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의 유래
최초 소주의 증류 기술은 고려말로 보인다.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으로 불리는 지봉유설에는
소주 기술이 몽골에서 들어왔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개경, 안동, 제주도 등에는 몽골의 세력이 강했는데
지금도 이곳에서 유래한 전통 소주가 있다.
개경은 감홍로, 제주도는 고소리술, 그리고 안동은 안동소주다.
하지만 이 술들은 당시 너무나도 귀했던 존재였다.
당시 기술로는 막걸리(6도) 10병 있어야
이러한 소주 1병(45도)이 나올 정도였기 때문이다.
보다 대중적인 소주는 1900년대 등장한다.
대표적인 소주가 인천의 조일소주다.
말 그대로 조선과 일본의 합작법인이다.
당시 소주는 연회 및 고급 식사 자리에 나타났다.
여전히 고급의 위치를 가진 것이다.
1920년대는 소주공장이 본격적으로 생긴다.
지금도 있는 진로, 무학 등이이 시기에 생겼다.
안동에서는 안동주조회사라는 곳에서 최초로 소주가 나오게 된다.
그렇다면 당시 이 소주들은 무엇으로 만들었을까?
1928년 기록을 보면
소주 원료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섬라미수입격증’(暹羅米輸入激增)이라는 내용이다.
여기서 ‘섬라’(暹羅)는 바로 태국.
가격이 저렴하고 발효가 잘 돼서 당시 소주 원료로 많이 사용되었다.
한 마디로 100년 전 소주는
장립종 안남미로 만든 것이 많았던 것이다.
(사진설명 일제강점기 시절의 양조장 모습)
해방 이후에는 독특한 명칭의 소주가 많았다.
‘삼미’ ‘백구’ ‘제비원’ ‘금성’ ‘금련’ ‘삼학’ 등이 대표적이다.
이 중 1960~1970년대 초반을 풍미했던 소주가
바로 목포의 삼학소주다.
워낙 인기가 많아 가짜 소주까지 나올 정도였고,
창립자가 가수 남진의 부친이라 더욱 유명했다.
1970년대 시대의 대표적 소주는
‘됫병 소주’다. 일명 댓병소주라고 불린
바로 1.8ℓ의 거대한 소주다.
되는 부피를 표현하는 단어로 1.8ℓ를 나타낸다.
소주 1홉(合)은 180㎖, 되(升)는 1.8ℓ, 말(斗)은
18ℓ를 뜻하는 의미다.
그래서 1.8ℓ는 됫병이 맞다.
됫병은 일본 한자로 대병(大?)이라고 부른다.
이 음을 따온 것이라면 댓병 또한 맞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홉, 되, 말이라는 용어와 용량(부피)은
일본이 정리한 표현이라는 것이다.
됫병 한병 마셔도 다음날 숙취는 없다
왜냐면 다다음날 일어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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