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

서부극의 왕자/죤 웨인의 추억

선바우1 2018. 1. 22. 21:36



죤 웨인 주연 의 역마차


존 웨인

(John Wayne, Marion Mitchell Morrison,

(1907년 5월 26일 ~ 1979년 6월 11일)





존 웨인은 미국 아이오와 주 윈터셋의 216 사우스 세컨드 스트리트에서

매리언 로버트 모리슨(Marion Robert Morrison)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그의 부모가 그들의 다음 아들의 이름을 로버트로 하기로 하면서 존 웨인의

가운데 이름은 로버트에서 미첼(Mitchell)로 변경되었다.

웨인의 아버지 클라이드 레너드 모리슨(Clyde Leonard Morrison,

 1884~1937년)은 미국 남북 전쟁 참전군인 매리언 미첼 모리슨(Marion

Mitchell Morrison, 1845~1915년)의 아들이다.

웨인의 어머니 메리 몰리 앨버타 브라운(Mary "Molly" Alberta Brown,

 1885~1970년)은 네브래스카 주 랭커스터 군 출신이다.

웨인은 장로교 일원으로 자랐다



10살 때 존 웨인은 할리우드 스튜디오의 말 편자를 박는 한 사람을 위해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일했다. 글렌데일에서 윌슨 중학교를 다녔다.

1924 챔피언 글랜데일 고등학교 팀에서 미식 축구를 했다

 웨인은 미국 해군사관학교에 지원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신 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USC)에 다니며 프리로(prelaw→법학부

이전 준비)를 전공하였다.

웨인은 지방 영화 스튜디오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곧 단역으로 옮겨서 존 포드 감독과 긴 우정을 갖는다.

이 기간 초기에 웨인은 USC 팀 동료들과 미식 축구를 하는 모습이 영화에

등장하기도 했다.

(Brown of Harvard (1926년), The Dropkick (1927년), Salute (1929년),

Columbia's Maker of Men (1930년 촬영, 1931년 개봉).

1954년 유타 주의 한 사막에서 영화 《정복자》 촬영 중 출연진 및 제작진

전원이 방사능에 노출되었고, 이로 인해 1960년대부터 암이 발병하여

10여년간 투병과 수 차례의 대수술을 거친 끝에 1979년 6월 11일

대장암으로 73세의 생애를 마쳤다.

투병 중에 그는 장로교를 떠나 로마 가톨릭으로 개종하였다







존 웨인은 50년간 18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하였다.


《대열차강도》, 1926, 루이스 세일러 감독
《역마차》, 1939, 존 포드 감독
《성난 파도》, 1948
《이오지마의 모래》, 1949, 알란 드완 감독
《리오 그란데》, 1950, 존 포드 감독
《리오 브라보》, 1959, 하워드 혹스 감독
《기병대》, 1959, 존 포드 감독
《알라모》, 1960, 존 웨인 감독
《리버티 발란스를 쏜 사나이》, 1952, 마이클 커티스 감독
《하타리》, 1962, 하워드 혹스 감독
《지상 최대의 작전》, 1962, 켄 아니킨 외 4인 감독
《서부 개척사》, 1962, 존 포드 외 2인 감독
《그린 베레》, 1968, 존 웨인 외 1인 감독
《형사 맥큐》, 1974, 존 스터지스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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