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순례

고운사

선바우1 2018. 1. 18. 14:38


 고운사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이다.

681년(신문왕 1) 의상(義湘)이 창건할 당시에는 고운사(高雲寺)라 했는데 최치원이 여지(如智)·여사(如事)

두 승려와 함께 가운루(駕雲樓)와 우화루(羽化樓)를 짓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그의 호를 따라 '孤雲寺'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948년(정종 3) 운주(雲住)가 중창했으며 1018년(현종 9)에는 천우(天祐)가 대웅전·약사전·극락전·적묵당

(寂默堂)·설선당 등을 중창했다.

그뒤에도 여러 승려에 의해 중창이 있었으며 1835년(헌종 1) 화재로 소실되자 만송(晩松)·호암(虎巖)·수열

(守悅) 등이 함께 재건했다. 근대까지 재건과 중수가 계속되었는데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극락전·관음

전·명부전·금강문·가운루·적묵당·우화루·동별실·서별실·금당·회운당·고운대암·고금당 등 25개가 있다.

가운루는 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151호로, 석불좌상은 보물 제246호로, 3층석탑은 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28호로 지정되어 있다.

 

 

 



최치원은 857년에 태어났다. 그러나 언제 이 세상을 떠났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가야산에서 신선이 됐다

는 전설이 전해질 뿐이다.

그는 868년, 12세의 어린 나이에 당나라로 유학을 갔고, 18세 때 과거에 장원으로 급제했다.

황소(黃巢)가 반란을 일으켜 기세를 떨칠 때 그를 진압하기 위해 881년에 지은  격황소서(檄黃巢書) 는

지금도 중국에서 명문장으로 이름을 떨치는 지경이다. 그는 885년, 신라로 돌아온다.

그는 계원필경 등 많은 저술 활동을 했지만, 이미 망해가는 말기(末期)의 신라에서 큰 뜻을 펼쳐보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는 세상을 떠돌았고, 사찰에 머무는 일도 많았다. 그러던 중 의성의 고운사(高雲寺)에도 머문 것이다.

 

고운사  약사전은 보물 불상이 모셔져 있는 집이다.

불당(佛堂) 안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에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고운사 석조 석가여래 좌상.

 

보물 246호.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 구계리 116. 이 불상은 높이 79cm이다.

불상 받침인 대좌(臺座)와 불상 뒤 원광인 광배(光背)를 모두 갖추고 있다. 크지 않으며 코에 인중이 뚜렷

하고 작은 입은 굳게 다물어져 있다.

아랫입술 중앙이 오목하게 파이고 턱은 살이 붙어 이중으로 되어 있다.

양쪽 귀도 얼굴에 비해서 작은 편이고, 굵고 짧은 목에는 삼도(三道)가 뚜렷하다. 치켜 올라간 어깨로 인해

목은 더욱 짧아 보이고 가슴은 잘 발달해 있다.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우견편단의 법의는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겨드랑이 밑으로 밀집된 같은 간격의 옷주

름이 도식적으로 나타나 있다. 이 불상은 솟아오른 살에 불분명한 머리, 짧은 두 귀, 네모진 상체에 나란히

흘러내린 옷주름선 등 9세기 불상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고운사 석조 석가여래 좌상', 보물 246호. 문화재의 이름에 '석조(石造)'가 들어있는 것으로 미루어 약사전

내부를 살펴보지 않고도 불당 안에 돌로 만들어진 불상이 모셔져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물론 석가(釋迦)는 앉아 계신다. 좌상(坐像)이므로.

안내판은 이 불상이 보물로 지정된 근거도 간명하게 밝혀준다.

'9세기 불상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는 대목이 바로 그 부분이다. 문화재청 누리집이 규정하고 있는 것

처럼 '한 시대를 대표'할 만하니 보물이 된 것이다.

 

 

 


 

 

그런데 보물 석조석가여래좌상을 모신 고운사의 절집에 '약사전'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석가여래를 모셨으면 으레 대웅전이라 불러야 하는데 그것 참 기이한 일이다.

약사전은 약사불(藥師佛)을 모시는 법당으로, 안에는 약사발을 든 불상이 모셔진다.

불교에서는 아득한 '미래'에 나타나 인간들을 구원해 줄 부처를 미륵불(彌勒佛)이라 하고,

사람의 병을 고쳐주는 등 지금 당장의 어려움을 해결해주는 '현재'의 부처를 약사불이라 하는데, 불교의

창시자인 석가모니불을 모신 법당에 '대웅전' 아닌 '약사전'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니?

뭔가 어색하다. 왜 이렇게 됐나 싶어 사방을 둘러본다. 아니나 다를까, 약사전 오른쪽에 커다란 대웅전이

따로 있다. 충청남도 청양군의 장곡사라는 절에 가면 대웅전이 둘 있는 광경을 볼 수 있다고 하지만, 상식

적으로는 한 사찰에 두 채의 대웅전이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고운사는 이 작은 법당에 약사전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스님에게 여쭤보니, 본래 이 약사전이 고운사의 대웅전이었는데 뒷날 새로 대웅전을 크게

지으면서 어쩔 수 없이 이름을 바꿔 약사전이라 현판을 고쳐 달았다는 설명이다.

 

석조석가여래좌상을 살펴본 뒤 돌아나와 고개를 드니 집 뒤로 붉은 기운이 뚜렷한 소나무들이 울창하게 하

늘을 찌르고 있다. 보통 금강송(松)이라 부르는 우리나라 최고의 소나무들이다.

'금강'은 보석 중 최고로 치는 다이아몬드를 뜻하는 한자어이므로, 고운사 일대의 소나무에 '금강송'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그들이 우리나라 '최고의 소나무'라는 뜻이다.

푸른 하늘과 어우러진 금강송의 장관에 한참 넋을 잃었다가 문득 몸을 돌리니, 저 아래로 최치원이 지었다

고 하는 가운루가 보인다. 고운사에는 참 볼 것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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