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t star

나탈리 우드(Natalie Wood)

선바우1 2018. 3. 6. 22:57








나탈리 우드(Natalie Wood)

(1938.7.20 - 1981.11.29)


본명 나탈리아 자카렌코

1938년 7월 20일 미국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출생.

러시아계 이민자였던 부모님 밑에서 내어난 나탈리 우드는 발레 댄서였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릴때 부터 무용교육을 받았다. 그녀의 여동생

라나 우드도 배우이다. 4살때인 1943년 <해피 랜드>로 영화에 데뷔한

이후에 잘나가는 아역스타로 살았다.

17살때 제임스 딘과 함께 출연한 <이유없는 반항>으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1957년 로버트 와그너와 결혼 후에도 <밤이 울고있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초원의 빛> 등을 연달아 히트 시키면서 헐리우드를 대표하는 배우가 되었다.

<초원의 빛>에서 만난 워렌 비티와 사랑에 빠져 로버트 와그너와 이혼 후

결혼하였지만 오래 가지 못했고, 첫 남편이였던 로버트 와그너와 재결합하기도 했다.

활발하게 연기에 대한 열정을 태웠던 나탈리 우드는 43살이 되던 해인

1983년 캘리포니아 산타 카타리나 섬에서 요트사고로 인해 익사했다.  



이유없는 반항 (Rebel Without Cause, 1955)

아카데미 여우 조연상 후보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1961), 집시 (1962) 출연

워렌 비티와의 초원의 빛 (Splendor in the Grass, 1961),

아카데미 여우 주연상 후보 Love WIth the Proper Stranger (1963)

아카데미 여우 주연상 후보, 스티브 맥퀸과 열연.

 


 

 

 

 

 10살때 20세기 폭스 스튜디오에서 당시 18세였던 로버트 왜그너를 본후

어머니에게 '나 저남자와 결혼할거야' 라고 말했다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18세 생일날 26세가 된 왜그너와 첫 데이트를 하고 1년후 결혼 (1957).

1961년 별거 시작, 1962년 이혼.

 

1969년 영국인 프로듀서 리차드 그렉슨과 재혼, 1970년 첫 딸 나타샤

그렉슨 출산. 1972년 이혼 (남편과 비서의 내연관계를 눈치 채고).

 1972년 이혼 3개월후 왜그너와 재재혼. 두달후 둘째딸 코트니 왜그너 출산.

 

 

 

 

 

 

 

 

 

Inside Daisy Clover (1965), 골든 글로브 여우 주연상 후보

This Property is Condemned (1966), 골든 글로브 여우 주연상 후보

지상에서 영원으로 (From Here to Eternity, 1979), TV 미니 시리즈

 

1981년 크리스토퍼 워킨과 'Brainstorm' 촬영을 거의 마치고 워킨, 왜그너와

카달리나 섬에서 추수감사 연휴를 보내다 요트(Splendor)에서 실족, 익사, 43세로 세상을 마감한다.

 

이 사건으로 수개월간 토마스 노구치라는 LA 카운티 검시관에게 언론의 관심이 집중된다.

결국 사고사(익사)로 처리 되었다.

7 - 8잔의 와인을 마시고 취한 상태에서 바다에 빠지는 바람에 물에 젖어 무거워진,

입고 있던 오리털 코트와 울 스웨터를 벗고 수면위로 치고 나올 생각을 못했을 것이라는

그의 추측. 몸에 있던 멍자국들은 떨어지면서 요트에 부딪혀 생긴것이라고 결론을 내었다.


그러나...

근처 다른 요트위에서 나탈리의 '살려달라'는 간절한 외침을 15분간이나 들었다는 증인에

의하면 '좀 참아, 곧 갈께'라는 남자 목소리 대답은 전혀 서두름이 없이 기괴하게 차분했다고...  

 남편 로버트는 살인 혐의까지 의심받게 됐지만 계속 우연사를 주장했었다.

한 소식통은 "수십 년이 지난 후 그날을 생각해보면, 나탈리는 당시 매달린 딩기 보트가 요트에

쿵 하고 부딪히는 소리가 나 보트를 다시 묶기 위해 나간 것으로 보인다"며 "그러다 그녀는

미끄러졌고, 요트 계단에 부딪쳐 의식을 잃고 바닷속에 빠졌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나탈리가 죽은 후 와그너는 고통과 자책감 때문에 8일간 조울증과 긴장증으로

침실에서 나오지 않았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