小亭 卞寬植 이야기
소정 변관식 20세기가 되기 직전의 조선에 태어난 변관식(1899-1976)은 가장 한국적인 화가라 평가받는 화가입니다. 정식으로 교육을 받은 것도 아니면서, 그리고 시대의 화풍에 따라가는 것도 아니면서 말입니다. 단지 직접 눈으로 익히고, 발로 밟으면서, 스스로 개발해낸 화법을 이용하여 아름다운 이 땅의 산수를 그려낸 화가 변관식. 그는 조선의 대표적 명산인 금강산을 직접 사생하는 몇 안되는 사람들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그는 중국의 수묵화법에만 의존하던 시대에, 우리나라 특유의 수묵 산수화풍을 창조해낸 화가이기도 합니다. 구한말의 유명한 화가였던 소림 조석진의 딸이었습니다. 화가인 외할아버지를 둔 덕분에 그는 자연스럽게 붓과 그림을 접하게 되었죠. 그리고 초등학교 시절부터 외가댁에 머물던 그는 할아버지의 제자들이 하는 그림 공부를 어깨너머로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떠나게 됩니다. 그리고 23세 때는 어머니와 부인마저 잃게 되죠. 크게 상심한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세상을 떠돌아 다니는 유랑을 시작했습니다. 너무나 외로웠던 그는 그 다음해에 재혼을 하기도 하지만 그 또한 오래가지는 못했구요. 그렇게 일찍 익숙하게 된 고독감이 그를 외곩수로 만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했습니다. 하지만 방랑벽은 여전했고, 그는 해방이 되던 마흔 살이 될 때까지 전국을 돌아다니며 그림을 그렸습니다. 순박하고 서민적인 향취가 서려있습니다. 특히 시골 풍경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도, 자신만의 독자적인 화풍을 펼쳐보였지요. 게다가 그는 “내가 이 단소를 잘 불었는데,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서 그림에도 장단과 가락이 있어야 한다는 거지.” 라며 취미인 단소불기를 수십 년간 즐기기도 했습니다. 그러한 음악적 풍류가 그의 그림 곳곳에 서려 있답니다.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하고, 개인전도 여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학연과 지연 등으로 나뉘어진 당시의 한국 화단을 개탄하고, 비리로 얼룩진 국전에 대해 <공정을 잃은 심사>라는 고발문을 신문에 내기도 하였습니다. 심지어는 심사위원 들끼리 모여 식사를 하던 중 노수현이라는 다른 화가에게 냉면 그릇을 집어 던지기도 했답니다. 변관식의 예술은 오히려 이 시기부터 더욱 성숙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전의 방랑 시절, 많이 보았던 금강산에 대한 그림을 활발히 그리기 시작하였으며, 몇몇 작품은 국가간의 선물로 외국에 보내지기도 했죠. 그리고 그는 기존에 수묵화에서 사용되던 방법들 외에도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들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진한 먹을 튀기듯 찍어서 선을 기이하게 만들고, 역동적인 구도를 개발하기도 하였습니다. 그의 산수화는 현대적으로 재창조된 조선 전통의 아름다움으로 채워졌습니다. 생전에는 그의 작품의 가치에 미치는 인정을 받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1976년, 20년이 넘게 살아온 그의 돈암동 자택에서 세상을 떠난 후, 화가로서의 위대한 진가를 인정 받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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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방랑하며 지내던 시절, 어느 시골 길에서 만난 풍경인가 봅니다.
한겨울, 소담스럽게 내린 눈으로, 더욱 고요한 산 속에 파묻힌 초가집과 그 풍경입니다.
이 그림도 변관식 특유의 아주 작게 찍은 점들과 짧게 터치한 단필 등이 화면 한 가득 그려져 있습니다.
농촌의 늦은 가을 풍경 모습을 섬세하게 그린 것이 매우 인상적이죠.
그의 수많은 금강산 그림 중에 그 가치를 더욱 인정받고 있는 그림인데요,
동판화인 듯, 혹은 펜으로 날카롭게 그린 듯, 그런 착각을 불러 일으킬 만큼
이 그림도 금강산의 한 풍경을 그린 작품인데요, 이 역시 위에서 아래로
마치 살아 있기라도 한 듯한, 짧고 힘있는 필치들이 산세와 나무,
운치있는 먹빛과 짧은 필치의 나무, 그리고 산세의 아름다움이 잘 느껴지는 작품이죠.
금강산에 있는 단발령(斷髮嶺)은 소정 뿐만 아니라 겸재 정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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