來蘇寺
來蘇寺 大雄寶殿
이 대웅보전은 아미타여래를 중심으로 우측에 대세지보살, 좌측에 관세음보살을 모신 불전으로
조선 인조 11년(1633) 청민대사가 절을 고칠 때 지은 것이라 전한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3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기둥 위부분에 짜은 장식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인데, 밖으로 뻗쳐 나온 부재들의 포개진 모습은
우리 옛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앞쪽 문에 달린 문살은 꽃무늬로
조각하여 당시의 뛰어난 조각 솜씨를 엿보게 한다.
건물 안쪽으로 들어가면 벽체 윗부분에 있는 부재 끝을 연꽃 봉오리 모양으로 장식하였고
보머리에는 용이 물고기를 물고 있는 모습을 나타내 건물의 화사함을 더해 준다.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짜맞추어 지붕 윗부분을 가리고 있는 우물천장으로 꾸몄다.
불상 뒤쪽 벽에는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것 중 가장 큰 ‘백의관음보살상’이 그려져 있다.
공예로 가치가 높은 문살 조각과 독창적인 장식물 등 조선 중기 이후의
건축 양식을 가늠할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건물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인 선운사(禪雲寺)의 말사이다.
633년(무왕 34)혜구(惠丘)가 창건하여 ‘소래사(蘇來寺)’라고 하였다.
그 뒤 1633년(인조 11)에 청민(靑旻)이 대웅보전을 지어 중건하였고,
1604년(인조 18)청영(淸映)이 설선당과 요사를 지었다.
1902년관해(觀海)가 수축한 뒤 1983년 일주문을 세우고 1985년 대웅보전을 중수하였으며,
1986년 천왕문을 짓고 설선당과 요사를 보수하였다.
1987년 봉래루를 해체 복원하였으며 1988년 요사인 진화사(眞華舍)를 건립하였다.
1995년 수각(水閣)과 종각을 짓고 범종을 조성하였다.
소래사가 내소사로 바뀐 것은 중국의 소정방(蘇定方)이 석포리에 상륙한 뒤,
이 절을 찾아와서 군중재(軍中財)를 시주하였기 때문에, 이를 기념하기 위해서
내소사로 고쳐 불렀다고 전하나 사료적인 근거는 없다.
대웅보전(大雄寶殿)을 비롯하여
보물 제277호인 고려동종(高麗銅鐘), 보물 제278호인 법화경절본사경(法華經折本寫經),
보물 제1268호로 지정된 괘불 등과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25호로 지정된 요사채,
설선당(說禪堂)·보종각(寶鐘閣)·봉래루(蓬萊樓),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24호로 지정된 삼층석탑 등이 있다.
이 가운데 대웅보전은 1623년(인조 1)에 완공되었는데 그 의장(意匠)과 기법이
매우 독창적인 조선 중기의 대표작이다. 못 하나 쓰지 않고 나무를 깎아 서로 교합하여
만들었다고 하며, 법당 내부의 벽면에 그려진 관세음보살상 등의 그림도 일품이다.
전설에 의하면, 이 건물은 호랑이가 화현(化現)한 대호선사(大虎禪師)가 지었다 하고,
벽화는 관세음보살의 화현인 황금빛 날개를 가진 새가 그렸다고 하는데, 그때의 일화가 지금도 전하고 있다.
또한, 고려동종은 1222년(고종 9)변산 청림사(靑林寺)에서 만든 종인데,
1850년 땅속에서 발굴된 뒤 이 절로 옮겨졌다.
그리고 법화경절본사경은 조선 초기에 이씨 부인이 망부(亡夫)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한 글자를 쓰고 한 번 절하면서 지극한 정성으로 필사한 것이다.
설선당은 인조 때 승려의 수학 장소로 건축되었고,
봉래루는 1414년실상사지(實相寺址)에서 이건하였으며,
현재 산문(山門)으로 사용하고 있다.
부속암자로는 입구의 지장암(地藏庵)과 절 후방 1.5㎞ 지점에 청련암(靑蓮庵)이 있다.
절 일원이 전라북도 기념물 제78호로 지정되어 있다.
'사찰순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지 스님의 웃음.. '염화미소' 따로 없네 (0) | 2018.01.31 |
---|---|
화순 천불천탑 운주사 (0) | 2018.01.31 |
積石寺 柱聯(적석사 주련) - 休靜 (0) | 2018.01.30 |
경남 산청 겁외사 (0) | 2018.01.30 |
禪雲山 禪雲寺 (0) | 2018.01.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