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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초상화 왕국"

선바우1 2018. 2. 26. 00:00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말하는 '조선의 초상화'

"조선은 초상화 왕국"

최장문(treet) 기자


지난 11, 유홍준 문화재청장의 3번째 강의가 열렸다. 강의 주제를 보고 난

다음 처음 든 생각은 '조선시대 그렇게 많은 초상화가가 있었나?'라는 의문이었다.

그러나 이 의문은 쉽게 풀렸고, 이 의문보다는 '초상화가 단순한 얼굴 그림이 아닌

그 이상의 뭔가가 들어 있다.'는 알 듯 모를 듯한 느낌이 나의 눈과 귀를 긴장 시켰다.

유홍준 청장이 말하는 초상화 이야기를 들어 보자.

조선시대에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초상화를 많이 그렸다.

현재 남아 있는 초상화는 대략 3,000여점 정도로 주로 어진(임금의 초상)이나

공신(功臣)이 주요 대상이었다. 초상화는 시대에 따라 양식의 변화를 거쳤다.

15세기 초상화는 새 국가 건설에 따른 자신감과 이상주의 성격을 나타내고 있다.

이와 같은 것은 의자 밑의 옷자락이 구겨지는 것을 각이 지게 꺾어 직선으로 처리한 것과

족자에 발을 디디는 데 반드시 '11'자 모양으로 묘사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15세기 초상화

16세기에 각 지역별로 서원이 많이 만들어지고, 또 집의 사당에 중시조를 모시면서

초상화를 많이 그렸으며 학자상을 그리는 것이 안동 지역을 중심으로 확산됐다.

옷자락도 직선에서 부드러운 선 모양으로 바뀌었고,

발 모양도 '11'에서 ''모양으로 바뀌어 갔다.



16세기 초상화

17세기 넘어서 하나의 정형이 만들어진다. 옷자락이 길게 내려오고,

족자의 발은 ''자형, 바닥은 카펫이다. 17세기에는 북벌론에 따른 낭만적 과장 화풍이 나타난다.

대표적 작품으로 송시열의 초상화다. 미남은 아니지만 고릴라상을 띠면서도 강한 완력을 보여 준다.

17~18세기로 넘어갈 때 윤두서의 자화상이 나온다. 17세기 초상화 절정기 시대의 대표작이다.

유형원에서 시작된 실학이 윤두서 형제와 이익 형제에게 이어지던 리얼리티를

추구하던 시대의 작품이다. 18세기의 새로운 정신은 새로운 작품으로 나타난다.

대상과 형식이 다양해지고 사실성도 추구되는데 자연스러움과 편안함을 준다.


송시열 초상화


3명을 한꺼번에 그렸으며, 신윤복의 여인 초상화에서는 이미 성리학적

사회 기준과 도덕율을 넘어서고 있는 시대정신을 엿 볼수 있다.

현존하는 고려시대 초상화의 가장 정본은 안향의 것이다.

소수서원에서 안향을 모시며 제사 지낼 때 쓰던 것인데 원본이 낡자 원본을 보고 다시 그렸다.

보고 그린 그림은 더 깨끗하고 세련되게 선을 마무리했지만 뭔가 좀 이상하다.

품격이 빠졌기 때문이다. 외형은 복사할 수 있을 지언정 그 근본에 흐르는

정신은 복사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안향 초상화


어느 나라 화폐든지 그 나라의 역사적 인물을 화폐에 넣는다.

그럼 우리 나라는 화폐에 나오는 인물들의 실제 초상화는 존재하는가?

이순신, 이황, 이이, 세종대왕 모두 없다. 그래서 표준 영정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학생들에게 이상적인 얼굴을 그려보라고 하면 대개 자기 얼굴 형체가 꼭 들어간다.

동그란 얼굴형은 동그란 틀 안에서 이상형을, 뾰족한 학생들은 뾰족한 틀에서 이상형을 그린다.

마찬가지로 현재 표준 영정의 세종대왕, 이이, 이황 초상화를 보면 이들을 그린 김기창,

이종상, 이은태와 많이 닮았다. 따라서 표준 영정을 만들 때는

그 집안 종손을 모델로 하여 그려야 좋을 듯하다.



우리 나라 화폐에 나타난 초상화-이황, 이이, 세종대왕


우리 초상화는 얼굴의 검버섯이나 마마자국처럼 흉한 것도 빼놓지 않고 그리는

전통이 있지만 그 정도에 그치면 큰 의미가 없다. 아무리 그림을 잘 그린다 한들

사진 기술을 따라갈 수는 없을 테니까. 그러나 우리 옛 초상화에는 사진이 감히

따라올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그것은 바로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그리되

그 속에 혼을 넣어 그렸다. 이것이 전신법이다.



윤두서의 자화상

윤두서의 자화상을 한 번 보자. 덮수룩하면서도 세밀하게 하나하나 묘사된 수염과

유난히 광채를 내고 있는 눈을 보면 그림이 아니다. 그 안에 뭔가 꿈틀거리는 것이 있다.

계속 쳐다보기가 미안할 정도로 살아 있는 듯 느껴진다.

조선시대 초상화가 대부분 그렇다. 터럭 하나도 놓치지 않는 사실적인 그림이면서,

동시에 혼이 담겨져 있었다. 오늘은 이런 옛 조상들을 만나 즐거웠다.

조선시대 그려진 초상화와 오늘날 많이 쓰는 사진과의 차이점을 명확히 구별해 주는 강의였다.

오늘 슬라이드를 통해 본 조선의 많은 공신과 선비들의 얼굴은 분명 사진과는 느낌이 달랐다.

세밀하면서도 자연스럽게 묘사된 눈과 코와 수염 등은 그들의 인격과 성격을 조용히 말해 주는 듯했다.

시대가 바뀌면 문화도 바뀌겠지만 오늘 보았던 '정신'까지 그려진 초상화의 전통은

계승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 최장문 기자의 글을 퍼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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