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문종택 전경
사랑채 경의당
경의당 ㄱ자형 대청마루
사랑채 들어열개문
튼ㅁ자영의 안채 정면 대청앞면을 방주로 세워 검소함을...
곳간채. 방아간 심하게 퇴락하였다.
디딜방아
토담이 ... 원형 보수가 시급한 상태이다.
안채→ 사랑채의 후원 토담장
사랑채 → 안채의 후원 사랑채뒷담은 지난7~80년대에 토담에서 시멘트 블럭담 장으로 바뀐듯하다.
지포강당 강당 중앙 계단 옥계석 4단이 위로 놓여져 ...
사당
석문종택 (문자 제492호) 경북 예천군 지보면 도장리 377
이 가옥은 1609년(광해군 1)에 석문 정영방이 건축한 건물로서,
와가 몸채가 튼口자형을 이루고 있으며,
몸채는 안채와 사랑채가 90°각으로 돌아 앉아 내외공간이 구분되어 있으며
종택뒤 한집너머에 지포강당과 사당이 배치되어있다.
★석문 정영방(石門 鄭榮邦, 1577~1650)본관:동래(東萊). 자:경보(慶輔), 호:석문(石門).
홍문시독(弘文侍讀) 정환(鄭渙)의 현손으로 예천군 용궁면에서 태어났다.
1599년(선조 32년) 정경세(鄭經世)가 벼슬을 버리고 고향 예천에서 강학으로 소일할 때
그가 먼저 수학했으며 이후 학문정진하여 용학(庸學)과 경전에 통달했다.
1605년(선조 38)에 성균 진사가 되었으며, 정경세가 그의 학문을 아깝게 여겨 천거하였으나
광해군의 실정(失政)과 당파싸움에 회의를 느껴 벼슬길에 나서지 않고 은둔생활을 하였다.
1636년(인조 14년) 병자호란 이후 국사가 어지러워 영양군 입압면 연당리로 이주하여
산자수명한 자연을 벗삼아 소요자적하였다.
그는 이 곳에 연못을 파고 서석지(瑞石池)라 이름짓고, 그 위에 敬亭을 지었다.
영양이 폐현되었을 때 1633년에 복현을 위한 상소를 올려 영양현이 복현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였다.
★영양 서석지(英陽 瑞石池) 중요민속자료 제108호 경북 영양군 입암면 연당1동 394-1
이 서석지는 조선 광해군(光海君) 5년(1613)에 석문 정영방(石門 鄭榮邦) 선생이 경정(敬亭)
앞에 만든 조선시대 민가의 대표적인 연못[池塘]이다.
선생은 1577(선조10年)에 예천 용궁에서 출생하여 우복 정경세(愚伏 鄭經世) 선생이 우산(愚山)에서
제자들을 가르칠 때 수업하여 경학(經學)의 지결(旨訣)을 배웠다.
선생은 성리학과 시(詩)에 능하였고, 1636년(仁祖14年) 병자호란이 끝나자 선생은 넷째아들인
임천 제(臨川 悌)를 데리고 자양산(紫陽山) 남쪽 기슭인 이곳(진보의 임천, 현재 입암면 연당동)에서 살았다.
선생은 서쪽의 구릉 하에 흰 돌이 서있는 곳에 못을 파고 서석지라 이름을 짓고, 그 위에 정자를 세웠다.
좌우로 주일재(主一齋)와 운서헌(雲棲軒)을 두고 경정(敬亭)이라 일컫었다.
이 정자는 여러 차례 중수하였다.
정자 앞에 서 있는 은행나무는 수령이 400살이 넘었다.
마루 위에는 정기(亭記), 중수기(重修記) 경정운(敬亭韻) 등
당시의 대명절의로 이름난 명사들의 시가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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