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들의 천국 흑산도 구석구석 둘러보기
섬! 섬은 남겨진 땅 ! 물에 잠긴 대륙에 대한 기억의 조각이다. 아름다운 흑산도! 흑산도는 섬다운 섬이다.
신안군의 다른 섬들이 농업을 주생산업으로 하는 반면 흑산도는 대부분 바다를 무대로 한 어업이 생업의 전부를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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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진정으로 섬다운 섬, 어촌다운 어촌을 구경하기 위해서는 흑산도가 제격이다. 영산팔경으로 유명한 영산도를 비롯한 국민적 관광지로 자리 잡은 천연기념물 170호로 지정된 홍도 외에 바다낚시의 대명사가 되어 버린 소흑산도(가거도), 태도, 만재도, 장도, 대둔도, 다물도 등 수많은 섬들을 껴안고 있는 흑산도.
이 흑산도는 두 개의 풍경으로 나눌 수 있다.
어업 전진기지 였던 예리항의 풍경이 유흥업소와 숙박시설로 흥청대는 분위기라면 면소재지인 진리는 학교와 아름다운 교회, 성당이 있고, 전망 좋은 곳에 가족호텔인 흑산비치호텔이 자리하고 있어 정적인 분위기로서 예리항과 커다란 대조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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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도는 밤 늦도록 불야성을 이루는 예리항 풍경과 바닷가에 서있는 성당과 교회의 명상적인 풍경을 동시에 볼 수 있으며 흑산비치호텔의 단란함을 볼 수 있다.
섬 하나 하나마다 제각기 아름다운 절경과 선사 시대에서 현재에 이르는 역사적 유물과 유적을 간직하고 있는 흑산도는 관고아과 휴양의 파라다이스이자 역사유적 탐방의 보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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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리아스식 해안과 때묻지 않은 수려한 자연환경은 흑산도의 동저 서고의 독특한 모습으로 필설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실정이나 이 또한 특별한 관광자원이라 생각된다.
흑산도 관광은 해상관광과 육상관광으로 나눌 수 있으며 흑산도 해상관광은 유람선을 타고 흑산도에 산재한 작은 섬들을 돌아보며 섬 하나하나에 형상의 볼거리와 역사와 전설의 설명과 더불어 해상에서 바라보는 일출과 일몰 또한 색다른 볼거리라 생각된다.
또한 , 흑산도 육상관광은 약 185만평의 섬 주위를 돌아 볼 수 있는 일주도로를 특별한 택시를 타고 2시간 30분에서 3여 시간을 돌아보면서 흑산도의 역사와 전설이 있는 흑산도 처녀 당과 피리부는 소년의 애틋한 사연이 담겨 있는 전설 이야기와 동백나무 군락지, 해상왕 장보고와 연관된 것으로 추정되는 삼층 석탑과 석등 그리고, 반월성, 상라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예리 항의 아름다움과 일주도로, 맑은 날에는 손에 잡힐 듯이 보이는 아름다운 섬 홍도와 망덕도(사자섬)에 얽혀 있는 재미있는 사연과 일출과 일몰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결코 흔하지 않은 전망대관광과 봉화대, 그리고 외롭고 고독한 유배의 섬 흑산도를 확인 시켜주는 손암 정약전 선생의 유배생가와 면암 최익현, 척준경 등 실존 인물들의 역사적발자취를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는 결코 흔하지 않은 전망대관광과 봉화대, 그리고 외롭고 고독한 유배의 섬 흑산도를 확인 시켜주는 손암 정약전 선생의 유배생가와 면암 최익현, 척준경 등 실존 인물들의 역사적 발자취를 직접보고 느낄 수 있으며 마을의 유래와 아름다운 산과 수목들 또한 볼거리라 생각되며 마을마다 색다른 모습들이며 섬사람들의 강인한 생활력과 인간이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섬 사람들의 모습들을 돌아보는 관광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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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도 일주 택시 2시간 30 분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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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없이 외로웠던 섬! 흑산도! 먼 옛날 돛단배를 타고 인근 섬까지 왕래 할 때 바다가 조금만 거칠어도 생사를 장담하지 못했던 섬! 흑산도! 그래서 더 더욱 고립될 수 밖에 없었기에 귀양지로서 널리 이름을 떨쳐 온 섬 ! 흑산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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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흑산도 예리 항 출발
흑산도는 산이 검은 섬으로서 흑산도에 자생하는 수목의 95%가 상록활엽수로서 가장 많은 종류는 동백나무와 나무껍질을 벗겨 한약재로 사용하는 후박나무, 그리고 해송과 곰솔 이라는 소나무가 있으며, 아주 특별한 나무로는 나도 밤나무가 있는데,,,잎은 사철이며 열매는 도토리 모양을 하고 맛은 밤 맛이다.
밤도 아닌 것이 밤이라고 우기는 나도 밤나무는 주민들의 방언으로는 일명 짹밤이라고 하는데 왜 짹밤 이냐 하면 밤이 조그만 해서 짹밤이라 하는데, 사실은 정확한 학명은 구실 잣 밤나무이다.
흑산도 산은 여름에도 푸르고 겨울에도 한 여름과 같이 항상 푸르기만 하다. 푸르다는 것은 가까이 보면 푸르게 보이고 조금 멀리서 보면 검 푸르게 보이며 아주 멀리서 바라보면 검게 보인다 해서 산이 검은 섬 흑산도라 불리 우게 된 것이다.
그래서 흑산도에는 육지와는 다르게 없는 것이 세 가지가 있다.
첫째, 봄에 봄꽃이 별로 없다.
둘째, 봄꽃이 없는 관계로 양봉이 안 된다.
섯째, 사철 푸른 상록 활엽소 관계로 가을에 단풍이 없는 아주 특별한 섬. 흑산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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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지석묘(고인돌)
흑산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문헌의 기록에 의하면 서기 828년 신라 흥덕왕 시절부터라고 하는데 지석묘(고인돌)가 발견됨으로서 흑산도의 역사를 다시 써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 지석묘는 선사시대의 고인돌로서 도 지정 문화재 194호로 지정되어 있다. 자 그러면 선사시대라면 지금으로부터 약 4천여 년 전인데 그 당시에 원시인들이 과연 이 먼 섬까지 배를 타고 왔을까 아니면 뗏목을 타고 왔단 말인가?
자 그렇다면 그 이유는 ? 우리나라에 있는 섬의 수는 약 3천 2백여개의 유,무인도가 있다. 이 3천 2백여 개의 섬들 중에서 그 옛날부터 섬으로 존재했던 섬은 유일하게 울릉도, 추자도, 제주도이다.
이섬 들을 제외한 섬들은 지금의 육지와 연결된 대륙의 일부였을 것이다.
동쪽으로는 부산을 기점으로 오륙도, 대마도, 일본까지 연결된 대륙이었고, 서쪽으로는 목포를 기점으로 신안군, 흑산도, 홍도, 중국까지 연결된 대륙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구가 형성된 후 네 번의 빙하기와 해빙기가 반복되는 과정에서 마지막 해빙기가 성경에서 말하는 노아의 방주에서 설명하듯 엄청나게 많은 비가 오고 엄청나게 많은 빙하가 녹아내리는 과정에서 해수면이 점차 높아지게 된 것이다.
정확하게 지금의 해수면보다 140m여 밑에 있던 해수면이 차오르는 과정에서 흑산도는 사람으로 치자면 발뒤꿈치를 들고 버터다 목까지 차버린 것으로 추정되면 홍도나 가거도 같은 섬들은 눈썹 밑까지 차버린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섬! 섬은 남겨진 땅!
물에 잠긴 대륙에 대한 기억의 조각이다. 섬을 시의 감정으로 표현해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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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진리 선착장
지금은 평범한 마을 선착장에 불과하지만 이 곳 역시 20년 전까지는 목포 등지에서 온 여객선들이 정박 했던 곳으로서 옛날에는 배낭기미 선착장으로 불리 우던 곳이다. 배가 머물 수 있는 곳으로 표현되는 순수한 우리말로서 배가 머무르는 곳 바로 선착장을 뜻하는 것이다. 그러나 선착장 마저 예리 항으로 이전해 버린 이제는 평범한 어촌마을 선착장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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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처녀당과 피리부는 소년전설
어촌사람들은 매년 당 신에게 풍어를 기원하는 제를 지내고 있다. 마을마다 부락신으로 군림하는 당신은 대개가 여신을 모시는 것이 관례인데 흑산도 진리 당에는 처녀 신을 모셨다고 하는데 이 처녀 신에 얽힌 이야기가 전설로 전해지고 있다.
먼 옛날 어촌사람들은 오로지 바다만을 의지하고 살아가고 있지만 바다라는 곳은 사람의 힘이나 과학의 힘으로 다스릴 수 없는 곳 이므로 각 가정마다 모시고 있는 신이 다를 수 밖에 없는 곳이 어촌인 것이다.
그러하니 그야말로 온갖 잡신들이 모두 모여있는 곳이 바로 섬 마을 어촌인 것이다. 매년 정초엔 이러한 온갖 잡신들을 모셔 놓고 풍어제를 올리는 과정에서(효녀 심청이가 공양미 삼백석에 팔려서 어부들의 제물이 되어 임당수 푸른 물에 빠져 죽듯이)마을의 처녀를 사다가 바다에 제물로 바쳤던 것이다.
해마다 처녀를 사다가 제물로 바치다 보니 19번째 처녀까지는 아무일이 없었으나 20번째 처녀가 바다에 빠지고 나서부터 흑산도에 엄청난 재앙이 닥친 것이다.
고기잡이 나간 배는 풍랑을 만나 좌초가 되고 만선의 깃발을 달고 들어오던 배는 수십 년간 다니던 똑 같은 뱃길에서 암초에 걸려 침몰되고 육지에는 전염병이 돌아 어린 아기들은 병들어 죽어나가고 어른들은 광기가 돌아 머리가 터지도록 싸우게 되니 하루에도 수십 명씩 죽다 보니 마을 원로들이 모여 용한 무당을 찾아가 흑산도에 이러한 재앙이 온 연유와 재앙을 풀 수 있는 길을 알아봐 달라고 부탁을 하게 된 무당이 하는 말이 매년 정초에 풍어제를 올리는 과정에서 바다에 빠뜨려 죽인 처녀의 혼이 19번째 까지는 무사히 하늘로 승천하였으나 20번째 처녀의 혼이 하늘로 승천하지 못하고 흑산도에 머물면서 재앙을 부리고 있다고 한다.
마을 원로들이 그렇다면 그 처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물어보니 무당이 하는 말이 조건은 두가지 첫 번째 조건은 흑산도에 있는 온갖 잡신들 중에서 자신을 으뜸 신으로 추대해주고 두 번째는 자기자신 이후에는 절대로 생사람을 바다에 재물로 바치는 행위를 하지 않으면 재앙을 풀어주겠다고 답한 후 진리 당을 처녀 당으로 명칭을 바꾸고 처녀의 화상을 크게 그려 걸어 놓고 처녀당제를 지내게 되었다고 한다. 매년 정초에 처녀당 제를 지내고 있던 중 섬과 섬 사이를 오가며 옹기를 팔러 다니는 오기배가 있었다.
이 옹기 배에는 선장과 옹기를 파는 세 명과 배에서 일을 도와 주는 곱상한 소년이 타고 있었다. 이 곱상 한 소년은 얼굴만 고왔던 것이 아니라 피리를 기가 막히게 잘 부는 소년이었다고 한다.
하루는 흑산도에 옹기를 가득 실은 배가 옹기를 팔기 위해 처녀 당 밑 바닷가에 닻을 내렸다.
선장과 세 명의 선원은 옹기를 팔기 위해 마을로 들어가고 혼자 남은 소년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처녀당 앞 나무에 올라 앉아 피리를 불었다.
그 옛날에는 한번 옹기를 팔러 오면 옹기를 팔 때 까지 몇 날 몇일 이고 기다리다 아무 때고 옹기를 다 팔아야만 그 섬을 떠났다고 한다.
왜냐하면 지금과 같이 바닷길이 편리한 시절도 아니고 돛을 이용한 돛단배 시절이기에 옹기르 팔기위한 많은 날들을 소년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매일같이 처녀 당 앞에서 피리를 불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다 옹기를 다 판 선장과 선원들은 출항하기 위해 돛을 올리고 닻을 올리는 순간 조금 전까지도 말짱하던 날씨가 갑자기 돌변하여 파도가 거세지고 섬 쪽으로 역풍이 불어 배를 움직일 수 가 없게 만들었다. 이렇게 괴이한 날씨는 매번 옹기배가 출항하기 위해 돛을 올리고 닻을 오릴 때 마다 급년하는 바람에 여러 날을 그렇게 흑산도에 머물 수 밖에 없었다. 이러다 보니 선장이 생각하기를 이는 틀림없이 우리 선원 중에서 누군가가 못된 짓을 하여 바다가 진노하여 우리를 육지로 가지 못하게 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여 용한 무당을 찾아가 전후사정을 얘기한 수 육지로 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 달라고 한다.
무당이 하는 말이 처녀당의 처녀신이 피리부는 소년의 피리소리에 반하여 뱃길을 막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된단 말인가? 무당이 피리부는 소년을 두고 가는 방법밖에 없다고 한다.
피리를 부는 소리에 반했으면 피리만 두고 가면 되지, 소년은 왜 두고 가란말인가? 라고 물으니 피리부는 사람 없는 피리가 무슨 소용 있단 말이요. 피리부는 소년과는 절대로 같이 갈 수 없다고 단호히 말을 한다. 선장은 생각한다.
이곳 흑산도가 어떤 곳인가(지금이야 관광객이 찾아오는 곳이지만 그 옛날에는 그야말로 대역죄인 들만을 보내는 귀양처가 아닌가) 이러한 곳에 식구를 놓고 간다는 게 말이 라도 되는가 그러나 소년과는 같이는 절대로 갈수 없다 하니 할 수 없이 선원들을 모아 놓고 모사를 꾸미게 된다.
바다가 우리를 육지로 가지 못하게 하니 천기를 달래기 위한 제사를 지내고자 하니 소년에게 저 건너 마을에서 술을 사오라고 거짓 심부름을 시키고 소년이 멀어지는 사이에 돛을 오리고 닻을 걷으니 섬에서 밀어대는 뒷 바람에 의해 순식간에 옹기 배는 흑산도를 떠나게 된다. 술을 사가지고 온 소년은 배도 없고 선원도 없는 처녀 당에서 울고 불고 몸부림을 칩니다.
한참동안 몸부림치다(사람은 극한 상황에 닥치면 순간적으로 냉정을 찾게 된다)아니다 이 곳이 어떤 곳인가 흑산도가 아닌가 아 저 먼 바다에 급한 일이 있어 잠깐 나갔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처녀 당 앞 소나무 가지에 올라 바다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기다리다 혹시 라도 저 먼 바다에서 내 피리소리를 들으면 돌아 오지 않을까 하고 구슬프게 피리를 불어보지만 떠나간 배는 영영 돌아오지 않고 결국은 소년은 처녀당 앞에서 추위에 지치고 굶주림에 지쳐 숨지고 말았다.
지금도 처녀 당 앞에는 피리 부는 소년의 무덤과 처녀 당에 얽힌 전설을 듣고 보기위해 많은 사람 들이 다녀가고 있으며 1978년 7월 26일 KBS TV 전설의 고향에 흑산도처녀당과 피리부는 소년으로 방영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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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배낭기미 해수욕장과 양식장
진리 처녀당을 지나다 보면 조그마한 포구 같은 곳이 나오는데 이곳이 배낭기미 해수욕장이다.
이 배낭기미 해수욕장은 흑산도에 있는 두 개의 해수욕장 주에서 가장 교통이 편리한 곳으로서 작은 자갈 반 고운 모래 반으로 이루 어진 해수욕장이며 특히 이 곳의 모래는 규사로 이루어전 고운 사질로 이루어 졌으며 간만의 차이가 없는 완만한 경사를 이루어져 안전한 해수욕장이라 할 수 있다.
특히 해수욕장 주변에는 송림 숲이 있어 편안히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며 주위에 샤워장과 화장실이 준비되어 있어 편리하며 주변에서 낚싯대를 드리우면 우럭과 낚시를 병행 할 수 있는 흔하지 않은 해수욕장이라 할 수 있는 곳이며 해수욕장 앞 양식장은 미역과 다시마를 기르고 있는 장소라서 특히 물이 맑고 깨끗함을 자랑할 수 있다.
또한 이 곳에서 기르는 미역과 다시마는 전복을 기르기 위해서 기르는 미역과 다시마이며 ,참고로 흑산도에서 양식하는 종류는 우럭과 전복만을 주업으로 하고 있다.
이는 흑산도 수온이 한 여름에도 20℃를 넘지 않는 지역으로 우럭과 전복이외의 종류는 양식에 적합지 않는 곳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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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읍동 마을
이 마을은 ‘읍동“또는 ”고을기미“라는 마을로서 문헌상 흑산도에 최초로 주민이 거주한 곳이라 한다.
주민이 거주하게 된 동기는 신라 말결 해상왕 장보고가 완도에다 청해진을 구축하고 중국과 무역을 교역할 당시 흑산도를 중간 기착지로서 이곳에 머물면서 재정비하여 중국을 왕래 하였다고 한다. 그 당시에 중간 기착지로서는 꼭 필요한 지역이였으리라 짐작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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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삼층 석탑과 석등
석탑과 석등은 신라 말 또는 고려 초에 석조물로 추정되며 도 지정 문화재 193호로 지정되었으며 석탑 및 석등의 형식이 국보 제 10호로 지정된 전라북도 남원군 산내면 대정리에 있는 실상사 백단암 3층 석탑과 모양이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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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반월성
이 성은 생김새가 반달모양을 하고 있어 지어진 이름인데 길이 2,300m, 높이 0.5~2m 이며 신라말 해상왕 장보고가 왜구를 방어하기 위한 목적으로 축조 되어진 것이라 전한다.
연대는 정확하지 않으나 고려시대 입도 당시부터 쌓여진 성이다.
성의 뒤쪽은 바다의 면에 있어 절벽을 이뤄 성의 방어벽으로는 자연적 여건이 완벽한 성터이며 성벽은 주변에 산재한 자연석을 이용하여 축성되었는데 옛날 적을 막아낸 흔적(전투의 흔적으로 보이는 암벽 = 피바위)이 있어 그 사적을 입증해 주고 있다.
현재 2-4단계까지 보존되어 있고 성문은 없으나 성문의 받침들은 남아 있어 돌의 크기로 그 규모를 짐작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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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동백나무 군락지
상라산 정상을 가는 일주도로 변에 있는 동백나무 군락지는 흑산도 자랑 거리 중에서 손 꼽을 수 있는 곳이다.
굽이굽이 이어지는 고갯길을 열 두 구비 사이의 울창한 동백나무는 보는 이들의 감탄사를 연발하는 곳이다.
햇빛에 반짝이는 동백 나뭇잎의 반작거림이며 2,3월경 동백꽃의 화사함을 과연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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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흑산도 아가씨 노래비
상라산 전망대가 있는 곳에 있다.
“남몰래 서러운 세월은 가고 물결은 천번 만번 밀려 오는데 못 견디게 그리운 아득한 저 육지를 바라보다 검게 타 버린 흑산도 아가씨·”
설명이 필요 없는 가수 이미자의 “흑산도 아가씨” 노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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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정상에서 본 일주도로와 예리 항
상라산 정상, 전망대에서 보는 예리 항은 항구의 아름다움과 머나먼 섬 여행객들의 피로를 한 번에 씻어 버릴수 있는 상쾌함을 제공하는 곳이라 할 수 있다. 굽이굽이 이어지는 자연항의 모습과 굽이굽이 열두 구비고갯길은 과연 흑산도를 대표할 수 있는 관광 명소 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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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정상에서 본 홍도와 일몰
상라산 정상 서쪽 방향은 잡힐 듯이 보이는 홍도와 장도와 해상 가두리의 모습도 아름답지만 한 여름 홍도 북쪽 끝으로 떨어지는 낙조는 흑산도 관광에서 최고로 꼽을 수 잇는 곳이다. 구릉진 계곡사이의 울창한 동백나무와 섬과 섬 사이로 떨어지는 낙조의 모습을 과연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바다와 하늘을 불게 물들이다 망망대해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한여름 태양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황홀함을 감출 수 없으련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늦게 지는 태양을 바라보고 있다 라고 생각한다면 과연 무슨 말로 표현해야 좋을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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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봉화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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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라산 정성 서쪽에 있는 봉화대는 “중국에서 고려에 사신이 이르게 되면 밤에는 산위에 봉화대에서 불을 밝혀 이웃 섬과 차례로 연결해 왕성에 이르게 하는데 흑산도가 그 봉화대의 시작이다”라는 고려도령의 기록으로 보아 고려시대 봉화대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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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지도바위
비리 마을 당산 옆 작은 바위섬에 뚫린 구멍이 우리나라 한반도 지도 모양의 구멍이 있다.
이 구명을 우리나라 지도 바위라 한다. 우리나라 통일된 한반도 지도로서 우리나라 사람 모두의 바램인 남북통일의 염원이 담긴 지도바위라 할 수 있다. 지도바위 위치에서 비리 마을 쪽으로 백여 미터쯤 지나다 보면 지도의 모양이 변하게 된다.
우리나라 한반도 지도에서 북으로 북으로 광활하게 펼쳐진 모습이 그 옛날 신라,고구려, 백제때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북만주 일대와 소련 일부를 포함된 모습이다. 이는 우리나라가 통일된 후에 모습이 될 것을 예견 하는 것이라 설명할 수 있는 일명 통일 지도 바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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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벽화
간첩동굴 위 위험도로를 개설하여 대단위 인공 구조물이 설치되었다. 이는 친 환경적인 공법으로 건축 전문용어 (켄트레바)공법으로 설치된 교각이 없는 다리 형태의 도로로서 보는 이의 간담이 서늘할 정도의 특이한 건축 공법으로 우리나라에 흔하지 않은 특수한 도로이다.
깍아지는 절벽위에 날아갈 듯이 앉아 있는 도로의 모습에 신안군 13개면과 흑산면 전체를 벽화로 그렸으니 이 또한 훌륭한 관광꺼리라 생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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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문암산 원시림
상록활엽수 단지로 산 한쪽 전체가 원시림으로 이루어져 있다. 일명 나도 밤 나무(학명 ,구실 잣 밤나무)단지를 이루고 있는 지역으로 융단을 깔아 놓은 듯 울창한 숲은 한겨울에도 여름과 같은 짙은 녹색 숲은 보는 이의 마음과 눈을 흑산도에 묶어 놀 수 있는 광경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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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문암산 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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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과 눈을 시원하게 식혀준 후 산 모퉁이를 돌아서면 문암산 정경이 나타난다. 울창한 상록 활엽수 단지 위로 깍아지는 바위 절벽이 층을 이루고 있는 모습은 말로서 형용하기 어려운 광경이다. 설악산 절경의 일부를 아니, 지리산 절경일부를 옮겨 왔을까 하는 착각을 일으키는 장면이다. 해발 사백미터 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웅장한 모습은 보는 이의 감탄사를 연발케 한다. 바다와 산을 함께 볼 수 있는 흑산도관광 중 특별한 곳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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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곤촌 마을과 양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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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을은 맏 곤(昆)자를 쓰는 “곤촌”이라는 마을 이다.
흑산도에서 가장 작은 마을 중 하나이다. 그 옛날 선조들이 마을 이름을 지을 때 비롯 작고 살기 어려운 마을 이라도 산너머 큰 마을 형태마을 같이 잘 살게 해 달라고 맏 곤(昆)자를 써 곤촌이라 지었는데 잡는 어업의 시대에서 기르는 어업시대로 전환되면서 마을 이름과 같이 산너머 형의 마을 큰 마을 같이 살기 좋은 마을이 되어가는 것 같다. 마을 앞 바다에 수많은 양식장은 이를 대변해 주는 것이 아닐런지,,, 그 옛날 우리 조상들의 현명함을 엿볼 수 있음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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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전망 좋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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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도로변에 망망대해를 바라 보는 곳이 있다. 이 곳이 바로 전망 좋은 곳이라 할 수 있다. 오른쪽 편에 홍도가 잡힐 듯이 보이고 앞쪽으로 태도가 보이며 날씨가 좋은 날엔 태도 뒤쪽으로 소흑산도인 가거도가 아련히 보이는 곳이다.
가거도가 얼마나 먼 섬인가 흑산도에서 남서쪽 82km에 있는 섬이 육안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 일까? 그러나 흑산도 이 장소에서는 날씨가 좋은 날에는 가능하기에 전망 좋은 곳으로 손색이 없으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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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사리 마을과 정약전 유배생가 (복성재)
이마을은 모래 사(沙)자를 쓰는 “사리”라는 마을이다.
이 마을은 흑산도에서 정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로서 미역과 다시마, 그리고 멸치를 생산하는 마을로 흑산도에서 세 번째로 큰마을이며 초등학교학교 분교와 보건지소, 미역가공공장 등이 있는 마을이다.
이 마을이 더욱 유명하게 된 것은 손암 정약전 선생의 유배지가 있는 마을로 장래 섬 유배 체험관을 설립 하기로 한 마을이다.
<손암 정약전과 자산어보>
손암 정약전은 실학자 정약용의 친형으로 1758년(영조 34년)경기도 광주군 열 수, 즉 남한강과 북한강이 합류되는 마현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문과에 급제한 후 병조좌랑이 되었으나 천주교도 였던 탓에 1801년 신유사옥의 희생자가 되었다.
처음에는 전남 완도군 신지도에 유배 되었다가 7개월쯤 지난 후 흑산도로 옮겨졌는데 이곳에서 1816년 사망하였다.
손암 정약전은 흑산도에서 15년 동안 유배생활을 하면서 흑산도에서 볼 수 있는 생선, 조개,해초 등 해산물에 대한 방대한 기록을 남겼다.
그 저술이 바로 자산어보(紫山魚譜)이다. 자산은 흑산(黑山)이다.
나는 흑산에 유배되어 있어서 흑산 이라는 말은 무섭다. 집안 사람들의 편지에는 흑산을 빈번이 자산(紫山)이라고 쓰고 있다. 자(紫)는 흑(黑)과 같다.
흑산도는 홍어의 본고장이다.
정약전은 홍어에 대해 “큰놈은 6~7자 안팎으로 암놈은 크고 수놈은 작다. 모양은 연 잎과 같고, 빛은 검붉고, 코는 머리 부분에 자리하고 있으며 그 기부는 크고 끝이 뾰족하다...(중략) 암놈이 낚시 바늘을 물고 엎드릴 적에 수놈이 이에 붙어서 교합하다가 낚시를 들어 올리면 나란히 따라 오는데 이때 암놈은 먹이 때문에 죽고 수놈은 간음 때문에 죽는다고 말할 수 있는 바 음(淫)을 탐내는 자의 본보기가 될 만하다...(중략) 동지후에 비로소 잡히나 입춘 후에야 살이 찌고 제 맛이 난다. 4월 이후에는 몸이 쇠약해져 맛이 떨어진다. 회,구이, 국,포등에 모두 적합하다. 아주 가까운 고을(오늘날의 목포 부근)에서는 삭힌 홍어로 국을 끊여 먹으면 더러운 것이 제거된다..”라고 쓰고 있다. [자산어보]은 총 4권 1책으로서 제1권에는 린류 71종이 箕록되어 있고 제2권에는 무린류 43종이 제3권에는 개류 68종(거북 1, 게17,조개 50) 그리고 제 4권에 잡류 45종에 관한 분류 箕록되어 있다. [자산어보]에는 흑산도 연해에 서식하는 어류, 패류,조류,해금,층수류 등 2백 27종에 관한 명칭,분포, 형태,생태 및 활용 등이 기록되어 있다.
그 중 어류의 형태와 생태에 있어서는 오늘날의 어류학자들도 미처 조사하지 못한 사항들이 조사기록되어 있다. 특히 청어때가 산란기인 정월이 되면 동해에서 한류를 따라 서해로 이동하는 실태의 기록은 유일무일한 것으로서 귀중한 자료이다.
신안군에서는 자산어보를 번역하여 출간 판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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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사리 포구
사리포구는 방파제가 없는 포구이다. 더구나 정남쪽에 있는 포구라서 봄부터 초겨울까지는 동남풍, 동서풍이 모질게도 불어 대는 곳이다.
그런데도 사리 마을 어선들이 정박하고 있는 이유는 포구 앞에 7개의 작은 섬들이 자연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어서 이다.
일명 칠 형제 효자 섬으로도 불린다. 그 옛날 사리 마을에 홀어머니가 아들7명과 바다에 물질을 하며 살고 있었다. 어느 해인가 큰 태풍이 불어와 몇 날 며칠을 어머니가 바다에 나가 물질을 하지 못해 아들 7형제 하나 하나가 바다에 들어가 두 팔을 벌려 파도를 막아서다 7개의 작은 섬들로 굳어 버렸다.
그래서 7개의 섬을 7형제 효자 섬으로 불리우게 되었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다. 지금은 7개의 섬과 마을과 아름다운 해안선은 흑산도 관광에서는 손꼽을 수 있는 곳으로 많은 사진 작가와 화가들이 다투어 찾아오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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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샛개 해수욕장
소사리 마을과 천촌리 마을 사이에 있는 작은 해수욕장이다.
규모는 작으나 해수욕장의 조건들은 두루 갖운 해수욕장의 특징은 고운 모래 규사질로 이루어진 해변은 규모는 작으나 수심이 완만하여 2백여 미터까지도 어른 가슴 깊이 정도를 유지하며 썰물 때는 한없이 밀려오는 심한 파도 속에서 파도타기를 할 수 있고 해변가 갯바위에서는 바다낚시를 겸할 수도 있다.
그리고 신안군에서 관광객과 피서객의 편의시설로 샤워장과 화장실은 물론 식수장까지 무료 사용할 수 있게 시설을 준비 하였으며 주변 야영장도 준비중인 해수욕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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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천촌리 마을과 최익현 유허비
이 마을은 얕을 천(淺)자에 마을 촌(村)자를 쓰는 “천촌리”라는 마을로 옛이름은 “여티미”라는 마을이다.
이 마을의 옛 이름과 현재의 이름이 다르게 된 이유는 일제 강점기 시절 창시개명 당시 현재의 엉뚱한 이름으로 변하지 않았을까 한다.
이 마을 앞 바다에는 작은 바위섬(여)두 개가 마을의 수호신처럼 마을을 지키고 있다.
그 옛날에는 흑산도 섬 마을들이 바다에서는 보이지 않은 곳에 형성되었다 한다.
이 섬에는 그 옛날 해적들이 수시로 침범하는 지역인 관계로...
그러나 이 마을 만은 바다에서 보면 마을 앞 2개의 바위(여) 틈으로 마을이 살짝 보이는 곳이라 하여 여티미(여 바위틈으로 보이는 곳)라고 하였는데 일제시대 때 창시개명 당시 일본인들이 순수한 우리말의 여티미의 여를 엿본다로 생각지 않고“ 옅트다”라고 보고 옅을 천(淺)자에 마을 촌(村)자를 써서 천촌리 라는 이름으로 변하게 된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나라는 옛부터 사람의 이름이나 마을의 이름을 함부로 바꾸어 버리면 큰 재앙을 받는다고 하였다.
실제로 이 마을의 경우 그 옛날 여티미 라는 마을 이름을 사용할 당시는 흑산도에서 큰마을에 속했음은 물론 서당까지 운영했던 마을이 오늘날 천촌리라는 지명으로 바뀌어 버린 100여년 사이에 흑산도에서 가장 작은 마을에 하나로 몰락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마을의 이름이나 사람들의 이름을 함부로 바꾸어서는 안됨은 물론 옛 이름을 찾아 주는 운동이라도 해서 순수했던 옛 이름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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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암 최익현 유허비>
면암 최익현(1833~1906)은 한말의 대표적인 유림으로 1873년 호조판서로 재직중 대원군의 서원철폐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제주도에 유배되었다.
1876년 강화도 수호조약이 체결되자 도끼를 메고 광화문에 나가“왜적을 물리치지 않으려면 신의 목을 베라”고 엎드려 상소 하였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오불가척화의소(五不可斥和議蔬)이며 이로 인해 흑산도에서 3년의 유배생활을 하였다.
면암은 이 유배 생활동안 진리 마을에 서당을 세워 후학을 가르쳤고 천촌리(여티미)로 옮긴 뒤로도 서당을 건립하여 마을 사람들의 교육과 애국애족의 정신을 심어 주었다.
면암 최선생 유허비가 있는 지장암(일명: 손바닥 바위)에 친필로 쓴 기봉강산 홍무일월(箕封江山 洪武日月)이라는 그의 친필 글씨가 암각(박량선 서)되어 있는데, 우리나라가 이미 오랜 옛날부터 있었고 독립된 대한제국임을 강조 하는 뜻으로 면암의 우국충정을 표현한 것이라 한다.1924년 9월 면암의 문하생 오준선, 임동선 등이 건립한 면암 최선생 적로유허비가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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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장암에서 글자를 세기고 곧 운자를 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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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물주가 한산을 나누어서,
저 파도 속으로 던졌구나.
많은 선비들은 속세를 피하여 들어오고
심상한 염장이라 구차스레 한가했네.
땅은 기역에 닿았으나 증거 될 서적은 없고
역서는 승정을 보니 세월 얼마나 되었나?
이 새김이 일은 적으나 뜻은 크니
마을 사람들아 가벼이 깍아 버리지 말라.
한 부의 의리를 푸른 산에 물으니,
만가지 만지면서 풀 언덕 서 있구나.
사람들아 하늘 땅 비좁다 말라.
좁은 곳에도 일월은 한가 하구료.
양공의 마음에 얻은 것이 아니면,
누가 옛 모양을 다시 보도록 했으리.
이 땅 경계는 비록 변할 때 있으나,
돌이 새긴 글자는 언제나 없어지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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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구문여 바위
이 바위는 일명 구멍 바위 (구문여)다.
바다에 작은 섬에 구멍이 뚫린 바위로 보는 사람의 감성에 따라서 묘한 모양으로 보일 수 있는 바위섬이다.
보는 이에 따라 설명하는 사람에 따라 변화가 있는 흑산 관광명소 중에 하나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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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샘골 자갈 해변과 선원사 암자
이 곳은 자갈밭 이름과 같이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과 잔 자갈로 이루어진 작은 해변이 있는 곳으로, 흑산도 주민과 관광객들이 종종 찾아 오는 곳이다.
그 옛날에는 물이 흔한 곳이었으나 지금은 흑산도 비상 상수원으로 활용하고 있어 계곡의 맑은 물은 볼 수 없음이 아쉬울 뿐이다.
선원사 암자는 해변가의 작은 암자로 스님 한 분이 상주 하는 곳으로 흑산도를 찾아온 관광객들 중 불심자들이 자주 찾아와 불공을 드리는 곳이다.
26.예리 항
흑산도 아가씨
남몰래 서러운 세월은 가고
물결은 천번만번 밀려 오는데
못견디게 그리운 아득한 저 육지를
바라보다 검게 타버린
검게 타버린 흑산도 아가씨
한없이 외로운 달빛을 안고
흘러온 나그넨가 귀향 살인가
애타도록 보고픈 머나먼 그 서울을
그리다가 검게 타 버린
검게 타 버린 흑산도 아가씨
─━☆멋진자료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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