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영상시

천상병 시모음

선바우1 2018. 2. 4. 15:44


천상병 시모음

 


 

귀천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바람에게도 길이 있다
 


강하게 때론 약하게
함부로 부는 바람인 줄 알아도
아니다! 그런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길을
바람은 용케 찾아간다
바람 길은 사통팔달(四通八達)이다

 

나는 비로소 나의 길을 가는데
바람은 바람 길을 간다
길은 언제나 어디에나 있다.

 


새 세 마리

 


나는 새 세 마리와 함께 살고 있다.
텔레비 옆에 있는 세 마리 새는
꼼짝도 하지 않는다.
왜나하면
진짜 새가 아니라
모조품이기 때문이다.

 

한 마리는 은행에서 만든 저금통 위에 서 있는

까치고  두 마리는 기러기 모양인데
경주에서 아내가 사가지고 왔다.
그래서 세 마리인데
나는 매일같이 이들과 산다.

 

나는 새를 마우 즐긴다.
평와롭고 태평이고 자유롭고
하늘이 그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들을
진짜 새처럼 애지중지한다.

 

 

먼 山

 

먼 山은 나이 많은 영감님 같다
그 뒤는 하늘이고
슬기로운 말씀하신다

 

사람들은 다 제각기이고
통일이 없지만
하늘의 이치를 알게 되면
달라지리라고-

 

먼 山은
애오라지 역사의 거물
우리 인간은
그 침묵에서 배워야 하리..

 



 시인 천상병

 

  

 

천상병[千祥炳]

경남 창원(昌原) 출생.

1955년 서울대학교 상과대 4년 중퇴.
1949년 마산중학 5학년 때, 《죽순(竹筍)》 11집에 시

《공상(空想)》 외 1편을 추천받았고,

1952년 《문예(文藝)》에 《강물》 《갈매기》 등을 추천받은

여러 문예지에 시와 평론 등을 발표다.
1967년 7월 동베를린공작단사건에 연루되어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가난 ·무직 ·방탕 ·주벽 등으로 많은 일화를 남겼다

 

 그는 우주의 근원, 죽음과 피안, 인생의 비통한 현실 등을 간결하게

압축한 시를 썼다.
1971년 가을 문우들이 주선해서 내준 제1시집 《새》는 그가 소식도 없이 

서울시립정신병원에 수용되었을 때, 그의 생사를 몰라 유고시집으로 발간되었다. 

'문단의 마지막 순수시인’ 또는 ‘문단의 마지막 기인(奇人)’으로 불리던 

그는 지병인 간경병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주막에서》 《귀천(歸天)》 《요놈 요놈 요 이쁜 놈》 등의 시집과 산문집

《괜찮다 다 괜찮다》,

 그림 동화집 《나는 할아버지다 요놈들아》 등이 있다.

미망인 목순옥(睦順玉)이 1993년 8월 《날개 없는 새 짝이 되어》라는

글모음집을 펴내면서  유고시집 《나 하늘로 돌아가네》를 함께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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