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생명, 우주 생명/ 청화스님
- 이 “안심법문(安心法門)”은 청화(淸華) 스님께서
미국 카멜에 있는 삼보사에서 1995년 1월 동안거 중에 일주일 동안 사부대중을 대상으로 봉행한 [순선안심탁마법회(純禪安心琢磨法會)]에서 설하신법문 -
● 한 생명, 우주 생명
생명이니까 “부처님” 그러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에 있어서
부처님을 생명으로 받아들이는 그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우리 마음이 생명인데 마음의 근본 고향(故鄕)인 동시에 일체(一切) 생명(生命)의 근본(根本)자리가 생명이 아니라고 할 때는 우리 마음이 너무나 건조해져버립니다.
우리 신앙(信仰)의 대상이 생명이 아니라 논리(論理)다, 이치(理致)다, 지혜(智慧)다,
이렇게만 생각할 때는 자기 신앙이 정말로 감성적(感性的)으로 감격 (感激)되기가 어렵습니다.
우리는 필히 부처님을 내 생명의 근본 생명인 동시에
우주 모든 존재의 근본 생명으로 느끼셔야 합니다.
다시 바꿔서 말씀드리면 우주가 바로 부처님이라 하는 하나의 생명 덩어리인 것입니다.
그래서 시방여래(十方如來)라는 것은 바로 우주 전체를 말하는 것이며 우주 전체의 생명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시방여래,
우주 전체의 생명이 “시법계신(是法界身)”이라.
법계라는 것도 우주 전부를 말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이라는 것은 바로 어디 다른 데가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라, 별도의 극락세계(極樂世界)가 있어 거기에 계시는 것이 아니라,
우주가 바로, 부처님은 우주를 몸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법계신이라, 부처님 몸이 바로 우주입니다.
우리가 부처님을 생각할 때는 일반적으로는 다 자기와 따로 있다고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므로 심리적으로 항시 불안스럽고, 그 뿐만이 아니라 우리 마음이 부처님과 가깝지 않단 말입니다.
우주의 생명이 바로 부처님이기 때문에 그때는 우리는 누구나 바로 거기에 다 포함됩니다.
부처님은 바로 우주 법계를 몸으로 하시기 때문에 “입일체중생심 상중(入一切衆生心想中)”이라.
모든 중생의 마음 가운데 다 들어 계신단 말입니다.
내 마음 가운데나 그대 마음 가운데나 또는 다른 동물, 식물 가운데 나 다 들어 계십니다.
우리 불교에서 마음이라고 할 때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사람만의 마음을 마음이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존재가 다 마음이 있습니다.
우리 사람도 마음이 안 보이지만 마음이 바로 주인공(主人公) 아닙니까.
그와 마찬가지로 산(山)도 우리는 산으로 보이지만 내내야 산에도 안 보이는 산신(山神)이라, 산에 들어 있는 정기(精氣), 산 기운, 산 에너지가 참다운 산의 한 생명이란 말입니다.
우리는 물을 물로만 보지만 물의 정기,
그것은 바로 용왕(龍王)입니다.
물의 정기가 바로 참다운 물이란 말입니다.
우리는 우주도 태양계(太陽系), 은하계(銀河系)
이렇게 구분해서 봅니다.
이런 것은 우리 중생의 분별(分別)로 해서
나누어 놓은 것이지 본래적인 생명 자체로 본다고
생각할 때는 우주가 부처님이라 하는 하나의 생명입니다.
우주가 바로 하나님입니다.
따라서 모든 중생가운데 부처님, 하나님이 다 들어있습니다.
“시고(是故)” 그러기 때문에
“여등(汝等)” 그대들이, “심상불시(心想佛時)”
이와 같이 마음으로 부처님을 생각할 때는,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부처님을 제한되게 생각을 하지 마십시오.
광대무변(廣大無邊)한 우주 생명(生命)이기 때문에
그와 같이 광대무변한 부처님을 생각할 때는
“시심즉시(是心卽是)” 이 마음이 곧바로 “삼십이상팔십수형호(三十二相八十隨形好)”라.
이런 것들은 불교 술어이기 때문에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러나 간단히 말씀드리면 이것은 부처님한테 들어 있는 모든 공덕 (功德)이 삼십이상 팔십수형호입니다.
우리 마음이 부처님같이 청정하고 번뇌가 없고 자기라 하는 것을 떠나서 무아(無我)의 진리를 안다고 생각할 때는 우리 얼굴도 사실은 석가모니(釋迦牟尼)같이, 예수같이 잘날 것입니다.
사실 성인(聖人)들은 얼굴도 이와 같이 일체공덕(功德)이 다 들어 있어놔서 사람 얼굴로서 조금도 흠이 없는, 눈이나 입이나 코나 몸 어디나 조금도 흠이 없는, 그런 것을 상징적으로 서른 두 가지 큰 상과 여든 가지 작은 상이라고 구분을 합니다.
- 미국 카멜삼보사 법회법문에서 - 청화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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