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으로

조선시대 최고의 막말 왕 정조(正祖)

선바우1 2019. 11. 6. 15:56




조선시대 최고의 막말 왕 정조(正祖)





조선 22대 왕 정조가 신하에게 보낸 비밀 편지가 발견됐다.

정조의 꼼꼼한 성격, 막후 정치의 실체가 여실히 드러난다. 9일 성균관대 동아시아 학술원은

정조가 친필로 쓴 299통의 편지를 공개했다. 1796820일부터 1800615일까지

작성된 편지로 정조가 노론(老論) 벽파(僻派)의 지도자 심환지(17301802)에게 보낸 편지다.  

 

정조는 편지를 없애라는 지시를 계속 남겼다.불에 태워라.”, “찢어버려라.”,

세초하든지 돌려보내든지 하라.는 등의 문구가 다수 확인된다. 하지만 심환지는 편지를 읽고

나서 즉시 없애라는 정조의 명령을 거부하고 어찰을 고스란히 보관해 뒀다. 어찰을 받은

날짜와 시간을 기록해 어찰의 작성 시기도 명확하게 남겼다.  

 

편지를 통해 대립각을 세웠던 인물로 알려진 심환지를 자기 사람으로 만들려던 정조

노력을 엿 볼수 있다. 정조는 자신의 건강 상태 같은 기밀도 편지 첫머리에 써서 알려줘 심환지

에게 그에 대한 자신의 믿음을 보여 주려 한 것으로 보인다.  

 

간밤에 잘 있었는가. 나는 곽란(癨亂)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데 며칠 동안

괴롭게 앓고 있다. 정사년(1797) 15.”

 

며칠 동안 소식이 없었는데 편지를 받으니 마음이 놓인다. 나는 시사(時事)가 눈에 들어

오지 않는다. 일마다 그저 마음 속에 불길이 치솟게 만들 뿐이다. 불은 심장에 속하니, 여기에

따라 안화(眼花)가 나을 기미가 없으니 너무나도 안타깝다. 동문(洞門) 무오년(1798) 78.”

 

격정적인 군주, 정조

 

성균관대 동아시아 학술원이 9일 발굴해 공개한 정조의 비밀 편지는 지금껏 알려져 있던

정조의 이미지와는 상당히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탕평책을 시행하고 문치(文治)를 내세워

개혁 군주이자 실학(實學) 군주로 일컬어지는 인물이 정조.  

 

그러나 이번에 발굴된 편지는 정조가 과격한 언사를 서슴지 않았으며, 정치적 공작에도

상당히 능한 임금이었음을 드러낸다. 또한 정조가 노론(老論) 벽파(僻派; 다수 강경파)

대립하면서 남인(南人), 노론 시파(時派; 소수 온건파) 등을 고루 등용했다는 탕평

(蕩平)의 정치 구도도 보다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심환지에게

 

갈수록 입조심을 안하는 생각없는 늙은이 같으니.., 개에 물린 꿩 신세(犬囓之雉),

꽁무니 빼다(拔尻), 마누라 장의(抹樓下長衣). 정조가 우의정 심환지에게 보낸 편지에

등장하는 문구들이다. 정조는 이처럼 구어적 표현뿐 아니라 저잣거리의 표현이나 비속어도

가리지 않고 편지에 썼다.

 

측근으로 알려진 서영보(1757~1824)에게 호로자식(胡種子)으로 표현하는가 하면,

 

김매순(1776~1840)에 대해서는

입에서 젖비린내 나고 미처 사람 꼴을 갖추지 못한 놈과 김이영(金履永)처럼 경박하고

어지러워 동서도 분간 못하는 놈이 편지와 발문으로 감히 선배들의 의론에 대해 주둥아리를

놀렸다. 정말 망령된 일이다.면서 비난을 퍼붓는 내용이다.  

 

황인기김이수에게

이놈들이 어떤 놈들이기에 주뒹아리를 함부로 놀리느냐!

 

서매수에게

늙고 힘 없는...”

 

김의순에게

사람 꼴을 갖추지 못하고 졸렬한...”

 

이노춘에게

약하고 물러터진 X

 

그 외에

개에 물린 꿩 신세, 볼기까고 주먹 맞기 등의 속담도 마구 구사하였다.

오장에 숨이 반도 차지 않았다.”

도처에 동전 구린내를 풍겨 사람들이 모두 코를 막는다.”  

 

빡치느라 마구 쓰다보니

놈들이 한 짓에 화가 나서 밤에 이 편지를 쓰느라 거의 5경이 지났다.

내 성품도 별나다고 하겠으니 우스운 일이다.

 

이건 마치 너무 황당하고 화가 나 정신없이 천플을 달며 키배를 벌이다 보니

새벽이 된 이치와 같다.

 

편지를 쓰다가 중간에 자를 세 번 써서 呵呵呵

이 단어의 의미를 찾자면 껄껄껄 요즘 식으로 하면 ㅋㅋㅋㅋㅋㅋ 

 

그는 경연 중에

경들에게는 더 배울 것도 없다. 하며 경연을 폐지하기도 하였으며,

신하에게 대놓고 공부 좀 하시오. 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또한 그는 담배를 정말 사랑하여 신하들의 빗발치는 금연 상소도 물리치고 끝까지

담배를 피웠으며  심지어 조선의 대학자들을 모여놓고 시험 주제로 담배를 내기도 하였다.

 

심지어 한문 편지 한 가운데 近日僻類爲뒤 쥭박 쥭之時, 有時有此無根之라는 부분이

보인다. , 한글로 뒤쥭박듁(뒤죽박죽)이라고 갈겨 쓴 부분도 있다. 흥분해서 말하다가

너무 빡쳐서 생각이 마땅한 한자가 생각이 안났는지 한글로 뒤 쥭박 쥭이라 적어주는

센스를 발휘하기도 하였다.

 

비밀스러운 편지임을 감안하더라도 정조가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경우에 따라 격한

감정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성격이었음을 보여준다. <조선왕조실록> 등의 자료에도 정조

현릉원(사도세자의 묘)을 참배하면서 감정이 북받쳐 우는 부분 등이 묘사돼 있지만,

이번에 발굴된 편지는 훨씬 적나라한 정조의 인간적 면모를 담고 있다.

 

특히 구어를 마구 섞어 쓴 문체는 기존에 알려졌던 문장가 정조의 이미지와 판이하게

다르다. 공식 사서(史書)들은 정조가 북학파 실학자 박지원(1737~1805)의 <열하일기>

대해 글이 순정(醇正)하지 못하다.”며 고쳐 쓸 것을 명할 정도로 문체에 있어서

엄격했다고 기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