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순례

기장 묘관음사

선바우1 2018. 1. 21. 14:28


기장 묘관음사

 

 

부산과 울산을 연결해주는 해안도로를 따라 가다보면, '임랑'과 '월내'라는 작은 

 어촌마을 중간 지점에 조계종 직할 임제종가 묘관음사 라는 돌 간판을 볼 수 있다.

불교 종파중에서 조계종은 흔히 보는 종파이지만 임제종은 조금은 생소한 느낌을 주는 것같다.

동해의 푸른 바다를 뒤로하고 동해남부선 철길을 건너 묘관음사 입구에 서면 소나무와 

 대나무숲이 어우러진 옆에 임제종 묘관음사가 나온다.

아느 사찰 처럼 거창한 일주문이 있는것도 아니고, 천왕문이 있는 것도 아니다.

모두 생략하고 오로지 수행에만 힘쓰는 절집같은 느낌이 와닫는다.

묘관음사는 근대에 들어와 향곡당 혜림스님께서 창건하셨으며. 이곳 묘관음사는

우리나라의 선맥을 이어혜월, 운봉, 향곡스님과 해운정사의 진제스님

그리고 성철큰스님께서 수행한 곳이라 더욱 유명해진 사찰입니다.






당대의 선지식스님들도 위법망구의 자세로 처철히 수행하였던 곳으로 한국현대선종사에 있어 

 가장 중요한 위치를 점하는 이 서산 화성을 거쳐 경허 -혜월-운봉- 향곡 - 진제선사로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을 뿐아니라 청담- 성철- 서옹-월산선사 ,묘관음사는 고려말 태고

보우선사가 중국의 석옥창공선사로부터 임제정맥을 부촉 받는후 사자상전하던 열반묘심정법안장.....



기장 묘관음사는 근대에 들어와 향곡당 혜림스님께서 창건하셨으며. 이곳 묘관음사는

우리나라의 선맥을 이어온 혜월, 운봉, 향곡스님과 해운정사의 진제스님 그리고

성철큰스님께서 수행한 곳이라 더욱 유명해진 사찰입니다

경내에는 전각, 대웅전,조사전,삼성각,종각이 있으며 당우는 길상선원,심원당,산호당, 

 법중대,금모대, 행로각과 각종편의 시설이 갖춰져 있으며 운봉,향곡,두분선사의

부도탑이 모셔져 있다. 성철스님께서 묘관음사에서 수행하실적에 스님의 출가전

따님이 기장 묘관음사에 아버지를 보러왔다.








불필스님이 되기전 성철스님의 필요없는 딸 수경과의 첫만남 장소가

기장월래의 묘관음사였습니다.

성철스님은 출가하고 얼마 지나 세속에 떨치고 온 부인이 딸을 낳았다는

얘기를 풍문에 전해 들었다고 한다.

그 따님이 바로 불필(不必) 스님이다. '필요 없는 딸' 이란 법명이다. 

불필스님은 1937년 5월 아버지 이영주(성철스님의 속명) 와 어머니

이덕명 사이에서 태어났다.

출가한 아버지 대신 할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은 수경(壽卿) 이었다.

지금은 그런 모습이 사라졌지만, 당시 고향 묵곡마을은 아름다운 경호강

이 끼고 돌아 마치 강물에 둘러싸인 조용한 섬 같았다고 한다.

남의 땅을 밟지 않고 살수 있다고 할 만큼 넉넉한 집안이었기에 일제

식민지하에도 불구하고 수경의 유년시절은 남부럽지 않았다고 한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를 처음 뵙기 전까지 수경에게 아버지란 그저

상상 속의 인물이었다.

불필스님은 "아버지가 스님이란 사실은 어려서 누군가로부터 들어 알고

있었지만 한 번도 보지 못했기에, 그저 동화 그림 속에서 나오는 사람

인가 싶은 정도" 라 기억했다.

문제는 당시 낮았던 스님들의 사회적 위상이었다.

불필스님은 "보지도 못한 아버지인데, 스님이라는 게 싫었다" 고 한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스님의 딸" 이란 소리를 듣기 싫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아버지를 원망하는 마음과 함께 "아버지는 세상 등지고

가족도 버리고 산 속에서 무엇 하는 것인가" 하는 고민도 하기 시작했다. 


어쨌든 어린 소녀는 아버지가 스님이란 사실을 감추고자 했으며,

속으로 감추면 감출수록 아버지와 불교에 대한 궁금증은 새록새록 피어

났다. 조숙하고 총명했던 수경은 그렇게 아무도 모를 고민이 많았다.

수경은 초등학교 4학년 때 할아버지에게 "사람은 나면 서울로 가고

말은 나면 제주도로 보낸다" 는 옛말을 인용해가며 "서울 유학을 보내달라"

고 졸라 상경, 서울 혜화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당시 집안 살림이 넉넉했던  가문에서는 흔히 자식들을 서울로 유학을

보냈고, 이미 삼촌(성철스님의 동생) 이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서울 초등학교의 수업은 시골 학교와 놀랄 정도로 차이가 컸다.

어린 나이로 서울 생활 적응에 어려움이 적지 않았지만 "아버지가 스님

이란 사실은 아무도 몰랐기에 큰 짐을 벗은 것처럼 마음은 홀가분해 날아

갈 것 같은 심정" 이었다고 한다.

처음 아버지를 만나게 해준 사람은 묘엄(妙嚴.현 수원 봉녕사 승가대학장)

스님이었다. 묘엄스님은 성철스님과 절친한 청담(淸潭) 스님의 딸이다.

어느날 묘엄스님이 다른 비구니 스님과 함께 수경을 찾아왔다.

"큰스님께서 경남 월래 묘관음사에 계시니 한번 가서 뵙도록 하자.

"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에 얼떨떨해 있는데, 서울에 같이 유학와 있던

삼촌이 "담임선생님께 스님을 찾아간다고 허락을 받고 한번 가보자" 며 나섰다.

"평생 불러보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한 아버지가 대체 어떤 모습일까" 하는

호기심 반(半) , 자식을 팽개친 아버지에 대한 미움 반(半) 에 "얼굴이라도

보자" 며 삼촌을 따라 나섰다.

삼촌을 따라가면서 어린 마음에도 "그렇게 미워한 아버지인데, 그래도 찾아

나서고 싶은 마음이 생기니 이것도 천륜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기차를 타고 묘관음사에 도착하니 해질 무렵이었다.

산기슭을 따라 올라가니 누군지 모르는 무섭게 생긴 스님 한 분이 보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스님이 바로 성철스님과 절친한 도반(道伴) 인 향곡

(香谷) 스님이었다. 향곡스님이 말했다.

"철수좌(성철스님) 가 오늘 이상한 손님이 온다더라면서 온데 간데 없이

사라져 버렸다. " 수경은 몹시 기분이 나빴다. 친혈육인 자신을 그렇게

내팽개쳐 놓은 아버지, 그래서 원망스러웠던 아버지가 애써 찾아온 딸을

피해 사라지다니. 향곡스님이 뒤늦게 사실을 알고는 성철스님을 찾아 나섰다.

조금 기다리자 향곡스님이 다 떨어진 누더기에 부리부리하게 광채나는

큰 눈만 보이는 스님과 함께 나타났다.

"저 분이 내 아버지인가" 하는 순간 눈 큰 스님이 소리를 질렀다.

"가라,가!"

그렇지 않아도 화가 나 있던 수경은 그 순간 "삼촌 돌아가요" 라며 돌아섰다.

그 때 무서운 얼굴의 향곡스님이 부드러운 미소로 붙잡았다.

자그마한 방으로 데려가선 과자며 과일이며 먹을 것을 내놓았다.

이렇게 성철스님과 딸 수경은 첫만남이 있었다., < 출처 : ?? >




향곡스님이 세상을 떠나자 가장 절친한 수행 동반자였던

성철스님은 그 슬픔을 게송으로 표현 했는데


" 슬프다. 이 종문의 막한 큰도적아
천상천하 어 같은 놈 몇이런가
업연이 벌써 다해 훌훌 털고 떠났으니
동쪽 집에 말이 되든 서쪽 집에 소가되든."


성철스님이 향곡스님이 어떤인물이였지를

한편의게송으로 읊은 것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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