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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초 고종 황제의 어진(초상화)

선바우1 2018. 12. 13. 08:24





       
[노형석의 시사문화재]
국립현대미술관 '대한제국의 미술'
전시 역사상 처음 이 시기 미술 다뤄
태극기를 든 의장대·신식 군인 등
공식 기록화·사진·공예·회화 소개

일본 원근법·서구 근대화풍 받아들여
세속화됐단 비판에도 창작 고심 흔적
맥없이 풀리는 전시 짜임새는 아쉬워
          
채용신이 비단화폭에 그렸다고 전해지는 20세기초 고종 황제의 어진(초상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구한말 대한제국 군상들을 소재 삼은 드라마 <미스터선샤인>의 인기는 숯불처럼 식을 줄 모른다.

극은 9월 끝났지만 서울 도심 덕수궁은 ‘선샤인 추억몰이’의 새 무대로 떠올랐다.

젊은 관객들이 석조전같은 전각들을 거닐며 극중 장면들을 복기하는 광경을 종종 만나게 된다.

석조전에서는 황제복식 전시회, 경내 덕홍전에서는 드라마 의상들을 공개한 ‘덕수궁 션샤인’

전이 12일까지 열렸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대한제국의 실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곳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이다.

여기서 11월 중순부터 시작한 대형 기획전 ‘대한제국의 미술-빛의 길을 꿈꾸다’(내년 2월 6일까지)는

국내 전시 역사상 처음으로 ‘대한제국의 미술’을 주요 개념으로 명명하는 자리다.

초상화가 채용신이 그렸다고 전해지는 노란 용포를 입은 고종의 어진(초상)을 마주보며 시작하는

이 전시는 고종이 1897년 선포해 1910년 한일병합 때까지 불과 13년간 존재한 제국의 궁중미술을

보여준다. 궁중 잔치를 그린 그림, 고종·순종 황제와 영친왕 등 황실 가족을 찍은 사진들,

황실이 후원한 공예품 제작소와 궁중에 그림을 납품한 화가들의 작품 등 200여점이 선보이고 있다.

황실의 ‘격’에 맞다고 선택된 화가와 장인들의 공식 작품들이 대부분이어서 드라마처럼

극적이고 감성적이거나 현란하지는 않다.

대한제국기 미술은 학계에서 그동안 구한말 혹은 개화기의 미술이라고 이야기하며 계륵 같은

존재로 치부해왔다. 일본에 의해 원근법·명암법같은 서구 근대 화풍과 사진 장르가 억지춘향식으로

주입되면서 전통 필법과 궁중기록화의 장엄하고 격조 높은 세계가 어정쩡한 몰골로 세속화되는

‘패배자의 미술’이 됐다고 봤다. 창덕궁·경복궁은 물론 국립고궁박물관 등에 적지않은 작품과

자료들이 있지만 깊이있게 파고드는 연구자들은 드물었다.

그래서 19세기 중후반부터 20세기 초반의 한국 미술사는 연구자들이나 논문이 별로 없는

의도적인 사각지대가 되고 말았다. 이번 전시는 그런 면에서 신선한 느낌이 있다.

조선총독부미술전(선전)을 통해 국내 대가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1920~40년대 근대

미술사를 주로 연구해온 학계 관행을 깨고, 19세기 말부터 1920년대까지 궁중미술을

집중조명한다. 과거 조선 미술의 형식적 전통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서구적 요소들을

어떻게 받아들여 근대미술로의 활로를 모색했는지 실상을 보여주겠다는

전향적 의지가 전시를 이끌어간다.


1907년 그린 충남 공주 신원사 불화 <신중도>의 호법신상(부분). 푸른 상의와 군모,
태극무늬 견장 등 대한제국 시대의 군복 차림을 구체적으로 표현했다. 
         

궁중의 공식 기록화·사진·공예품·회화 등의 네가지 범주로 나뉘어진 전시장을 둘러 보면,

우리가 몰랐던 당대 미술의 요지경이 숱하게 나타난다. 대한제국을 선포한 뒤 고종의 궁중잔치 그림에

대형 태극기를 든 의장대와 군모를 쓴 신식 군인들이 입체적으로 배치되는가 하면, 황실 사람들이
불공을 드렸던 공주 신원사 불화엔 대한제국 군인의 모자와 군복을 입은 수호신상이 그려져 있다.

궁중 화원이나 불화를 그린 승려들도 시대적인 변화를 직감하고 새로운 이미지를 화폭에 담으려 애썼던

흔적이다. 뿐만 아니라 황실이 후원한 당대 최고의 공예장인들은 이미 고려 청자의 비색을 어떻게

재현할지를 고민한 창작품을 내놓았고, 일본이나 서양 가구에선 전례 없는, 전통 사방탁자와 아르누보를

융합한 ‘대한제국식 디자인 가구’를 만들었다는 사실도 이 전시에서 알 수 있다. 호화스런 채색과

번쩍거리는 금박편을 붙여 해가 뜨는 산천, 구름 사이 천도 복숭아 나무 위를 나는 학 10마리를 그린

7m 넘는 대작 <해학반도도> 또한 과거 전통회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프로젝트로 당시 대한제국의

국가적 기상을 이미지적으로 널리 알리려는 고심의 흔적이 담겨 있다. 20세기 초 화단 실력자이자

사진가였던 김규진이 1905년 처음 찍은 고종의 사진 어진이나 순종의 스승이던 김석구가 마치

초상화 그림처럼 제발글씨를 갖추고 채색까지 해서 찍은 자신의 초상 사진 등도 과도기 한국 미술의

 특징을 드러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대형 태극기가 등장하는 <고종신축진연도병>의 일부분.
1901년 고종 황제의 50살 생신 잔치 장면을 담은 병풍그림이다. 
         

의욕적인 시작과 달리 마무리가 다분히 맥없게 풀려간다는 게 못내 마음에 걸린다.

당대 그림 대가인 안중식, 조석진, 김규진의 계보에 기반을 둔 1910~20년대 미술인 모임인 서화미술회,

서화연구회, 동연사 등의 단체와 작가들을 소개했지만, 대한제국 미술의 가장 큰 결실이자 당대

전통 회화와 양화의 통합 단체였던 서화협회에 대한 소개가 통째로 빠진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미술사가 최열씨는 “국망기 우국의 충절로 사군자화를 새롭게 그렸던 당대 대가들이나 일제에 부역한

매국노들의 글씨를 대비하는 기획도 생각해봄직한데, 대한제국 미술의 빛과 그늘이 짜임새있게

마무리되지 못한 느낌”이라고 했다.


(02)2022-0600.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도판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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