의 지혜는 용솟음치게 되며, 그 반야는 모든 중생을 해탈의 길로 인도하는 관세음보살의 동체대비로 이어지는 것이다. 구도자는 거듭거듭 이것을 마음에 새기면서 수행하여야 한다. 오매일여寤寐一如의 삼매야말로 자타일시성불도로 나아가는 참 해탈의 길임을 불자들은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나무 관세음보살 - '일타 큰스님 법문' - 그 림 / 불모 본연문도님[해수관음보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