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엔 어디론가 떠나고 싶습니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습니다.
이 가을이 떠나버리기 전에
내가 먼저 떠나고 싶습니다.
삶이 빈 껍질처럼 느껴져
쓸쓸해진 고독에서 벗어나
그대를 사랑하고 싶습니다.
그리움으로 피멍이 들었던 마음도
훌훌 벗어 던지고
투명한 하늘빛 아래
넋 잃은 듯 취하고 싶습니다.
간들거리며 불어오는 바람에
몸부림치도록 고통스럽던 마음을
하나도 남김없이 날려 보내고 싶습니다.
늘 비질하듯 쓸려나가는 시간 속에
피곤도 한구석으로 몰아넣고
한가롭게 쉬고 싶습니다.
머무르고 싶은 곳
머무리고 싶은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랑에 나도 물들고 싶습니다.
내 혼을 쏙 빼놓을 정도로
곱게 물든 낙엽들이
온몸을 투신하는 이 가을엔
어디론가 떠나고 싶습니다.
-용혜원 '가을이 남기고 간 이야기'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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