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연주

La Golondrina(제비) - Nat King Cole

선바우1 2018. 7. 27. 15:24

     




           


 La Golondrina(제비) - Nat King Cole  


A donde ira veloz y fatigada
la golondrina que de aqui se va.
Oh, si en el viento se hallara extraviada
buscando abrigo y no lo encontrara?


여기를 떠나가는 제비는
아, 혹시 바람 속에서 은둔처를 찾다가
길을 잃었나 아니면 은둔처를 찾지 못하나?


Junto a mi lecho le ponde su nido
en donde pueda la estacion pasar
Tambien yo estoy en la region perdida
oh, cielo santo y sin poder volar!


내 침대 곁에 그의 보금 자리를 만들어주리
그곳에서 계절을 보낼 수 있으리라
나도 역시 이 지방에서 길을 잃었네
오, 하나님, 날을 수도 없구나


A donde ira veloz y fatigada
la golondrina que de aqui se va.
Oh, si en el viento se hallara extraviada
buscando abrigo y no lo encontrara?


여기를 떠나가는 제비는
아, 혹시 바람 속에서 은둔처를 찾다가
길을 잃었나 아니면 은둔처를 찾지 못하나?



남미 여러 나라들은 약 400년에 걸친..스페인.

포르투칼 등에 의한 슬픈 식민지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남미 각국에 애잔한 음률의 음악들이 많은 이유가..

바로 이러한 역사적 배경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제비(la golondrina)도 그중 하나인 멕시코 민요입니다.  

원래 이 곡은 스페인 작곡  가에 의해 작곡되었지만..

멕시코에 안착하면서 가사가 붙여집니다.  

조국을 잃어버린 암울한 심경을 노래하게 된 것이지요.



Nat King Cole


우리에게는 품격있는 발라드 가수로 알려진 '냇 킹 콜

(본명: Nathaniel Adams Coles)'은 미국에서는 재즈 피아니스트로

먼저 이름을 알린 연주자였었다.

미국의 앨라배마(Alabama)주 몽고메리(Montgomery)에서

침례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냇 킹 콜은 네살때

가족이 시카고로 이사함에 따라 시카고에서 성장하게 된다.


교회에서 오르간을 연주하던 냇 킹 콜의 어머니는 어린 아들에게 재미삼아

오르간을 가르치기 시작했는데 놀랄 정도의 재능을 발휘하였다고 한다.

음악에 대한 타고난 재능을 바탕삼아 냇 킹 콜은 열두살 때 부터 본격적으로

정식 음악 수업을 받게 되는데, 당시 그가 주로 배웠던 음악은 클래식이었지만

클래식 외에도 재즈와 가스펠 음악 까지 관심의 폭을 넓혀 나가며

다양한 음악을 접하게 된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음악반 수업을 받았던

냇 킹 콜은 1930년대 중반에 베이스 주자이자 친형인

'에디 콜(Eddie Cole)'이

결성한 밴드인 '콜스 밴드(Cole's Band)'에 가입하여

피아니스트로써 밴드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본명 대신 '냇 콜(Nat Cole)'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며 콜스 밴드에서 활동했던

냇 킹 콜은 1936년에 밴드의 일원으로

생애 첫번째 음반 녹음 작업에 참여하였다.

음반 작업 이후 냇 킹 콜은 밴드와 함께 재즈 클럽을 찾아 다니며

활발한 연주 활동을 펼쳐 나갔으며 이 즈음에 '킹(King)'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1937년 1월 무용수였던 '나딘 로빈슨(Nadine Robinson)'과

결혼한 냇 킹 콜은 활동 무대를 로스앤젤레스로 옮겨

오스카 무어(Oscar Moore, 기타)

웨슬리 프린스(Wesley Prince, 더블 베이스)'와

함께 트리오를 결성하여

새로운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들 트리오는 재즈 클럽들에서 연주 위주의

공연 활동을 매일 밤 펼치며

관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기 시작하였는데 점차

트리오를 찾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인기를 얻어 갔고 그에 따라 팬들은 냇 킹 콜에게

노래를 요청하는 일이 잦아지게 되었다.

결국 냇 킹 콜은 손님들의 요청에 의해 어느 날 밤

Sweet Lorraine'을 불렀는데

이 노래가 관객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게 된다.


Sweet Lorraine'의 밤 이후 냇 킹 콜은

피아노 연주와 노래를 병행하기 시작하였다.

1943년 트리오는 '캐피털 음반사(Capitol Records)'와 '

The King Cole Trio'라는 이름으로 계약하고 음반 데뷔를 준비하게 된다.
1944년에 데뷔 음반 'The King Cole Trio'를 발표한 킹 콜 트리오는

같은 해인 1944년에 첫번째 히트 곡 'Straighten Up and Fly Right'를

발표하였으며 1948년에는 또 다른 대형 히트 곡인

'Nature Boy'를 발표하였다.


팝 발라드 곡인 'Nature Boy'는 이후 많은 가수에 의해

다시 불려지며 팬들의 사랑을 받게 된다.

킹 콜 트리오의 냇 킹 콜은 1950년에 발표하여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올랐던 곡

Mona Lisa' 이후 재즈 피아니스트가 아닌 가수로써 더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냇 킹 콜은 이후 1951년에 발표한 'Too Young"과 같은 해에 발표되어

히트를 했으며 1991년에 냇 킹 콜의 딸인 '나탈리 콜(Natalie Cole)'이

생전의 아버지 모습을 영상으로 되살려 듀엣으로

노래를 불러 또 다시 히트시키며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곡인 'Unforgettable(1951년)'을 시작으로

Smile', 'Pretend', 'A Blossom Fell',

'Darling Je Vous Aime Beaucoup'등의

수많은 히트 곡을 발표하였다.


또한 냇 킹 콜은 1956년 11월 6일 부터 NBC-TV에서 흑인으로써는

최초로 자신의 쇼를 진행하며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았으며

2000년에 개봉되었던 영화 '화양연화'에 'Quizas Quizas Quizas'가

삽입되면서 다시 한번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살아 생전에 상당한 애연가였던 냇 킹 콜은 흡연으로 인한 폐암으로 투병하다

1965년 2월 15일에 캘리포니아주 샌타모니카(Santa Monica)의

세인트 존스 병원(St. John's Hospital)에서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