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문예부흥기를 이끌었던 정조대왕은 정약용을 극진히 신임하였는데,
당파싸움으로 시종하던 조정은 정조가 세상을 뜨자 종교 신앙문제를 이유로 정적 제거에 나서고,
이 와중에 정약용 일가는 일직이 들어보지 못한 끔찍한 수난의 희생물이 된다.
형 정약종과 형수, 그리고 매형 이승훈과 조카들, 조카사위 황사영까지 한꺼번에 몰살당한다.
그리고 자신은 또 다른 형 정약전과 돌아올 기약 없는 귀양길에 오르게 된다.
다산 정약용은 귀양지 강진에서 내리 18년(1801~1818)을 살았다.
이곳 사의재(四宜齋)는 다산이 처음 도착해서부터 만 4년간 기거하던 역사 공간이다.
'네 가지를 마땅히 해야 하는 방'을 뜻하는 사의재(四宜齋)
"생각은 마땅히 맑고 담백해야 하고,
외모는 마땅히 단정히 해야하며,
말은 적어야 하고,
움직임은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로다"
사의재는 실학의 정점이었던 고독한 선각자가 유배생활을 시작했던 슬픈 곳이지만
동시에 다산 정약용의 장엄한 첫 성지이기도 하다.
강진군은 오랜 고증을 거쳐 선생의 손때와 눈물과 회환과 좌절과 꿈이 숨 쉬듯
생생한 이곳 동문 안쪽 우물가 주막 집터를 2007년 원형 그대로 복원하였다.
사의재를 중심으로 한옥체험 숙박시설, 다산의 정신을 배우는 다산강학당, 볼거리와 체험 거리를
제공하는 저잣거리 조성, 동문샘 공원정비, 관광객을 위한 주차장 조성 등
약 80억 원의 사업비를 투자해 사업을 완료했다.
저잣거리에서는 강진의 전통차를 체험하는 차 체험관, 동문마을 주민들이 운영하는 잡화점,
공예가들을 위한 공방을 비롯해 수제도장이 들어서고,
전통한과, 천연비누, 다산 차 전통주, 도자기 판매 및 체험 등 청년창업자들이 입점해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하면서 관광객 및 군민들에게 먹거리와 볼거리, 체험 거리를 제공한다.
또, 오는 3월부터는 조선 시대 당시 시대와 인물을 해학적으로 재현한
‘조만간(조선을 만난 시간)’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4월부터는 다산 선생의 강진 유배 기간의 여정을 해학적으로 표현한
신바람 유랑단의 ‘동문매반가’ 공연도 진행할 계획이라고 한다.
다산선생의 죄목은 사학(邪學), 즉 그릇된 가르침을 쫓는 죄라는 뜻으로 ‘천주교인’을 이르던 말이다.
그래서 이 말에 모두들 두려워 아무도 다산을 받아주려 들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영문을 모르는 주막 노파가 그를 받아주었다고....
동문 밖의 우물 곁에 있던 주막이었으므로, 다산은 이곳을 동천여사로 불렀단다.
복원한 동천여사와 돌담과 아담한 주막채가 고향처럼 정답다.
위치는 강진읍내에 연접되어 쉽게 접근이 가능하며, 영랑생가와는 약1km 거리에 있다.
모란이 피는 5월이 되면 영랑생가로 떠나보시길....
'출사지·여행정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3월 꽃축제 7선 줄겨보세요 (0) | 2019.03.13 |
---|---|
예당 저수지 출렁다리·황금나무, 훌륭한 포토스폿 (0) | 2019.03.06 |
역시 여름 휴가지는 섬이지 (0) | 2019.02.28 |
전국 벚꽃 개화시기 참고하세요 (0) | 2019.02.26 |
천수만의 작은 쉼표, 홍성 죽도 (0) | 2019.02.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