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詩·書畵

獨 笑/丁若鏞

선바우1 2018. 1. 21. 16:38

 

獨 笑/丁若鏞
 
有粟無人食   
양식 많은 집엔 자식이 귀하고
多男必患飢   
아들 많은 집엔 굶주림이 있으며,
 達官必창愚    
높은 벼슬아치는 꼭 멍청하고
 才者無所施   
재주있는 인재는 재주 펼 길 없으며,
家室少完福    
집안에 완전한 복을 갖춘 집 드물고
 至道常陵遲   
지극한 도는 늘상 쇠퇴하기 마련이며,
 翁嗇子每蕩   
아비가 절약하면 아들은 방탕하고
 婦慧郎必癡   
아내가 지혜로우면 남편은 바보이며,
 月滿頻値雲   
보름달 뜨면 구름 자주 끼고
 花開風誤之   
꽃이 활짝 피면 바람이 불어대지.
物物盡如此   
 세상일이란 모두 이런 거야
 獨笑無人知   
나홀로 웃는 까닭 아는 이 없을걸.


            

정 약용(丁 若鏞, 1762∼1836)

 

조선후기의 문신이자 실학자로서 본관은 나주, 자는 미용(美庸),
호는 사암(俟菴)·탁옹(籜翁)·태수(苔叟)·자하도인(紫霞道人)·
철마산인(鐵馬山人)·다산(茶山)으로 진주목사 정재원의 4남이며,
어머니는 해남윤씨로 윤두서의 손녀이다.

 

1783년(정조 7) 경의진사(經義進士)가 되었으며, 지평, 암행어사,
동부승지, 형조참의, 금정찰방, 곡산부사를 역임하였다.

 

1801년 2월에 형인 정약종의 천주교 책자 소지 등에 관련된
책롱사건(册籠事件)으로 체포되어 감옥에 같혔다. 그리고
다시는 관직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포항,
강진으로 유배생활이 시작되었다.

 

1808년 봄에 강진 다산초당으로 유배생활지가 바뀌고
본격적으로 저서 활동에 들어갔다. 그 곳에서 수많은 저서로 냈으며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목민심서],[흠흠신서], [경세유표] 등의
대표적인 서적을 기획하여 ‘다산학’ 이란 산고를 탈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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