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산 해인사 팔만대장경
1. 팔만대장경이라고 하는 이유
팔만사천 번뇌를 없앤다는 뜻에서 만들었기에
팔만대장경이라고도 부른다.
2. 대장경의 뜻
부처님의 가르침을 기록으로 남기고 있는 불교 경전의 총서다.
한자로 옮기면 삼장(三藏)이 된다. ‘3개의 바구니’라는 뜻이다.
부처의 가르침인 불경은 크게
경(經·sutra)·률(律·vinaya)·론(論·abhidharma)으로 나뉜다.
제자들이 이들 경전을 패엽(貝葉·pattra)이라는 나뭇잎에 새겨 종류별로
세 개의 바구니에 따로 담아 보관한 데서 이름이 붙었다고 전한다.
최초의 한역 대장경인 송나라 개보판대장경(개보칙판이라고도 불림)
이후 대장경이란 이름이 널리 쓰이게 되었다.
3. 대장경을 조성한 이유
불교의 힘을 모아 외침을 물리친다는 의미도 있었지만 한 국가의
문화적 저력과 경제력, 과학기술 등을 과시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문화국으로서의 국위를 떨쳐 이민족이 감히 넘보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도 대장경에 들어 있다는 것이다. 가령 일본에서도 목판 대장경
간행을 시도했으나 완성하지 못했다.
4. 초조대장경
1011년(고려 현종(顯宗) 2년) ∼1087년 77년 만에 완성한 우리나라
최초의 대장경이다. 국내 최초의 목판 대장경이기도 하다.
송나라 개보칙판(開寶勅版)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제작된 한역
대장경이다. 초조대장경은 77년간 약 6500여 권이 판각된 것으로 추정된다.
재조대장경 : 1236∼1251(16년)
추사(秋史) 김정희는 재조대장경의 서체나 판각술에 대해 ‘비육신지필
급선인지필(非肉身之筆 及仙人之筆·사람의 글씨가 아니라 선인의 글씨다)’
이라고 최고의 찬사를 보낸 바 있다.
내용상으로는 재조대장경이 초조대장경을 바탕으로 송나라본·거란본
등과 대조해 삭제·교체·추가하는 등 완성도를 높였고 서체나 판각술이 더
뛰어나기 때문에 더 완벽한 것으로 평가 받는다.
5. 초조대장경이 1000년을 버틸 수 있었던 이유
“고려의 닥종이는 빛깔이 희고 사랑스러워 백추지(百錘紙)라고 부른다”
“고려 종이는 누에고치 솜으로 만들어져 종이 빛깔은 능라비단같이 희고,
질기기는 비단과 같은데 글자를 쓰면 먹물을 잘 빨아들여 소중히 여겨진다.
이는 중국에도 없는 귀한 물건이다”라는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다.
6. 판의 수
일제강점기에 조사한 결과는 8만258장으로 나왔다.
1975년 문화재관리국(문화재청 전신)의 조사에선 8만1348장, 중복판을
제외할 경우 8만1240장인 것으로 집계됐다.
7. 팔만대장경판 보존 비결
장경판전은 해인사에서도 가장 높은 해발 700m 지점에 있다.
목판을 보존하려면 습도가 낮아야 한다. 그런데 해인사는 여름 평균 89%,
겨울 평균 76%에 달하는 고습한 기후를 보인다. 목판을 보관하기엔
열악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장경판이 보존된 비결은 과학적인 장경판전의
건축이다. 벽면의 아래 위와 건물 앞·뒷면 살창 크기(앞면은 위는 작고
아래는 크게 뒤는 그 반대)를 달리해 공기가 실내에 들어가 아래위로 돌아
나가도록 한 것이다.
계곡의 바람을 받아들여 경판과 경판 사이 공간에서도 바람이 지나도록
설계한 독특한 ‘자연환기’ 덕분에 800년 세월을 견뎠다.
해인사 장경판전은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또한 나무 경판에 방수·방충·방부 효과가 있는 옻칠이 된 점도 보존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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