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답사

비로암 석조비로자나불좌상

선바우1 2019. 5. 3. 22:01









비로암 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제244호)


 동화사 비로암(毘盧庵)의 작은 전각 대적광전에 모셔져 있는

이 석조비로자나불좌상(石造毘盧遮那佛坐像)은 대좌와 광배가 완전히

보존되어 그 가치가 높아 보물 244호로 지정되었다.

민애왕(재위 838∼839)의 명복을 빌기 위해서 만든 대구 동화사

비로암 삼층석탑(보물 제247호)과 동시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높이 1.29m의 불상이다.

둥근 얼굴은 풍만하고 눈·코·입이 작아지고 있으며,

미소가 사라지고 단아한 모습이 마치

고요한 참선의 세계에 몰입한 선사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8세기 불상에 비해 어깨는 뚜렷하게 좁아졌으며, 가슴은 평평하고,

하체의 처리도 역시 둔화되었다. 이러한 위축되고 둔화된 표현은

9세기 중엽에 나타나는 전형적인 불상양식이다.





비로암 삼층석탑(보물 제247호) 
비로암 삼층석탑은 동화사 서쪽 언덕에 자리잡은 비로암의 대적광전

앞뜰에 세워져 있는 3층 석탑으로, 1층 탑신에서 나온 사리호(舍利壺, 사리를 담는 그릇)에

새겨진 명문(銘文)에 ‘통일신라 경문왕 3년(863)에 민애왕의 명복을 빌고자

이 탑을 세웠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이 탑이 민애왕(閔哀王,817~839)의 원탑(願塔)임이

알려지게 되었다.

이 탑이 세워질 때 심지(心地) 대사는 동화사에 머물며 전지대덕(專知大德)으로

원탑 건립에 참여하였다. 헌덕왕(809~825)의 아들인 심지는 민애왕 김명(金明)과는

사촌 형제지간이다. 또한 이 탑을 발원한 경문왕(861~874)은 민애왕에게

죽임을 당한 희강왕의 손자로, 분열된 진골 귀족을 화합시키고자 민애왕의

원탑을 이곳에 세웠던 것이다.

탑은 다듬은 긴 돌로 널찍하게 탑 구획을 두르고, 상ㆍ하 2단의 기단 위에

삼층의 탑을 쌓았다. 하층 기단 윗면에 돌출된 굽 모양 괴임대는 대적광전의

비로자나불 중대석받침과 수법에서 유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