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순례

八公山 松林寺

선바우1 2018. 1. 21. 14:14


八公山 松林寺

 

 

 

 

경상북도 칠곡군 동명면 구덕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이다.

신라 진흥왕 때 진(陳)나라 사신이 명관대사(明觀大師)와 함께

불서(佛書) 2,700권과  불사리(佛舍利)를 가지고 왔는데,

이것을 봉안하기 위해 세운 절이다.

이때 호국안민(護國安民)을 위한 기원보탑을 세웠다고 한다.

1092년(선종 9) 대각국사 의천(義天)이 중수하고,

1235년 몽골의 3차 침입 때 전탑만 남고 폐허화되었다.

그뒤 중창했으나 1597년(선조 30)에 왜병들의 방화로 다시

소실된 것을 1858년(철종 9) 영추(永樞)가 다시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 당우로는 대웅전·명부전·요사채 등이 있다.

대웅전 앞의 5층전탑은 보물 제189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1959년

탑을 해체·수리할 때 많은 유물이 발견 되었다.

 

 

 


 


 


 


 


 


 


 


 


 


 


 


 

 

창건유래

 


첫 번째 이야기

살을 에는 듯한 바람이 부는 겨울날, 어느 마을 부잣집에 초상이 났다.

장사 지내기 전날 밤 상주의 꿈에 어떤 노인이 나타나 “내 시키는 대로 한다면

너의 집안은 복을 누릴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큰 화가 미칠 것이다.

장례를 끝마치기 전에는 누구에게도 물건이나 음식을 주지마라.” 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조상님이 현몽하여 일러 주신 것으로 믿은 상주는 아침부터 잠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조상객이나 인부들에게도 음식을 먹지 못하게 하였다. 인부들은 모두 배가 고팠지만

참고 일했으며 마을 사람들도 추위 속에서 장례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지나가는 걸인이 음식을 구걸했지만 상주는 떡 한쪽도 주지 않았다. 오히려 장례식이

끝나기도 전에 음식을 챙겨 집으로 돌려보내 버렸다.

그러나 인부를 시켜 집으로 돌려보낸 것이 걱정이 되어 자신이 직접 뒤쫓아

가기로 하고 남아있는 인부들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절대로 장례 물건을 다른 사람에게 주지 말게. 품삯은 두 곱으로 쳐 주겠네.”

“염려 마십시오.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다 불살라 버릴 테니까요.”

다짐을 받은 상주는 허겁지겁 집으로 달려갔다.

산에서는 인부들이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일을 했고 마치자마자

지푸라기 하나 남기지 않고 모두 한곳에 쌓아 태우기 시작했다.

이때 어디서 나타났는지 위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거지 아이가 모닥불 옆으로

다가와 떨며 애원했다.

“저는 오늘밤 얼어 죽을 것 같습니다. 제발 그 가마니 한 장만 주십시오.”

측은한 마음이 든 인부들은 상의 끝에 헌 가마니 한 장을 줘 보내고 연장을 챙겨

막 내려오는 순간, 펑! 하는 소리와 함께 거지 아이가 가고있던 그 자리에는

웅장한 절이 생기고, 가마니는 그 절의 대웅전에 걸려 있었다.

그 후에 상주 집안은 점점 몰락하고 대도 끊기고 말았다.

그러나 거지 아이에게 온정을 베풀어 주었던 인부들은 점점 살림도 늘고 자손도

번창하였다. 절의 이름은 소나무 숲에서 생긴 절이라하여 ‘송림사’라 하였다 한다.

 



두 번째 이야기

신라 미추왕 혹은 내물왕 때에 아들 삼형제가 부친의 묘지를 파기 위해

이 절이 서 있는 자리를 정했다고 한다.

다음날 묘를 파기로 하고 그들은 집으로 돌아와 잠을 청했다.

그날 밤 맏아들의 꿈에 현인이 나타나 “내일 묘를 파노라면 어떤 사람 하나가 나타날 것이다.

묘를 팔 동안 에 그 사람을 나무에 묶어두면 후환이 없을 것이다.” 라고 이르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다음날 맏아들은 동생들을 데리고 묘를 파러 갔다.

열심히 묏자리를 파는데 잠시 소동이 나더니 웬 사나이가 서 있었다.

즉시 형제들은 현인이 일러준 대로 그를 잡아 나무에 묶었고 그 사내는 죄도 없는

자기를 묶어놓은 것은 잘못된 일이니 풀어달라고 애걸하였다.

사내의 애원에 측은함을 느낀 맏아들은 어젯밤 일을 개의치 않고 그를 풀어주었다.

그러자 갑자기 회오리바람이 일고 반대편에 절이 생겼다고 한다.

 


양 전설이 모두 불행을 무릅쓰고 선을 행하자 절이 생겼다는 점이 동일하다.

 

 

 


 


 


 


 


삼천불전


범종루

 


 

송림사 5층 塼塔(보물 189호)

 

송림사 대웅전 앞에 서있는 5층 전탑(塼塔)으로, 흙으로 구운 벽돌을 이용해 쌓아 올렸다.

탑을 받치는 기단(基壇)은 벽돌이 아닌 화강암을 이용하여 1단으로 마련하였는데,

기단의 4면에는 각 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조각하였다.

탑신(塔身)은 모두 벽돌로 쌓아올렸다. 2층 이상의 몸돌은 높이가 거의 줄어들지 않아

전체적으로 높아 보이나, 각 몸돌을 덮고 있는 지붕돌이 넓은 편이어서 안정되고 온화하다.

 


지붕은 벽돌로 쌓은 점을 고려한 듯 밑면의 받침부분 외에 위의 경사면까지 층급을 두어 쌓았다.

꼭대기에는 금동으로 만든 머리장식이 남아있는데, 이는 1959년에 해체하여 복원작업을

하면서 원형대로 모조한 것이다.

비록 모조품이긴 하나, 통일신라시대 금동 상륜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귀중한 자료가 된다.

9세기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추측되며, 보수를 하면서 탑신의 몸돌 내부에서

나무로 만든 불상과 사리장치 등이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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