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갈이 초현실주의자? 현실주의자!
20세기 미술 거장 마르크 샤갈. [중앙포토]
파블로 피카소의 말을 기억하며 마르크 샤갈(1887~ 1985년)의 전시장에 들어섰다.
나의 발걸음은 한 줄의 글귀 앞에 멈추었다. “거만한 입체파 화가들…. 사실적인
자연주의, 인상주의 그리고 입체파는 나를 슬프고 답답하게 만든다. 벗어 던져라!”
이는 35세 샤갈이 자서전 『나의 인생 Ma Vie』(1931)에서 고백한 말이다.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찾기까지 멀고 험난한 여정을 가슴 절절히 얘기하고 있다.
화랑을 운영하며 만난 많은 작가의 고민이 순간 떠올랐기에 그의 말은 크게 다가왔다.
관람객은 샤갈의 작품이 따뜻하게 느껴진다고 말한다.
그러니 차갑고 어두운 그의 삶을 알게 될수록 놀랄 수밖에. 러시아 태생인 샤갈은
유태인으로 두 번의 세계대전을 온몸으로 겪었다. 나치의 유태인 학살을 피하기까지 한
영화 같은 그의 삶은 눈물겹다. 피난민으로 살면서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과 현재
사랑하는 가족의 이야기가 주요 소재다.
그러나 고난으로 가득한 그의 삶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는 거장을 이해하기 어렵다.
샤갈이 자서전에서 언급한 창작의 고통을 살펴보면, 어떻게 거장으로 성장했는지
단서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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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의 탄생 부른 사진기
샤갈이 태어난 1887년은 사진기가 보편화된 시대다.
사진 때문에 똑같이 그리는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어졌다. 새로운 화면구성과 색채로
나아갈 수 밖에 없게 된 이 시대의 작가들은 큰 숙제를 떠안았다. 샤갈의 답답하다는
고백은 이런 현대미술이 갖는 중압감을 말한다. 이것이 현대미술의 시작이다.
샤갈은 후원금으로 간신히 프랑스 유학길에 올랐다. 루브르박물관에서 고흐, 르누아르,
마티스, 쿠르베, 마네, 모네 등의 작품을 공부했다. 또한 자연주의 화가인 장프랑수아 밀레,
후기 인상주의 화가인 폴 고갱, 입체파 화가인 파블로 피카소 등과 친분을 나눴다.
그런데 당시 주류인 입체파 화가가 거만하게 느껴졌고 슬프고 답답하게 다가온 이유가 무얼까?
자연주의는 과학적인 근거에 맞춰 그린 그림이다. 샤갈은 유대인이기에 종교가 무척 중요했다.
종교는 초자연적인 성격이니까 과학적인 자연주의는 그와 친할 수 없지 않겠는가.
위의 그림 샤갈의 ‘연인들’에는 비과학적으로 꽃이 크게 그려지고 연인들은 아주 작게 그려졌다.
그 주변에 과학으로 증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천사가 등장하는 것에서 샤갈의 속내를 엿볼 수 있다.
인상주의는 빛의 변화가 남긴 인상을 묘사하는 것을 중시한 사조이다.
인상주의의 대표적 화가 클로드 모네의 그림. <파라솔을 든 여인(Woman with a Parasol Liles) 1875>
클로드 모네; 인상파, 내셔널 갤러리 오브 아트(미국, 워싱턴 DC), Oil paint, 1 m x 82 cm
[ⓒ Public domain 출처 wiki arts]
인상주의(인상파)는 야외로 들고 나가기 좋은 튜브 물감과 캔버스의 발달이란 배경에서
입체주의 사조의 가장 유명한 화가 파블로 피카소.
<아비뇽의 처녀들(Les Demoiselles d'Avignon) 1907> 파블로 피카소, 입체파,
뉴욕 현대미술관(미국, 뉴욕), Oil paint, 233.7 x 243.9 cm [출처 wikipedia]
피카소와 죠르즈 브라크는 모든 것을 입방체(큐브)로 바꾸었다.
반면 ‘산책’은 세계대전의 포화 속에서 러시아에 머물며 딸 이다를 낳고 나서 그렸다.
샤갈은 정면으로 두 다리를 벌리고 미소 짓는 모습으로 당당히 서 있다. 마치 소중한 딸을
얻은 아빠로서 현실을 감당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듯하다. 아내는 유대교 회당에서
느껴지는 색감으로 표현하면서 안전한 하늘에 올려놓고 있다. 이것은 그녀를 지키고 싶은
시적 표현이며 은유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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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몽상가 아닌 현실주의자”
샤갈은 자신을 초현실주의자라는 평가에 대해 저서 『나의 인생 Ma Vie』을 통해
“나를 몽상가라 부르지 마라! 나는 현실주의자다“ “그것은 비이성적 꿈이 아니라 실체의
추억을 그린 것”이라고 대답했다. 이런 샤갈의 언급처럼 그의 작품에 나타나는 표현은
세상을 적극적으로 바라보며 이해하고 화해하는 몸짓으로 보여진다.
마을은 단순한 색채(야수파 영향)와 입체(큐비즘 영향)로 표현했다. ‘도시 위에서’보다
‘산책’에서 나타난 마을의 풍경은 더욱 단순하게 그려지고 있다. 샤갈은 색채와 형태를
자유롭게 쓰고 있다. 과학적인 자연주의도 아니고, 빛의 영향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입체파처럼 화면 전체가 입체로 나타나지 않아 샤갈과 벨라의 얼굴 표정이 잘 드러나 있다.
결론적으로 그는 여러 유파의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어느 유파에도 들어가지 않았다.
샤갈은 ‘형식이 아닌 내용의 혁명이 되게 해다오’라는 말로 형태와 색채 모두에 자신의
이야기를 담는 것을 중요시했다. 모든 것을 녹여내어 결국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만든다.
샤갈은 인상주의가 해체되는 시기에 태어나 사진기의 등장이 가져온 현대미술의 다양한
예술 양식을 사용하며 성장한 화가다. 현대미술이란 조개에서 고난을 통해 진주와 같은
화풍을 만들어냈다. 그는 세상에 고난을 이겨내게 하는 ‘사랑의 색’을 보여준 화가다.
송민 갤러리32 대표 gallery3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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