廬山煙雨(여산의 안개비)
소동파(蘇東坡)
1036~1101
정선, <박생연>, 견본담채, 35.8×98.2cm, 간송미술관
여산의 안개비(廬山煙雨)
廬山煙雨浙江潮 (여산연우절강조) 여산의 안개비와 절강의 물결이여…
未到千般恨不消 (미도천반한불소) 가보지 못했을 땐 천만가지 한이더니
到得還來無別事 (도득환래무별사) 와서 보니 도리어 별다른 것은 없고
廬山煙雨浙江潮 (여산연우절강조) 여산의 안개비와 절강의 물결이었네.
<불꽃 속에 핀 연꽃>
당송 8대가의 한사람인 소동파는 처음에는 불교를 우습게 알았었다.
소동파가 호북성 형양 태수로 있을 때 옥천사의 승호(承浩)선사를 찾아가니
선사가 물었다.
― 존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 나는 칭(秤) 가라 합니다.
― 어떻게 되신다고요?
― 나는 세상의 선지식을 저울질하는 칭(秤)가란 말이요!
이에 승호선사가 그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갑자가 "악”하고 할(喝)을 하며 말했다.
― 그러면 방금 이 소리는 몇 근이나 되는가?
소동파는 할 말을 잃었다. 이에 소동파는 승호선사에게 선(禪)을 배우기 시작하였고
그런 후 그는 많은 고승들을 방문하면서 법문을 듣고 선지(禪旨)를 익혔다.
한번은 황룡혜남 스님의 법제자인 동림상총(東林常聰) 선사를 찾아가 법문을 청했더니,
우주 만상이 모두 법을 설하고 있으니 무정설법(無情說法)을 들으라는 말씀을 하였다.
마침 절을 나와 돌아오는데 골짜기 계곡 밑을 지나자 폭포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가
세차게 들렸다. 전날 밤에 비가 와서 물이 불어 폭포의 물이 더욱 세차게 흘렀던 것이다.
순간 소동파는 깨달았고 오도송을 지었다.
溪聲便是廣長舌 (계성변시광장설) 개울 물소리는 장광설이요
山色豈非淸淨身 (산색기비청정신) 산 빛이 어찌 청정한 몸이 아니랴.
夜來八萬四千偈 (야래팔만사천게) 어젯밤 다가온 무량한 이 소식을
他日如何擧似人 (타일여하거사인) 어떻게 그대에게 설명할 수 있으랴.
지안스님평 / 눈으로 듣는 무정설법(불교신문)
무정설법(無情說法)이란 한 때 선가에서 유행됐던 말이다.
사람이 아닌 무정물이 법을 설한다는 말이다. 쉽게 말하면 산하대지의 온 자연계에서
불법이 설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소동파(蘇東坡)가 승호선사의 할(喝)에 눌려 선에 관심을 가지고 제방의 고승들을
찾아다니며 법을 물었다. 한번은 불인요원(佛印了元) 선사를 찾아가 법문을 듣고자 했다.
이 때 요원선사가 사람의 말만 들으려 하지 말고 무정의 설법을 들으라고 했다.
이 말에 충격을 받은 동파는 절을 나오며 무정설법이란 말을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다.
나귀 등에 올라타고 절을 내려왔다. 내려오던 도중에 골짜기에 폭포물이 떨어지는 곳이
있었다. 이 계곡을 건너며 폭포물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던 소동파의 머릿 속에서 섬광이
일어났다. 소동파는 즉흥시를 한 편 지어 읊었던 시다.
소동파의 오도송으로 알려진 유명한 시이다.
중국선의 특징은 격외소식(格外消息)이라 하여 경전의 상식을 뛰어넘어서 법거량을
해왔다. 유명한 조주스님의 무자(無字) 화두도 ‘개가 불성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한 질문의 대답인 ‘없다’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일체중생이 모두 불성을 가지고 있다.” 한 <열반경>의 말씀과는 반대다.
특히 조사선풍을 강조 하면서 ‘온갖 풀끝에 조사의 뜻이 분명하다.’ 하였다.
천지만물이 모두 진리를 드러내고 있다는 말이다.
<전등록>에 보면 남양혜충 국사의 공안에 무정설법이란 말이 나온다. 조동종을 창시한
동산양개(洞山良介) 선사가 이 공안을 참구했다. 동산이 위산영우 스님의 회상에 있다
운암담성의 회상으로 갔다. 동산이 운암에게 물었다.
“무정의 설법을 어떤 사람이 듣습니까?”
“무정이 듣지.”
“스님께서도 듣습니까?”
“내가 만약 듣는다면 그대는 나의 설법을 듣지 못할 것이다.”
“저는 어째서 듣지 못합니까?”
운암이 불자를 똑바로 세우고서 말했다.
“들었는가?”
“못 들었습니다.”
“내가 설법하는 것도 듣지 못하거늘 어찌 무정의 설법을 들을 수 있겠는가?”
“무정의 설법은 어떤 경전의 가르침에 들어 있습니까?”
“<아미타경>에 ‘흐르는 물과 새들 그리고 수목들이 모두 염불을 하고 법을 설한다’는
말을 모르는가?”
이 때 동산이 깨달은 것이 있어 이렇게 말했다.
“대단히 기이하고 기이하도다. 무정의 설법은 생각으로 미치지 못하고 말로 표현 할 수
없도다. 만약 귀로 들으려면 끝내 들을 수 없고 눈으로 들어야 비로소 알 수 있으리라.”
여기서 무정설법은 눈으로 듣는다는 말이 나왔다.
신광불매 만고휘유 (神光不昧 萬古徽猷) 거룩한 빛 어둡지 않아 만고에 환하구나
입차문래 막존지해 (入此門來 莫存知解) 이 문안에 들어오려면 알음알이 두지마라`
- 육조사대문주련(京城敦岩洞六祖寺大門柱聯)
소동파(蘇東坡)는 과거시험(科擧試驗)의 주심사관(主審査官)을 맡았던
스승(師傅) 대유(大儒) 구양수(歐陽脩:1007~1072 * 중국 북송(北宋) 때의 시인*·
사학자*정치가) 육일문화(六一門下)에 입문(入門)은 하였지만 기존(旣存)의
알음아식(知識)이 넘쳐 오랫동안 입실(入室)은 허락받지 못하(不許)고 방문 밖(場外)
에서 무릎을 꿇고 청강(聽講) 그 세상(世上) 때가 완전히 씻길(洗心) 때까지 감히
스승께 질문은 꿈도 꾸지 못했다
위와 비슷한 얘기 또 하나가 있다
성색외위의 (聲色外威儀) 드러나는 성색에서 위의 잃지 않도다
제방달도자 (諸方達道者) 도를 깨친 여러 곳 여러 도인들
<박연폭포>, 지본수묵, 119.1×52.0cm, 개인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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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년빈말시빈 (去年貧末是貧) 작년의 가난은 가난도 아니었고거년빈시시빈 (今年貧始是貧) 금년의 가난함이 비로소 가난일세
거년무탁추지지 (去年無卓錐之地) 작년에는 송곳 하나 꽂을 땅도 없었으나
금년추야무 (今年錐也無) 금년에는 그 송곳마저 없다네
송곳조차 없는 가난 / 香嚴智閑(?~898)` 향엄(香嚴?~898)이 천지사방(天地四四方)
으로 도(道)를 구(求)하다 위산영우(潙山靈祐:771~853)를 찾았(親見)다 그가
법그릇(法器)임을 알고 불성(佛性)을 깨워주려 선사(禪師)는 이렇게 묻(門)는다
`나는 그대가 평생(平生)을 배워(學習) 안 견해(見解)와 경전(經典)이나 서책(書冊)
에서 기억(記憶)해 가진(所持) 것을 묻지는 않겠다. 그대가 아직 태(胎)에서 나오기
전(父母未生前)과 동서(東西)를 분간(分揀)하기 전(天地未分前)의 본분(本分)을
한구(ㅡ句)로 말해(答)보라`
어쩔 줄 모르고 한마디(一) 말(言)도 못한 채 식은땀만 뻘뻘 흘리다가 제방(諸房)
으로 돌아 와'그림(畵)의 떡(餠)으로는 배고픔(飢餓)을 면할(免責) 수 없구나'하고
탄식(歎息)하며 그동안 소중(所重)하게 여겨왔던 서책(書冊)을 모두 불사(火形)르고
위산을 하직(下直) 남양혜충사(南陽慧忠寺: ?∼775)에 지친 심신(心身)을
의탁(依託)한다
어느 날 잡초(雜草)를 베(切)다가 기와(瓦) 쪽(破片)을 던진(投擲) 것이 대나무(竹)에
부딪쳐(擊) 소리(聲)가 나는 순간(瞬間) 확연(確延)히 깨닫(見性)고
`격죽문성오도송(擊竹聞聲悟道頌)`을 짓는(作文)다
일격망소지 (一擊忘所知) 딱 소리 한번에 알던 것 다 잊으니
경불가수지 (更不假修持) 닦아 지녀 될 것이 아니었구나
동용양고로 (動容揚古路) 속내를 움직여 옛 길을 드러내고
불타초연기 (不墮悄然機) 근심의 갈림길로 떨어지지 않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