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와 호랑이
▲ 민화 까치와 호랑이,
조선후기, 91.7 x 54.8cm, 에밀레박물관 구장
설날 옛 풍속중에는 세배(歲拜), 세찬(歲饌),
세비음(歲庇蔭 ,설빔)과 함께 세화(歲畵)가 있었다.
세화는 새벽에 잡귀가 들지 못하도록 대문에 액막이로 붙이는
벽사도(僻邪圖)를 말한다.
성현의<용재총화, 傭齋叢話>에 보면 설날의 방매귀(放枚鬼)
행사를 설명하면서 "이른 새벽 대문간에 처용(處容), 종규(鐘窺),
닭, 호랑이 등을 붙인다." 고 했다.
이 전통은 오랫동안 이어져 19세기에 풍속을 기록한 김매순의
<열양세시기 列陽歲時記>에서는 "도화서에서 세화를 그려 올린다.
금(金) 장군, 갑(甲)장군을 그린 것은 궁궐 대문에 붙이고
신선 그림이나 닭 그림, 범 그림은 벽에다 마주 붙인다.
때론 왕의 친척이나 가까운 신하에게 하사하기도 한다"고 했다.
도화서 화원들은 세밑이면 세화를 그리느라고 매우 바빴다.
1867년에 반포된<육전조례, 六典條例>에는 화원의
임무중 세화에 관한 사항이 별도로 나와있다.
"차비대령(差備待令. 비상대기) 화원(26명)은 각 30장,
도화서 화원(30명)은 각 20장을 섣달 스무날까지 그려
바쳐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궁중의 풍속은 자연히 민간에도 전파되었다.
궁중의 세화는 권위적인 내용을 정통 화가가 정통 화법으로
그린 것이지만 민간 세화는 모든 면에서 자유로웠다.
그중 인기 있는 그림이<까치와 호랑이, 虎鵲圖>였다.
호랑이는 온갖 잡귀를 막아주는 벽사의 의미를 갖고,
까치는 기쁜 소식을 전해준다는 보희(報喜)의 의미를 지닌다.
민화 화가들은 까치가 호랑이를 골려주는 유머까지 담았다.
호랑이는 권세를 가진 양반과 관리,
까치는 서민이라는 해석도 있다.
그중 에밀레박물관에서 소장하였던<까치와 호랑이>는
현대적인 데포르메이션까지 보여준다.
궁궐 대문부터 관아, 양반 저택, 민간에 이르기까지 세화를
붙이는 것은 설날을 축제의 분위기로 만드는 데
한 몫했음이 틀림없다.
시각 매체가 오늘날처럼 발달하지 않은 시절에 집집마다
색채 화려한 그림들을 붙여놓았으니 마치 거리의
전시장 같지 않았겠는가.
경인년 호랑이해의 설을 맞이하자니
<까치와 호랑이>라는 세화가 더욱 새롭게 다가온다.
(유홍준의 국보순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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