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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그리드 버그만

선바우1 2018. 3. 1. 20:22



 

 

 

잉그리드 버그만

(1915~1982)

스웨덴 출생

 

 

역사상 가장 성공한 로맨스 통속물로 꼽히는 '카사블랑카'를 보면 아주

인상깊은 대사 한마디가 있죠.  바로 '그대 눈동자에 건배를'이라는 말입니다.

(Here's looking at you, kid 의 적절한 의역입니다. 

 '이 유리잔에 당신의 모습이 비치네요 뭐 이런 멋없는 표현보다 '

그대 눈동자에 건배를'은 참 적절한 의역입니다.)
이 말은 험프리 보가트가 연인인 잉그리드 버그만에게 한 말입니다.
잉그리드 버그만은 이러한 '대사'에 딱 어울릴만큼 매혹적인 눈을 가진
여배우입니다.  카사블랑카의 자세한 내용은 잊을 수 있어도 이 대사는 잊기
어렵습니다.  안개 자욱한 공항에서의 이별장면으로도 유명한 흑백고전
카사블랑카의 여배우 잉그리드 버그만은 어떤 배우일까요?

 

잉그리드 버그만은 1915년 스웨덴에서 출생한 유럽출신의 여배우죠.
스웨덴 하면 거장 '잉그마르 베르히만'으로 유명한 나라입니다. 
잉그리드 버그만은 30년대 중반부터 활동한 여배우지만 1939년 '인터메쪼'
라는 영화를 비롯하여 이후의 거의 모든 활동은 '헐리웃'에서 했던
'헐리웃의 대표적인 40년대 여배우'입니다

 


 

 

 

20대의 한창 아름답던 시절

 

 

 

 

 

 

 

'그대 눈동자에 건배를'이라는 대사로 유명한

걸작 '카사블랑카'에서 험프리 보가트와

 

1939년 작품인 '인터메쪼'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애슐리 역으로 알려진
레슬리 하워드와 공연한 멜로영화입니다.   그다지 뛰어난 영화는 아니지만,
음악과 로맨스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흑백영화였고,  특히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었던 가장 초기의 잉그리드 버그만 영화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 당시
24세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인터메쪼는 36년 스웨덴 시절에 만든
잉그리드 버그만의 출연작인데 헐리웃에 진출하여 3년만에 자신이 다시
출연하여 리메이크한 작품입니다.  36년 작품은 우리가 볼 수 없었죠.

 

인터메쪼 출연 2년뒤인 1941년 잉그리드 버그만은 당대를 대표하는 스타인
스펜서 트레이시 주연의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에서 비중있는 역할로
출연하는 행운을 잡습니다.  40년대 헐리웃 대표 미녀가 되는 라나 터너와 함께
출연하게된 잉그리드 버그만은 이 영화를 계기로 본격적인 '메이저 헐리웃
영화'에 계속 출연하는 톱 스타의 길을 걷습니다.

 

이듬해인 1942년에 출연한 작품이 '카사블랑카'였고,  이 작품으로 정상의
스타자리에 오릅니다.  사실 지극히 통속적인 스토리의 이 영화가 제작당시
성공에 회의적이었다는 사실은 많이 알려진 비화입니다.  예상을 뒤엎고
카사블랑카는 평단과 관객 모두에게 호평을 받는 '전설적 고전'으로 자리매김을
하게 되었죠.

 

 

 

 

빛바랜 사진이지만 아름다운 모습

 

 

 

 

20대 시절 절정의 아름다움

 

 

 

 

보기 드문 팜므 파탈같은 모습의 사진

 

'스펜서 트레이시' '험프리 보가트'라는 헐리웃 최고 스타들과 연달아

공연한 이후 그녀를 맞이한 배우는 역시 30-50년대에 걸쳐서 독보적인

정상급 인기를 구가한 스타 게리 쿠퍼였습니다. 

1943년 작품인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서 였는데, 이 영화는 유명한 작가
어네스트 헤밍웨이 원작소설을 영화화한 것으로 짧은 머리의 화장을 안한
수수한 '생얼'의 잉그리드 버그만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게리 쿠퍼와의
애틋한 사랑이 감동으로 남겨진 영화였는데 '키스할 때 코가 걸리지 않나요?'라는
대사가 유명해진 영화죠.  키스도 못해본 순수한 처녀역으로  잉그리드 버그만은
생애 최초의 아카데미 주연상 후보에도 오르게 됩니다.  이 영화는 우리나라
개봉시에도 꽤 히트하였는데 두 남녀의 안타까운 이별장면이 펼쳐지는
종반부의 부분이 꽤 여운이 남는 영화였죠.  잉그리드 버그만의 그다지 많지
않은 '칼라영화대표작'입니다.

 

1944년에 출연한 가스등은 잉그리드 버그만에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작품이죠.  29세의 무르익은 나이와 원숙한 미모를 자랑하던 시기였고,
이때가 가장 절정기때라고 할 수 있었죠.  가스등은 재산을 노리고 아내를
독살하려는 살인마의 마수에서 가까스로 벗어나는 여성의 이야기인
미스터리 영화입니다.

 

잉그리드 버그만은 1949년까지 무난한 활동을 펼칩니다.  '오명' '개선문'
'남회귀선(Under Capricorn)' '잔다르크' '망각의 여로(Spellbound)' 등
출연작품들이 우리나라에도 대부분 개봉되었고,  특히 이 기간동안 거장
알프레드 히치콕의 작품에 3편이나 출연합니다.  한 아이의 엄마이자 충실한
아내이자 정상급 헐리웃 여배우인 그녀의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되는 사건은
이 때 갑자기 벌어집니다.



 

 



 게리 쿠퍼와 공연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1969년 작품인 코미디 영화 '선인장 꽃'

 

 

 

 

1948년에 공개된 잔다르크

 

1950년 그녀는 갑자기 이탈리아의 거장 감독 '로베르토 로셀리니'에게
소위 '작업'을 겁니다.  소위 말하는 '불륜' '간통'을 저지른 것이죠.  그가 대단한
감독임에는 틀림없으나 그의 영화를 보고 그에게 푹 반하여 멀쩡한 가정을
버리고 달려간 잉그리드 버그만의 이 사건은 '세기의 불륜'으로 유명한 사건이며
고고한 이미지의 여배우인 그녀는 한순간에 '파렴치한 색녀'로 전락하였습니다.
이로 인하여 그녀는 헐리웃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1950년부터 1955년까지
6년동안은 잉그리드 버그만의 '유럽영화 출연시대'였습니다.  13년을 함께 살아온
남편을 버리고 로셀리니 감독이 있는 이탈리아로 가서 그와 재혼하여 세 아이를
낳고 살면서 비록 헐리웃에서는 추방당했지만 유럽에서 활발히 활동을 하게 됩니다.
이 시기의 영화중 우리에게 알려진 작품은 로셀리니 감독과 찍은 3부작
'스트롬블리' '유로파 51' '이탈리아 여행'과 장 르노아르 감독의 코미디 '엘레나'
입니다.   이 잉그리드 버그만의 불륜상대로 유명한 로베르토 로셀리니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거장중의 거장으로 '무방비 도시' '전화의 저편' '독일영년'등
이탈리아 네오 리얼리즘 시대의 대표감독입니다.

 

아뭏든 영화속에서 조강지처나 성녀 이미지였던 그녀가 로셀리니 감독과의
동거를 한 사실은 그녀의 팬들에게는 당시 꽤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덕분에 태어난 '이사벨라 로셀리니'역시 잉그리드 버그만을 쏙 빼닮은
딸로 역시 매혹적인 여배우로 성장하여 '백야' '죽어야 사는 여자' 등을 통해서
우리나라에도 알려졌죠.  미모만 따지면 그 어머니의 그 딸입니다.
이사벨라 로셀리니를 영화에서 볼 때 마치 잉그리드 버그만이 환생한 것처럼
느껴졌죠.

 

 

 

잉그리드 버그만의 다양한 사진들

 

1956년 드디어 잉그리드 버그만은 헐리웃에서 '해금'되어 7년만에 복귀할 수
있었습니다.  그녀의 헐리웃 복귀작은 아나스타샤 공주의 미스터리를 다룬 작품
아나스타샤(국내 개봉명은 추상)였고, 이 영화로 다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합니다.  정말 감격적인 성공적 복귀죠.   이후 '무분별' '여섯번째의 행복'
'이수(Goodbye Again)'등의 작품등이 우리나라에 소개가 되었고, 61년작품
이수 이후로는 그다지 두드러진 활동을 못한 편입니다.  '황색 롤스로이즈'와
'선인장꽃' '오리엔트 특급살인' 등의 영화가 국내 개봉은 안하고 TV나 DVD
케이블 방송 등으로 소개되었죠.  특히 1974년 작품 '오리엔트 특급살인'
에서는 불과 몇분 출연했음에도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합니다.  58세의 곱게 늙은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유럽에서 헐리웃으로 진출했다가 다시 유럽에서 활동하고 다시 헐리웃에
성공적으로 복귀한 파란만장한 그녀의 영화계 이력이 있지만 가정에서도
13년간 살아온 남편을 버리고 로셀리니 감독과의 재혼을 했고, 죽고 못사는
커플 같았던 이 결혼도 결국 7년만인 1957년 종지부를 찍었고, 1958년
세번째 남편과 재혼할 만큼 순탄치 않은 가정생활을 한 셈입니다.

 

특히 그녀는 유방암으로 한쪽 가슴을 완전히 도려내는 불운한 말년을 살았고,
1982년 영국에서 몇명의 지인들과 조촐한 67세 생일파티를 한 이후에 사망을
하였습니다.  잉그리드 버그만이 세상을 떠난 시기와 비슷하게 헨리 폰다
나탈리 우드,  윌리암 홀덴 이라는 유명스타가 함께 세상을 떠나서 많은
영화팬들을 안타깝게 하였죠.

 

'카사블랑카'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가스등' '추상(아나스타샤)' 등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은 영화들속 모습에서 정말 눈동자에 건배를
하고 싶은 반짝거리는 아름다운 눈을 가진 여배우로 잉그리드 버그만은 오랜
세월 각인되어 온 추억의 스타였습니다.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작 '추상(Anastasia)'

대머리 배우 율 브리너와 공연

특히 이 작품은 잉그리드 버그만이 불륜으로 헐리웃에서

추방된 이후 7년만의 복귀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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