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 이별 / 한용운
당신과 나와 이별한 때가 언제인지 아십니까.
가령 우리가 좋을 대로 말하는 것과 같이,
거짓 이별이라 할지라도
나의 입술이 당신의 입술에 닿지 못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 거짓 이별은 언제나 우리에게서 떠날 것인가요.
한 해 두 해 가는 것이 얼마 아니 된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시들어가는 두 볼의 도화(桃花)가
무정한 봄바람에 몇 번이나 스쳐서 낙화가 될까요.
회색이 되어가는 두 귀 밑의 푸른 구름이,
쪼이는 가을 볕에 얼마나 바래서 백설(白雪)이 될까요.
머리는 희어 가도 마음은 붉어 갑니다.
피는 식어 가도 눈물은 더워 갑니다.
사랑의 언덕엔 사태가 나도
희망의 바다엔 물결이 뛰놀아요.
이른 바 거짓 이별이
언제든지 우리에게서 떠날 줄만은 알아요.
그러나 한 손으로 이별을 가지고 가는 날은
또 한 손으로 죽음을 가지고 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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