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그시절

창경궁의 옛모습

선바우1 2019. 1. 16. 20:30




1960~70년대 '밤 벚꽃놀이'의 명소였던 창경원.

시골 노인들까지 동물원 원숭이 구경하러 상경하던 곳.

그러나 1984년 일제 잔재인 벚꽃과 동물원을 내보내고 창경궁 이름을 되찾았다.

벚나무 대신 조선 소나무로 위엄을 갖춘 왕궁으로 변모한 것이다.

▲ 봄의 정취를 느끼기 위해 창경궁으로 나온 가족이 사진을 찍고 있다. < 1976.5.3 >

상춘인파 창경원에만 3만명 몰려



 

1976년 3월의 마지막 주말이었던 28일, 전국적으로 활짝 갠 화창한 날씨에
많은 시민들이 서울 시내 각 고궁과 근교 유원지를 찾아 하루를 즐겼다.
특히 창경원에는 약 3만명의 인파가 몰려 새로 들여온 기린 가족 등 동물들을 보며
하루를 즐겼고 춘당지(春唐池) 보트장엔 연인들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등
크게 붐볐다. 상춘객들은 앉을 자리가 없어 동물원 앞까지 몰려 앉아
점심 도시락을 먹기도 했다.

 

▲ 봄을 맞아 창경궁을 찾은 사람들로 창경궁 앞은 매우 붐볐다.

 

 

▲ 서로 먼저 입장권을 사려고 창경궁 매표소 앞에서 씨름하는 사람들 < 1976 >

밤 벚꽃놀이 창경원 활짝

1965년의 창경원 밤 벚꽃놀이는 4월 15일부터 시작되었다.
밤 벚꽃의 정취를 더하기 위해 창경원에는 5색 초롱불이 빛났다.
20도를 넘나드는 화창한 날씨에 첫날이었던 15일 밤 벚꽃놀이를
즐기러 천여명의 상춘객이 몰려 꽃그늘에서 밀어를 나누었고
창경원 춘당지에서는 보트 놀이가 한창이었다.
벚꽃과 상춘객을 비추었던 보름달은 밝기만 했다.

 

 

▲ 창경궁에선 상춘객들이 밤 가는 줄도 모르고 봄꽃에 흠뻑 취했다.

 
 

"막 내리는 74년" 창경원 동물원
온 겨레와 함께 해 온 창경원 동물원의 정겨운 숨결이 1983년을 끝으로
74년의 역사를 멈추었다.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쭉 함께 해 온 만큼, 창경원 동물원의
동물들도 우리 민족이 가진 전쟁과 식민지 시대의 애환을 담고 있었다.
2차 대전 말 일제에 의해 창경원의 맹수들은 모두 독살되거나 굶어 죽었고
6.25가 터지면서 동물들도 학살과 약탈, 추위와 굶주림 등으로 또 한번
전쟁의 비극을 겪기도 한 것이다. 이와 같이 파란만장한 역사를 가진 창경원 동물원은
역사의 막을 내리고 130종 801마리의 동물들과 함께 훨씬 좋은 환경인
과천 서울대공원으로 이사했다.

 

▲ 과천 서울대공원으로 이동하고 있는 창경궁의 코끼리 < 1984.4 >

창경궁을 옛 모습으로

1984년 창경원을 창경궁으로 복원하기 위한 공사가 진행되었다.
지난 1909년 궁 안에 동물원이 들어서면서 덕지덕지 억지분칠을 당해온 창경원은
경내의 동, 식물원, 위락시설 등 모든 콘크리트 구조물을 뜯어내고 1985년 말에
순수한 고궁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 철거 작업으로 동, 식물원, 놀이터, 매점 등 일체의
시설물이 철거됐고, 명정전 왼쪽에 임금님이 집무하던 문정전과 회랑을 복원됐다.
공중열차, 하니문카, 케이블카 등 놀이시설도 민간인에게 매각돼 6월까지 치워졌다.
보기 좋지 않게 널려있던 나무들을 잘라내고 느티나무, 홰나무 등을 심어
궁궐 분위기를 한껏 살렸다.

▲ 예년 같았으면 상춘 인파로 크게 붐볐을 창경궁 앞 광장엔
정비 공사를 알리는 안내판만 나붙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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