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영상시

내 나이 가을에 서서 / 이해인

선바우1 2021. 11. 9. 22:45

 

내 나이 가을에 서서 / 이해인  



젊었을 적
내 향기가 너무 짙어서
남의 향기를 맡을 줄 몰랐습니다.


내 밥그릇이 가득차서
남의 밥그릇이 빈 줄을 몰랐습니다.


사랑을 받기만 하고
사랑에 갈한 마음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세월이 지나 퇴색의 계절
반짝 반짝 윤이나고 풍성했던
나의 가진 것들이 바래고
향기도 옅어 지면서
은은히 풍겨오는 다른 이의 향기를
맡게 되었습니다.


고픈 이들의
빈 소리도 들려옵니다.
목마른 이의 갈라지고 터진 마음도
보입니다.


이제서야 보이는
이제서야 들리는
내 삶의 늦은 깨달음 !
이제는
은은한 국화꽃 향기 같은 사람이
되겠습니다.


내 밥그릇 보다
빈 밥그릇을 먼저 채우겠습니다.
받은 사랑 잘 키워서
풍성히 나눠 드리겠습니다.


내 나이 가을에
겸손의 언어로 채우겠습니다.

'그리움영상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 수많은 사람들이  (0) 2022.01.05
가을은 가고 그리움만 머뭅니다  (0) 2021.11.21
가슴에 묻어둔 이야기/용혜원  (0) 2021.11.02
만나서 편한 사람  (0) 2021.08.02
인연  (0) 2021.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