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문·칼럼

초계(草繫)와 아주(鵝珠)

선바우1 2019. 11. 14. 14:17




초계(草繫)와 아주(鵝珠) 重戒如佛하면 佛常在焉이시니 須草繫鵝珠로 以爲先道니라 중계여불 불상재언 수초계아주 이위선도 계율 존중하기를 부처님 모시듯이 하면 부처님은 언제나 곁에 계신다. 초계(草繫)와 아주(鵝珠) 스님처럼 계율을 스승으로 삼을지어다. 초계(草繫) 어떤 비구가 길에서 도적을 만나 얼마 되지 않는 옷가지와 갖고 있던 물건들을 다 빼앗겼다. 도적들은 관청에 가서 바로고발하지 못하도록 풀줄기로 비구를 묶어 놓고는 멀리 도망가 버렸다. 발가벗긴 채로 숲 속에서 풀줄기에 묶여 있던 비구는,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행여나 풀줄기들이 끊어져 풀들이 상할까봐 염려해 되도록 가만히 있었다. 밤이 되면 찬 바람에 몸이 떨렸고, 한낮에는 뜨거운 햇살에 온몸이 벌겋게 불덩어리처럼 달아올랐다. 독충이나 벌레에게 물렸어도 움직이면 풀이 끊어져 상할까봐 가만히 이 모든 고통을 억지로 참아내었다. 그때 마침 사냥을 나왔던 임금이 벌거숭이로 약한 풀줄기에 묶여 고통스럽게 꼼짝 않는 이상한 비구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비구를 풀어준 뒤 불살생의 계율을 지키기 위하여 온갖 고통을 참아내고 있던 비구의 사연을 알게 된 왕은 크게 감명을 받고 부처님의 가르침에 귀의하게 되었다. 이 비구를 이때부터 ‘풀에 묶인 비구’라고 하여 초계(草繫) 비구라고 불렀다.
아주(鵝珠) 또 옛날 어떤 비구가 구슬을 줄에 꿰어 목걸이를 만드는 집으로 탁발하러 간 일이 있었다. 집 주인은 임금님의 값비싼 마니주 구슬을 줄에 꿰고 있다가 스님이 오자 공양 올릴 음식을 가지러 부엌에 들어갔다. 마당에 서 있는 스님의 붉은 가사가 투명한 구슬에 비치자 구슬이 적홍색으로 변하였다. 갑자기 거위 한 마리가 나타나서는 그 구슬을 고기살점인줄 알고 먹어버렸다. 주인은 음식을 가지고 나왔다가 구 슬이 없어진 것을 보고는 비구를 의심하였다. 다짜고짜 탁발하려고 서 있는 비구한테 없어진 구슬을 내놓으라고 다그쳤다. 그것이 없어졌기 때문에 다급해진 주인은 비구를 도둑으로 몰고는 잡아 묶어 마구 때렸다. 훔친 구슬을 내놓으라는 것이었다. 모든 것을 다 놓아버리고 무소유(無所有)의 삶을 사는 비구가 그것을 훔칠 까닭은 조금도 없었다. 그러나 그 상황에서 비구를 의심하는 일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렇다고 하여 비구가 거위가 삼켜버렸다고 하면 당장에 거위를 잡아 죽일 것이었다.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쓴 비구는 모진 수모와 곤욕을 달게 받으면서도 거위의 생명을 지켜주려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화가 많이 난 주인이 휘두르는 몽둥이에 비구의 온몸은 상처투성이가 되고 붉은 피가 흥건하게 흘러나왔다. 그때 구슬을 삼켰던 거위가 벌겋게 흘린 피를 먹으려고 기웃거리다가 그만 홧김에 주인이 마구 휘두르는 몽둥이에 맞아 죽어버렸다. 그때서야 비구는 “내가 거위의 생명을 살리고자 이 모진 고통을 참아내고 있었는데, 이제 거위가 죽어버렸기 때문에 구슬이 사라진 이유를 더 숨길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당신이 음식을 가지러 부엌에 들어간 사이 갑자기 이 거위가 나타나 구슬을 고기살점으로 알고 삼켜 버렸으니, 이제는 죽은 거위 뱃속에서 그 구슬을 찾을 수 있을 겁입니다” 라고 사실대로 말하였다. 주인은 눈물을 흘리며 참회하고 진심으로 부처님께 귀의하였다. 이때부터 이 비구를 거위와 구슬의 이야기를 엮어 아주(鵝珠) 비구라고 불렀다.
초계와 아주 비구 이야기는 <대장엄경론>에 실려 있다. 하찮은 풀줄기와 거위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스님들이 모진 고통과 곤욕을 달갑게 받아들인다는 이야기는 어떤 면에서 요즈음 사람들이 선뜻 이해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그것을 계율에 얽매인 융통성 없는 짓이라고 웃어넘기기에는 무엇인가 아쉬운 점이 있다. 오히려 가슴 찡하게 생명의 존엄성을 지키고자 하는 성스러운 마음을 그 모습에서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맑고 바른 마음으로 실천하는 삶의 계율이야말로 모두가 함께하는 행복한 삶의 주춧돌이자 깨달음으로 가는 첫 걸음이 된다. 이를 알고 계율 존중하기를 부처님 모시듯 하면 바로 눈앞에서 부처님의 세상이 나타날 것이다. 重戒如佛하면 佛常在焉이시니 須草繫鵝珠로 以爲先道니라 계율을 중하게 여기기를 부처님 모시듯 한다면 부처님이 항상 곁에 계시는 것과 같다. 모름지기「풀에 매어 있고, 거위를 살리던」이러한 옛 일로써 본보기를 삼아야 한다는 말씀임을 새겨 두어야 할 것이다. 붓다 뉴스에서 발췌 / 원순 스님 (송광사 인월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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