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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亭 卞寬植 이야기

선바우1 2018. 1. 31. 19:46



小亭 卞寬植 이야기



소정 변관식


20세기가 되기 직전의 조선에 태어난 변관식(1899-1976)은

가장 한국적인 화가라 평가받는 화가입니다. 정식으로 교육을 받은 것도 아니면서,

그리고 시대의 화풍에 따라가는 것도 아니면서 말입니다.

단지 직접 눈으로 익히고, 발로 밟으면서, 스스로 개발해낸 화법을 이용하여

아름다운 이 땅의 산수를 그려낸 화가 변관식.

그는 조선의 대표적 명산인 금강산을 직접 사생하는 몇 안되는 사람들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그는 중국의 수묵화법에만 의존하던 시대에, 우리나라 특유의

수묵 산수화풍을 창조해낸 화가이기도 합니다.

황해도의 한의사의 아들로 태어난 변관식의 어머니는

구한말의 유명한 화가였던 소림 조석진의 딸이었습니다.

화가인 외할아버지를 둔 덕분에 그는 자연스럽게 붓과 그림을 접하게 되었죠.

그리고 초등학교 시절부터 외가댁에 머물던 그는 할아버지의 제자들이 하는

그림 공부를 어깨너머로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변관식이 17세가 되었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22세 때 외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그리고 23세 때는 어머니와 부인마저 잃게 되죠. 크게 상심한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세상을 떠돌아 다니는 유랑을 시작했습니다.

너무나 외로웠던 그는 그 다음해에 재혼을 하기도 하지만 그 또한 오래가지는 못했구요.

그렇게 일찍 익숙하게 된 고독감이 그를 외곩수로 만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본에서 몇 년간 그림 공부를 하고 돌아온 소정은 몇몇 전시회에 작품을 출품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방랑벽은 여전했고, 그는 해방이 되던 마흔 살이 될 때까지

전국을 돌아다니며 그림을 그렸습니다.
이렇게 직접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느낀 조국의 산천은 그의 예술의 근간이 되어 주었지요.


그의 예술은 기교적이거나 세련된 면보다는 향토적 서정미가 물씬 풍기며,

순박하고 서민적인 향취가 서려있습니다. 특히 시골 풍경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도,

자신만의 독자적인 화풍을 펼쳐보였지요. 게다가 그는 “내가 이 단소를 잘 불었는데,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서 그림에도 장단과 가락이 있어야 한다는 거지.” 라며 취미인

단소불기를 수십 년간 즐기기도 했습니다.

그러한 음악적 풍류가 그의 그림 곳곳에 서려 있답니다.

1954년, 방랑의 길을 떠난 지 17년 만에 서울로 돌아온 그는 여러 전시회의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하고, 개인전도 여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학연과 지연 등으로 나뉘어진 당시의 한국 화단을 개탄하고, 비리로 얼룩진

국전에 대해 <공정을 잃은 심사>라는 고발문을 신문에 내기도 하였습니다.

심지어는 심사위원 들끼리 모여 식사를 하던 중 노수현이라는 다른 화가에게

냉면 그릇을 집어 던지기도 했답니다.

이런 저런 일들로 당대의 화단과는 담을 쌓고 독자적인 활동을 계속해 나갔으나,

변관식의 예술은 오히려 이 시기부터 더욱 성숙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전의 방랑 시절, 많이 보았던 금강산에 대한 그림을 활발히 그리기 시작하였으며,

몇몇 작품은 국가간의 선물로 외국에 보내지기도 했죠.

그의 그림들은 선과 먹 그리고 여백이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기존에 수묵화에서 사용되던 방법들 외에도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들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진한 먹을 튀기듯 찍어서 선을 기이하게 만들고,

역동적인 구도를 개발하기도 하였습니다.

그의 산수화는 현대적으로 재창조된 조선 전통의 아름다움으로 채워졌습니다.

“나 죽으면 봐!” 라고 늘상 말했던 것처럼, 평생 야인으로 살았던 소정은

생전에는 그의 작품의 가치에 미치는 인정을 받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1976년, 20년이 넘게 살아온 그의 돈암동 자택에서 세상을 떠난 후,

화가로서의 위대한 진가를 인정 받게 되었습니다.




 


[ 누각청류 (1939) ]
세상을 방랑하며 지내던 시절, 어느 시골 길에서 만난 풍경인가 봅니다.
계곡 아래에서 위에 있는 무지개 다리와 누각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 풍경을 보고 있는 그의 마음은 정말 평화롭고 고요할 듯 합니다.
이 그림은 실경을 직접 사생하면서 그린 그림인데요,
특별히 그가 새로운 형식을 연구하던 중의 화풍으로 여겨집니다.


[ 설경 (1943) ]
한겨울, 소담스럽게 내린 눈으로, 더욱 고요한 산 속에 파묻힌 초가집과 그 풍경입니다.
소정은 눈이 덮힌 나뭇가지들과 화려한 자태의 산세를 매우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또한 유랑 중에 만나 조선의 산세인 듯 합니다.

[ 조춘 (1944) ]
이 그림도 변관식 특유의 아주 작게 찍은 점들과 짧게 터치한 단필 등이 화면 한 가득 그려져 있습니다.
겨울을 막 지나 이제 새싹이 돋아나는 나무들이 산줄기를 따라 웅장하게 펼쳐져 있습니다.
기존의 수묵화들과 다르게 청색과 녹색 그리고 주황색 등 화려한 색상을 사용함으로써
봄이 오는 생기를 충분히 느끼게 하고 있습니다.

[ 농촌의 만추 (1957) ]
농촌의 늦은 가을 풍경 모습을 섬세하게 그린 것이 매우 인상적이죠.
묘사된 표현만 보아도 그가 얼마나 정성을 들여 그림을 그렸는 지 느끼게 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 보는 독특한 시선을 가지고 있는 작품이죠.
다각적인 위치에서의 시점을 구사하여 역동적이고 생동감 있게 느껴집니다.


[ 외금강 삼선암 (1959) ]
그의 수많은 금강산 그림 중에 그 가치를 더욱 인정받고 있는 그림인데요,
독특한 시선으로 산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과 먹빛의 강렬한 인상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는 금강산을 머릿속으로만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발로 걸으면서 여러 각도에서
보았기 때문에 구상되어질 수 있었던 화면입니다.
화면 왼편으로 약간 치우친 앞 봉우리가 그림을 안정감이 있으면서도,
더욱 웅장한 느낌을 주게 합니다.

[ 내금강 진주담 (1960) ]
동판화인 듯, 혹은 펜으로 날카롭게 그린 듯, 그런 착각을 불러 일으킬 만큼
섬세하게 표현된 작품입니다.
외금강을 그린 작품에서는 남성스러운 웅장함이 느껴지는 반면,
내금강을 그린 작품에서는 섬세하면서도 부드러운 여성스러움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특히 싱그러운 나뭇가지 아래로 흐르는 맑은 물줄기가 더욱
그림을 운치있게 하고 있습니다.

[ 옥류청풍 (1961) ]
이 그림도 금강산의 한 풍경을 그린 작품인데요, 이 역시 위에서 아래로
계곡을 바라 보고 있는 독특한 구도의 작품입니다.
그림 위에는 ‘시를 짓는 것은 형태없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며,
그림을 그리는 것은 말없는 시를 짓는 것이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왕유의 제시가 적혀 있습니다.
아무래도 계곡 아래에 있는 선인들이 그렇게 시를 읊으며 즐기고 있는 듯 하네요.

[ 비폭도 (1965) ]
마치 살아 있기라도 한 듯한, 짧고 힘있는 필치들이 산세와 나무,
그리고 계곡을 이루고 있습니다. 조그만 집들이 모여있는 마을 뒤,
동산 위에 있는 소나무들은 기이할 정도로 크게 그려져 있네요.
아마도 이 소나무 숲이 마을을 지켜주고 있는 모양입니다.
평화롭고 정겨운 우리의 농촌이고 산촌입니다.

[ 산촌 (1969) ]
운치있는 먹빛과 짧은 필치의 나무, 그리고 산세의 아름다움이 잘 느껴지는 작품이죠.
산등성이를 따라 끊임없이 이어지는 나무들의 모습에서 끈기와 질긴 생명력을 느끼게 됩니다.
이러한 생명력이 조선 땅에 흘러 우리 민족의 기운이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 금강산 단발령 (1974) ]
금강산에 있는 단발령(斷髮嶺)은 소정 뿐만 아니라 겸재 정선과
이인문과 같은 화가들도 많이 다룬 풍경인데요,
 변관식은 이 그림으로써 또 하나의 예술적 정상에 다다른다는 평가를 받게 됩니다.
화면 전체에 가득한 시원스런 동세와 변화에 놀라고, 그 풍경이 무수한 점들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놀라게 됩니다.
선과 먹, 그리고 여백의 조화가 잘 이루어진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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