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詩·書畵

秋史의 水仙花

선바우1 2018. 2. 20. 20:42




추사 김정희의 수선화도 탁본, 제주도 추사박물관


水仙花(수선화)


一點冬心朶朶圓 (일점동심타타원)
한 점의 겨울 마음 송이송이 둥글어라

品於幽澹冷雋邊 (품어유담냉준변)

그윽하고 담담한 기품은 냉철하고 빼어났네.


梅高猶未離庭砌 (매고유미이정체)

매화가 고상하다지만 뜨락을 못 면했는데


淸水眞看解脫仙 (청수진간해탈선)

맑은 물에 해탈한 신선을 정말 보는구나.



秋史의 水仙花


추사 김정희의 그림과 글씨는 후대에 사모하는 이가 많아

'완당탁묵(阮堂拓墨)'이라는 이름으로 여러 탁본이 간행되었다.

그중에는 '수선화부(水仙花賦)'라는 것이 있다. 수선화를 노래한

청나라 호경(胡敬)의 명문을 특유의 추사체로 쓰면서 '몽당붓

으로 아무렇게나 그렸다'는 수선화 그림이 실려 있다.

추사의 수선화에는 많은 이야기가 있다. 그는 24살 때 아버지

(김노경)를 따라 연경에 가서 처음 이 청순한 꽃을 보고 신선한

감동을 받고는 그 뒤부터 즐겨 완상하였다.


그리고 추사 나이 43세 때 일이다.

추사는 평안감사로 재직 중인 부친을 뵈러 평양에 갔다가 때마침

연경에 다녀오는 사신이 평안감사에게 수선화를 선물하자 아버님

께 그것을 달라고 하여 짐꾼을 시켜 남양주 여유당에 계신 다산

정약용 선생에게 보냈다. 뜻밖의 선물을 받은 다산은 기쁜 마음에

 '수선화'라는 시를 지었다.

"신선의 풍모에 도사의 골격 같은 수선화가 우리집에 왔다

/ 지난날 이기양이 사신 길에 가져오더니/ 추사가 또 대동강가

관아에서 보내주었다/

/ 어린 손자는 처음 보는지라 부추 잎 같다고 하고/

어린 여종은 마늘 싹이 일찍 피었다고 놀란다…

" 그리고 시 끝에 부기로 적기를 추사가 보낸 수선화의 화분은

고려청자였다고 했다. 추사는 다산을 그토록 존경하고 좋아했다.

그리고 1840년, 추사 나이 55세에 유배의 형벌을 받고 제주도에

와 보니 지천으로 널려 있는 것이 수선화였다.

그러나 농부들은 보리밭에 나 있는 이 아름다운 꽃을 원수 보듯

파버리며 소와 말 먹이로 삼고 있는 것이었다.

추사는 하나의 사물이 제자리를 얻지 못하면 이런 딱한 일을 당하

고 만다면서 처량한 감회가 일어 눈물이 나는 것을 금치 못하겠다

며 애잔한 시 몇 수를 지었다.

그때 추사는 자신의 처지를 이 버림받는 수선화에 비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추사의 수선화 그림에는 청초하면서 어딘

지 쓸쓸한 분위기가 서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