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

風浴樓(풍욕루)

선바우1 2019. 1. 15. 17:04

 

 風浴樓(풍욕루)

 

  敬(경)- 慕末白雲洞石壁. 모래백운동석벽)

 

  영주 소수서원앞 죽계천 바위에 새겨진 경자를 베껴서 옮겨 적었다.

 

 

 

 

 

 

 

 

 

 

 

 

 

 

  風浴樓記(풍욕루기)- 歲癸丑夏上澣 周相文自記

 

 周ㅁ池亭ㅁㅁㅁ(周ㅁ池亭ㅁㅁㅁ)-  ㅁ之二十一年甲申菊月 李漢英題.

 

 謹次風浴樓上板韻(근차풍욕루상판운)- 己巳 趙昌永西湖題

 

 淵堂補修記(연당보수기)- 서기1992壬申 後孫 永洪 謹記.公의 九孫인 기업가 영신화학사장 永鉉이 단독 거액을 희사하여 先蹟을 補修

 

  風浴樓重修記(풍욕루중수기)- 壬寅三月淸明節 趙元珪규 謹記

 

  화사석주

 

 

風浴樓(풍욕루) 경남 함안군 칠원면 무기리 966
높은 댓돌 위에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로  대청좌우에 한칸의 방을,

앞뒤칸에 툇마루를 연결한 홑처마의 팔작기와지붕건물이다. 
전후면의 툇마루 기둥을 원주로, 양쪽방 전면과 방을 서로마주한 기둥을 원주로 뒷편의 바깥쪽기둥을 방주로 세웠다.
     
바람에 몸을 씻는 집 풍욕루(風浴樓)

風浴(풍욕)의 浴(욕)은 몸을 씻은 사람은 반드시 옷을 떨어서 입는다는 구절에서 따온 것이며

風浴(풍욕)은 바람에 몸을 씻는다는 것이니

한시도 자기성찰을 멈추지 않고 노력하겠다는 사대부의 의지와 선비정신을 나타냄. 즉

이미 몸을 씻은 굴원에 자신을 비유한 것이며 바람에 몸을 씻어 선비의 고고함을 지키겠다는 뜻을 표명한 것이라고 하겠다.

 

또 풍욕루의 간판 아래는 경(敬)이라고 쓰인 간판이 하나 더 있다.

이는 소수서원에 있는 경(敬)자바위와 연관이 있다. ♣摹來白雲洞石壁(모래백운동석벽)

 

★소수서원 '敬(경)자' 위에 씌어진 ‘白雲洞(백운동)’이란 글씨는 퇴계 이황선생이 새긴 것으로 전해온다.
이 敬字바위는 순흥땅의 아픈 역사와 얽힌 전설이 있다.
1455년 왕위를 빼앗은 세조는 단종의 복위를 꾀하는 많은 이들을 죽이거나 귀양 보냈는데 특히

1457년 순흥부사였던 이보흠은 금성대군이 순흥으로 귀양 오자 의기투합해 영남지방의 인사들과 함께

단종 복위운동을 펼치다가 금성대군아래 있던 노비의 밀고로 단종과 금성대군도 사약을 받아 죽고

이보흠도 참형에 처형당하게 됩니다.
순흥을 현으로 강등하고 인근 30리의 주민을 모두 처형하면서 죽계천의 핏물이 10리를 흘러갔다고

하는데 이를 정축지변이라 한다.이때 주민들이 수장된 곳이 바로 소수서원의 경자바위 아래였으니

1543년 지금은 소수서원인 백운동서원을 세울 때까지도 억울한 영혼이 경자바위를 떠돌아 민심이 흉흉

했기에 주세붕 선생이 직접 친필로 경자바위에 ‘敬(경)’자를 쓰고 글자 위에 붉은 칠을 한 후 제사를

지내니 더 이상 혼령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이 경이라는 글자는 주역에 나오는 ‘군자는 敬(경)으로써 마음을 곧게 하고 의로써 행동거지를

방정하게 해야 한다. 敬(경)과 義(의)가 서면 德(덕)이 외롭지 않다.(君子 敬以直內 義以方外 敬義立而

德不孤(군자 경이직내 의이방외 경의입이덕불고)’라는 구절의 바로 그 경이다. 

이 경의(敬義)는 주자학에서 강조되었고 이황이 학문의 요체라 했으며

남명 조식 선생도 만면에 敬義의 두 글자를 창문과 벽 사이에 크게 써두셨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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