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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부석사 가는 길, 순흥

선바우1 2018. 2. 11. 10:41



소백의 자락 적신 핏빛 역사.. 선비정신에 젖어들다

영주 부석사 가는 길, 순흥


경북 영주 순흥에 있는 소수서원 입구의 당간지주. 원래 이곳은 숙수사란 사찰이 있던 자리다. 단종복위 거사가 발각돼 순흥에 피바람이 불 때 숙수사도 불타 없어졌고 한참 후 빈 절터에 서원이 들어섰다.

경북 영주 순흥에 있는 소수서원 입구의 당간지주.
원래 이곳은 숙수사란 사찰이 있던 자리다.
단종복위 거사가 발각돼 순흥에 피바람이 불 때 숙수사도
불타 없어졌고 한참 후 빈 절터에 서원이 들어섰다.

경북 영주에 순흥(順興)이란 곳이 있다.

중앙고속도로 풍기IC에서 나와 부석사로 가는 길 중간에 지나는 고장이다.

소백산 큰 줄기에 기대 너른 들녘을 펼치고 있는, 이름만큼이나

아늑한 풍경을 지닌 땅이다.

겉으론 마냥 평화로워 보이고 규모도 여느 면 단위와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땅이 품은 역사가 만만치 않다.

여말선초 한강이남 제일의 도시였다는 순흥도호부가 터를 잡았던 곳이다.

하지만 순흥에 모반의 피바람이 불었고 고을은 초토화돼 처형 당한

수백명의 피가 붉은 내가 되어 흘렀다.

한동안 인근 30리에 인적조차 없었던, 핏빛 역사를 지닌 땅이다.



모진 역사의 땅 순흥


금성대군 신단의 입구.

금성대군 신단의 입구.


순흥의 비극은 조선 세종의 여섯째 아들 금성대군에서 비롯된다. 세조가 조카 단종을

쫓아내고 영월을 유배시켰을 때, 순흥에 유배됐던 금성대군은 순흥부사 이보흠 등과 뜻을 모아

단종복위 거사를 추진했으나 그만 발각되고 말았다. 금성대군을 비롯 순흥의 65개 크고

작은 집안의 자손 300여 명이 역모로 죽임을 당했다. 그들이 흘린 피가 죽계를 타고 20리를

흘러 멈춘 곳엔 ‘피끝’이란 지명이 생겨나기까지 했다.

이 정축지변(丁丑地變)으로 순흥도호부는 폐부됐고, 모반의 땅으로 버림 받았다.

순흥도호부의 명예를 되찾은 건 200년 뒤 숙종에 의해 단종이 복위되면서다. 이때 역적으로

몰렸던 금성대군과 순흥의 선비들도 복권됐다. 비극의 상처를 안고 살았던 순흥 사람들은

금성대군이 죽어 소백산의 산신령이 됐다고 믿었다.



두레골 금성대군 신당에서 굿이 벌어졌다.

두레골 금성대군 신당에서 굿이 벌어졌다.

소가 굿의 제물로 바쳐진 금성대군 신당.

소가 굿의 제물로 바쳐진 금성대군 신당.

영주시 단산면 단산리 두레골에 금성대군의 신당이 있다.

지난 300여 년 순흥 주민을 중심으로 금성대군의 혼백을 위로하기 위해 매년

정월보름에 제사를 지내온 곳이다. 좁은 임도를 따라 올라간 금성대군 신당에선

마침 굿이 열리고 있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던 기개 때문인지 금성대군의

신당엔 영험하단 소문으로 무속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이날 굿은 꽤나 커 보인다. 보통 염소나 돼지를 제물로 올리는 것도 쉽지 않은데

이곳 신당 앞엔 소 한 마리가 통째로 바쳐져 있다. 금성대군에 지내는 정월보름의

제사 때 소를 잡아 지내는 것을 보고 무속인들도 따라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순흥 금성대군 신단.

순흥 금성대군 신단.

금성대군 신단 옆의 은행나무. 순흥의 모진 역사를 몸으로 기억하고 있는 나무다.

금성대군 신단 옆의 은행나무. 순흥의 모진 역사를 몸으로 기억하고 있는 나무다.


소수서원 바로 옆 마을에 금성대군의 신단이 있다. 대군 등을 추모하는 제단이다.

이 신단 인근에 1,100년이 넘은 수령의 은행나무가 자란다. 나이에 비하면 몸집이

초라하다. 순흥의 피의 역사를 온 몸에 새기고 있는 나무라 한다. 정축지변에 불에

그을린 나무는 죽은 줄 알았다. 200년 넘게 잎을 피우지 않았던 나무는 선비들이

복권된 이후 연초록의 새 잎을 피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도호부를 되찾은 순흥은 부활했지만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며 또다시 비극이 찾아왔다.

치욕적인 을사늑약에 영주의 선비들은 의병을 꾸려 일어섰다.

박석홍 전 소수박물관장은 “1907년 소백산 자락 초암사 인근에 자리한 의병들을

상대로 신무기를 장착한 수천의 일본군들이 섬멸작전을 펼쳐 거의 몰살시켰다.

당시 순흥읍내엔 180여 채의 고택들이 줄지어 있었는데, 이 또한 일본군이 불질러

없애버렸다”고 했다. 의병에 동조했다는 이유였다고. 도호부의 경계가 지금의 영주는

물론 강원 영월 태백 삼척, 경북의 봉화 울진 예천 안동, 충북 단양에까지 이르렀다던

순흥의 영화는 그렇게 끝이 났고 이후 새로 생겨난 영주군의 한 개 면으로 편입되고 말았다.

박 전 관장은 “사방 십리 비를 맞지 않고 갈 수 있을 정도로 고래등 같은 기와집이 줄을

이었던 고을이었다”며 “180여 고택들이 그대로 남았더라면 하회ㆍ양동마을 보다 훨씬

규모가 큰 전통마을로 이름을 떨쳤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순흥 읍내리엔 읍성의 일부,

도호부 관아터와 비석, 수백 년 된 은행나무 등 순흥의 영화를 기억하는 흔적이 조금 남아있다.



순흥을 품은 너른 소백 자락


소백산 자락길의 만추.

소백산 자락길의 만추.

죽계구곡의 아름다음을 품은 죽계천.

죽계구곡의 아름다음을 품은 죽계천.

순흥의 번영은 소백이란 큰 산에 기댈 수 있어 가능했고, 그 아픔도 소백의 너른

품에 안겨 삭일 수 있어 버텨냈을 것이다. 순흥 선비들의 핏물을 흘려 보낸 죽계천의

물길을 따라 오르면 소백산 깊은 자락의 초암사에 이를 수 있다.

의병 토벌 작전 때 함께 불에 탔던 절이다. 의상대사가 부석사를 세우기 위해 다니다

잠시 초막을 짓고 머물렀던 곳이란다. 국보 제78호 금동미륵반가사유상이 바로 이

절에 모셔져 있었다. 지금은 번듯한 새 건물이 들어서 있다. 순흥저수지 인근

배점에서 초암사까지 죽계천의 비경들은 ‘죽계구곡’으로 불린다.


성혈사 나한전 문살.

성혈사 나한전 문살.


초암사 인근에 꼭 함께 둘러보길 권하는 암자는 성혈사다. 가파른 오르막에서

만나는 이 절의 보물은 나한전 문에 새겨진 나무문살이다. 세 칸의 나한전 6개 문에 제각각

다양한 문양이 새겨져 있다. 특히 가운데 2 개의 문살은 여느 절집 문살에서 볼 수

없는 모양이다. 연꽃과 연잎 가득한 연못에 물고기가 노닐고, 그 물고기를 잡는 새,

연잎에 올라탄 개구리, 연꽃줄기에 매달린 동자가 함께 어울려 있다.

마치 민화 한 폭을 감상하는 듯한 정겨움이 있다.


소수서원 바로 옆 선비촌에 복원돼 있는 고택.

소수서원 바로 옆 선비촌에 복원돼 있는 고택.

순흥향교.

순흥향교.

비로사.

비로사.

비로사 오르는 길.

비로사 오르는 길.

지리산 둘레길처럼 소백산에도 한 바퀴 두르는 길이 놓여있다.

이름하여 소백산 자락길. 그 1코스가 소수서원에서 시작돼 금성신단,

순흥향교를 지나 죽계구곡으로 연결된다.

초암사를 지난 이 길은 호젓한 고갯길인 달밭재를 넘어 옛 화전마을인

달밭골을 거쳐 비로사까지 이어진다.

퇴계 이황이 반했다는 죽계구곡을 스치고 달밭재의 아름다운 낙엽길을 걷는

도중 박 전 관장의 선비 이야기가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단종 복위라는 의를 행하기 위해 목에 칼이 들어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나라 잃은 설움에 목숨 걸고 나선 의병의 기개, 그것이 바로 선비

정신이라 했다. 충절의 순흥 땅에 선비촌이 만들어진 것도 그 이유라고.

샤먼의 농단과 주술에 놀아난, 소위 배웠단 자들도 함께 칼춤을

추어댄 이 나라를 곱씹으며, 다시 선비정신을 떠올려본다.


영주=이성원 기자

순흥 여행메모

부석사.

부석사.


경북 영주 순흥 여행길엔 소수서원과 선비촌, 부석사 등을 함께 둘러보자.

부석사는 이 땅의 최고로 꼽히는 절집이다. 무량수전의 배흘림 기둥에 기대

맞는 황혼의 부석사 풍경은 압권이다. 마당 끝 안양루 너머 겹겹의 연봉들이

남으로 치닫는 산세가 장쾌하다. 또 일주문을 지나 천왕문으로 오르는

부석사의 비탈길은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조선땅 최고의

명상로’로 극찬 받은 길이다. 일찍 추워진 날씨로 은행나무 잎은 다 떨어

졌지만 주변 사과 과수원에 주렁주렁 매달린 빨간 사과들이 풍성하다.


부석사 가는 길 탐스럽게 익은 사과.

부석사 가는 길 탐스럽게 익은 사과.

순흥묵밥.

순흥묵밥.

순흥 기지떡.

순흥 기지떡.


순흥의 맛집으론 읍내리의 순흥전통묵집이 유명하다.

이곳의 묵밥은 멸치를 우려낸 따뜻한 국물에 채 썬 묵을 넣고 송송 썰어낸

김치와 김가루가 얹혀져 나온다. 노릿한 조밥을 넣어 말아먹는 맛이 일품이다.

읍내리 인근 도로 변에 있는 순흥기지떡집의 기지떡과 인절미도 별미다.

영주는 인삼뿐 아니라 생강의 주요 생산지이기도 하다.

요즘 생강 수확이 한창이다. 순흥교차로 인근의 소문난암소갈비는 그 영주

생강 등이 들어간 양념갈비가 맛나기로 소문났다.

인근 풍기엔 정아분식 생강도너츠, 서부냉면 등이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