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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와 `Starry starry night

선바우1 2018. 1. 24. 17:28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의

‘Starry starry night’

 

 

알림 아이콘

 

   Don McLean - Vincent( Starry, Starry Night) With Lyrics  

http://www.youtube.com/watch?v=oxHnRfhDmrk

 

 

 

Vincent (Starry Starry Night) Don McLean

http://www.youtube.com/watch?v=dipFMJckZOM&feature=player_embedded

 

 

 

Art & Culture 최선호의 아트 오딧세이

  빈센트 반 고흐 

Starry, starry night

2009년 04월 22일(수) / 한경비즈니스

 

          Vincent (Stary,Stary Night)- Don Mclean

          네델란드의 후기 인상파 화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를 소재로 한 노래라 합니다.

          고흐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화가지만

          생전에는 아무에게도 인정받지 못하고 비참한 생활을 하였다지요.

          오직 화상을 하던 그의 동생 테오(Theo)만이 형의 천재성을 이해하였을 뿐이었다 합니다.

 

          Vincent (빈센트)

          by Don Mclean (돈 맥컬린)

          Starry, Starry night 별들이 반짝이는 밤에

          Paint your palette blue and gray 당신의 팔레트에 파랑색과 회색으로 칠하세요

          Look out on a summer's day 한 여름날을 생각해 보세요

          With eyes that know the darkness in my soul 내 영혼의 어둠을 보는 눈막�

          Shadows on the hills 언덕위의 그림자에

          Sketch the trees and the daffodils 나무와 수선화을 스케치하세요

          Catch the breeze and the winter chills (산들)바람과 겨울한기가 와 닿는

          In colors on the snowy linen land 차가운 리넨의 대지에 채색하세요

          Now I understand 이젠 알아요

          What you tried to say to me 당신이 나에게 말하려는 것이 무엇인지를

          How you suffered for your sanity 얼마나 영혼이 아팠는지

          How you tried to set them free 얼마나 그들로부터 자유를 갈망했는지

          They would not listen they did not know how 그들은 어떻게 듣는 지도 모른 채, 들으려 하지 않았죠

          Perhaps they'll listen now 지금은 아마 귀를 기울일거에요

          Stary, Stary night 별들이 빛나는 밤에

          Flaming flowers that brightly blaze 환한 불길처럼 꽃들이 불타네요

          Swirling clouds on violet haze 바이올렛 아지랑이속에 소용돌이 치는 구름이

          Reflect in vincent's eyes of china blue 빈센트의 색바랜 차이나블루 두 눈에 비칩니다

          Colors changing hue

          Morning field of amber grain 누른 곡식이 펼쳐진 해뜨는 들판에서

          Weathered faces lined in pain 괴로움으로 얼룩진 당신의 풍상의 얼굴이

          are soothed Beneath artist's loving hand 예술가의 부드러운 손아래에서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Now I understand 이젠 알아요

          What you tried to say to me 당신이 나에게 말하려는 것이 무엇인지를

          How you suffered for your sanity 얼마나 영혼이 아팠는지

          How you tried to set them free 얼마나 그들로부터 자유를 갈망했는지

          They would not listen they did not know how 그들은 어떻게 듣는 지도 모른 채, 들으려 하지 않았죠

          Perhaps they'll listen now 지금은 아마 귀를 기울일거에요

          For they could not love you 그들은 당신을 사랑할 수 없었지만

          Still your love was true 여전히 당신의 사랑은 순수했습니다

          And when no hope was left inside on that 또한 더 이상 아무것도 없는, 아무런 희망도 없는

          stary stary night 별이 빛나는 밤에

          You took your life as lovers often do 진정으로 사랑하는 연인들처럼 당신은 삶을 마감했죠.

          But I could have told you Vincent 그렇지만 난, 빈센트 당신에게 말했어야했죠

          This world was never meant for one as 이 세상은 아무 의미가 없었어요.

          beautfil as you 당신처럼 아름다운 사람에게는

          Stary Stary night 별이 빛나는 밤에

          Portraits hung in empty halls 초상화가 텅빈 홀에 걸려있습니다

          Frameless heads on nameless walls 이름없는 벽에 액자도 없이

          With eyes that watch the world and can't forget 세상을 응시하는 두 눈, 그리고 잊을 수 없어요

          like the straingers that you've met 당신이 만났던 그 이방인을

          The ragged men in ragged clothes 두더기 차림의 남루한 남자를

          The silver thorn of a bloody rose 핏빛 장미의 회색 가시

          Like crushed and broken on the virgin snow 순백의 눈위에 부서지고 깨진 것처럼

          Now I think I know 이젠 알 것 같아요

          What you tried to say to me 당신이 나에게 말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And how you suffered for your sanity 또한 당신의 영혼이 얼마나 아팠는지

          And how you tried to set them free 또한 그들로부터 얼마나 자유를 갈망했는지

          They would not listen they're not listening still 그들은 듣지 못했고 여전히 못듣고 있습니다

          Perhaps they never will 아마 들으려고 하지 않을 거에요

 

 

 

 

Starry Starry Night

한 사람. 의 그림.

그 색.

그 世界가

時空을 넘어

어떤 한 사람에게 感動을 주고.

그 사람은 소리를 내어

音樂을 만들어서

宇宙에 띄어 보낸다.

어딘가 에서 고흐는 듣겠지.

 

 

Starry Night

73.0 x 92.0 cm

Saint-Rémy: 1889 6월

New York: The Museum of Modern Art

 

 

  빈센트 반고흐 

Starry starry night

 

생폴 드 모졸 정신병원 전경

원래는 12세기 성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에서 세워 트리카스탱의 성자 폴에게 헌정한 수도원이다.

1800년대 생레미 의사 메르퀴랭이 수도원을 개조해 정신병원을 만들었고,

1차 세계대전 중에는 독일군의 생폴 수용소로 사용되었던 곳이다.

올리브 나무와 소나무 실평백나무를 배경으로 로마네스크식의 아름다운 회랑을 갖춘 이 정신병원에서

빈센트는 자원해서 1889년 5월부터 1년간 입원해 있었다.

Leica M6, ELMARIT-M 1:2.8 / 21mm PROVI 100F

 

          파리에서 기차를 타고 북쪽으로 70km 정도 떨어진 오베르 쉬르 와즈 역에 도착하니

          10월 하순의 저녁 회색 하늘에 찬바람이 몰려왔다.

          오베르는 작은 마을이다.

          우리네 단위로는 면소재지 정도의 작은 간이역에 한 시간에 한 번 정도

          몇 칸의 객차를 연결한 기차가 다니는 그런 평범한 시골이다.

          한때 인상파 화가인 피사로를 비롯, 세잔 등 화가들이 즐겨 화폭에 담던 곳으로

          여름이면 들판의 개양귀비가 지천으로 피고

          유월에는 밀밭의 노란색이 와즈강 건너 들판 위로 넘실대는 곳이다.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는 이 곳에서 생의 마지막 불꽃을 사르며

        <까마귀가 나는 밀밭> <닥터 가쉐의 초상> 등 70여점의 유화작품을 완성하고

          오베르 언덕 너머 끝없이 펼쳐진 7월의 노란색 밀밭에서 37년 짧은 생을 마감하였다.

 

          빈센트는 네덜란드 작은 마을 준데르트에서 개신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 목사가 꿈이었던 그는 성격 부조화로 전도와 설교를 버리고 화랑점원 일을 시작하지만

          사랑의 실패와 아버지와의 불화로 젊은 생을 방황하다가

          동생의 권유로 그의 나이 30이 되어서야 늦게 그림을 시작한다.

 

          빈센트의 작품 활동 기간은 생의 마지막 7년으로 이 짧은 기간에

          약 875점의 회화와 1100점의 데생을 남겼다.

          정식 미술교육도 받지 않고 그림도 어려서 일찍 시작한 것도 아니건만

          한 사람의 평범한 무명화가가

          자기의 꿈과 열정을 우울증과 고난과 싸우며 이루어낸 실로 엄청난 결과물이다.

 

생 레미 시가풍경

전형적인 10월의 프로방스 날씨로 남불의 정취를 한껏 보인다.

시내라고 해도 걸어서 10분 정도밖에 안 되는 작은 곳이지만,

구석구석 이탈리아 시골 같은 따뜻함이 배어있다.

Leica M6, ELMARIT-M 1:2.8 / 21mm PROVI 100F

 

          오베르에서의 희망

          빈센트는 1890년 5월 남불 생레미 생폴 드 모졸 정신병원에서 파리근교 오베르로 거처를 옮겼다.

          생폴 드 모졸에서의 1년 동안 정신병원 생활은 발작과 열악한 환경으로 거의 지옥이었고,

          간간히 정신이 온전히 들 때 그림을 그리는 순간이 가장 행복했다.

          파리 시절부터 따뜻한 스프에 제대로 된 음식을 먹은 기억이 아득하고

          대신 독한 싸구려 압셍트 술에 딱딱한 바게트로 허기를 달랬다.

          치아는 거의 망가져 10개나 충치로 고생했고,

          매달 테오가 보내주는 생활비는 물감 값과 방세를 지불하면 남는 게 없었다.

          그래도 빈센트는 자기의 그림이 곧 팔릴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 희망은 빈센트 생전 단 한 점의 유화가 팔린 것 이외는 아무것도 없어

          그를 죽는 순간까지 절망에 빠트렸다.

 

          빈센트는 오베르의 한적한 시골풍경이 마음에 들었다.

          정착한 다음날부터 일찍 화구를 챙겨

          오베르 언덕을 오르는 골목풍경과 까마귀가 나는 교회 등을 스케치하고

          잠자리 겸 화실인 카페 라부로 돌아와 열심히 캔버스에 유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튜브에 담긴 선명한 색채의 물감을 다른 색과 섞지 않고 그대로 사용한 빈센트의 그림은

          그의 짧게 끊은 붓질과 함께 자신의 개성을 직접적이고 과감하게 내보이는 방식이었다.

          빈센트는 그림 자체가 땀을 철철 흘리는 것처럼 캔버스 위에 거친 붓질로 빠르게 그려나갔고,

          튜브에서 곧바로 짜내 바른 듯 두터운 물감의 흔적은

          마치 화가가 바로 몇 초 전에 그 붓질을 완성 한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하였다.

 

종이에 연필, 13.5x21Cm, 2008

오베르 언덕 시내가 바라보이는 곳에 자리한 빈센트와 테오의 무덤을 스케치 했다.

살아서 둘은 형제의 우애보다 더 진한 인연의 끈을 놓지 못하더니

죽어서도 아이비 넝쿨 한 이불속에 나란히 누워 있다.

 

          빈센트의 고독

          오베르역 가까이 대로변에 자리한 카페 라부의 이층 다락방은

          아직도 빈센트의 온기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듯 내 마음이 뜨거워진다.

          한 사람이 겨우 올라갈 만한 삐걱거리는 나무계단을 오르면

          천장에 뚫어진 들창으로 희미한 빛줄기가 나무 바닥에 비추인다.

          빈센트의 방은 서너 평도 채 안 되어 보이는 나무마루에

          1인용 철제침대와 밀짚으로 엮은 나무의자 한 개와

          오베르 읍내가 내다보이는 작은 들창 하나가 전부였다.

 

          고흐가 그곳에서 가진 것이라고는

          붓 몇 자루와 파레트, 물감 몇 개 그리고 캔버스와 작은 이젤 하나,

          허름한 밀짚모자와 파이프 담배, 낡은 옷 몇 벌이 전부였다.

          자신의 모진 삶은 바위보다 무거웠지만 가진 것은 새털보다 더 가벼웠다.

          평생 가난과 고독을 벗하며 발작과 우울증으로 고통스럽게 살다가

          생의 마지막 2개월을 이곳 오베르에서 미친 듯 그림을 그리고 별처럼 사라졌다.

 

         “지난 삶의 기억들, 이별한 사람들이나 죽어버린 사람들, 영원히 지속될 것 같던 시끌벅적한 사건들...

          모든 것이 마치 망원경을 통해 희미하게 바라보는 것처럼 기억 속으로 되돌아올 때가 있지요.

          과거는 그런 식으로만 붙잡을 수 있는가 봅니다. 저는 계속 고독하게 살아갈 것 같습니다.

          가장 사랑했던 사람들도 망원경을 통해 희미하게 바라보는 수밖에는 없습니다.”

 

          1890년 6월 12일 오베르에서 자살하기 한 달 전,

          빈센트가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 가운데 한 구절이다.

          그는 죽는 순간까지 자신의 고독을 직시했다.

 

생 폴드 모졸 정신병원의 안뜰

고풍스러운 회랑으로 둘러친 안뜰에는 갖가지 꽃으로 장식된 갖추어진 화단이 정연하고

볃으로 올라간 담쟁이에 가을이 진하게 내려앉았다.

고흐는 이곳과 오베르에서 자신의 걸작 대부분을 완성했다.

Leica M6, ELMARIT-M 1:2.8 / 21mm PROVI 100F

 

          빈센트의 죽음

          1890년 7월 27일 빈센트는 오베르 언덕의 밀밭에서

          심장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고 총알은 횡경막을 비껴 관통했다.

          그의 자살시도 동기는 자세히 알 수 없지만,

          파리에 있는 테오의 실직으로 더 이상 생활비와 화구를 살 비용을 마련할 수 없다는 절망감과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간질 발작이 언제 다시 시작될지 모르는 불안감으로

          심각한 우울증에 빠졌던 것 같다.

 

          그해 여름의 밀밭도 노란색으로 넘쳐나고 하늘엔 까마귀가 가득 날고 있었다.

          사고 소식을 듣고 파리에 있던 동생 테오가 카페 라부에 도착했을 때,

          빈센트는

         “너는 인간 세상에 이토록 슬픔이 가득하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을 거야” 라고 말하였다.

 

          테오는 형의 상처가 곧 나을 것이라고 믿었지만

          패혈증으로 인한 열이 빈센트를 덮쳤고 그는 바로 의식을 잃었다.

          그리고 이틀 뒤 빈센트는 눈을 감았다.

          테오는 빈센트의 방을 해바라기로 장식하였고, 관 옆에는 그의 그림을 진열하였다.

 

          7월 30일 조촐한 장례행렬이 따가운 햇살 아래

          빈센트가 살아 생전 회화의 재발견을 이룩했던 들판을 가로질러 나아가고 있었다.

          거기에는 파리 시절 빈센트에게 물감이며 화구를 대주던 화구상 탕기 할아버지도 있었고

          닥터 가쉐와 화가 피사로도 있었다.

          빈센트의 삶의 무게만큼 장례식도 무거웠다. 말없이 삶이 고통스럽게 마감되는 순간이었다.

 

          빈센트의 죽음 후, 몇 달이 지난 1891년 1월 12일

          테오 역시 위트레흐트에서 형에 대한 연민과 회한으로 숨을 거둔다.

          1914년 테오의 유해는 아내 요한나에 의해

          오베르의 언덕 위 까마귀 나는 밀밭 공동묘지로 옮겨져 빈센트의 옆에 묻혔다.

          빈센트와 테오의 무덤은 서로 떨어질 수 없는 담쟁이 넝쿨로 함께 덮였다.

 

          빈센트는 아를에 있을 무렵 테오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를 보냈다.

         “아무리 육체와 정신이 부서져라 성실히 작업해서 작품을 완성했다 하더라도

          화가도 결국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죽으면 묘지에 묻힌다.

          단지 약간 다른 점이 있다면 진정한 화가의 경우,

          그 작품이 후세에 영원히 회자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화가로서 최대의 과제는 죽음이 아니라

          그런 작품을 제작하는 행위 자체일 것이다.

          .....

          기차를 타고 타라스콩이나 루앙에 갈 수 있는 거라면 죽음을 타고는 하늘의 별에 갈 수 있을 텐데...”

 

          빈센트에게 별들이 가득한 아름다운 하늘은 죽음의 세계이며

          그곳에 도달하기 위한 “증기선이나 마차 혹은 기차 같은 교통수단으로...

          나이 들어 조용히 죽는 건 걸어가는 것과 같은 것” 이라고 생각됐다.

 

          빈센트의 죽음은 하늘에 있는 별을 향한 37년 동안의 고난과 창조, 사랑으로 충만한 궤적이었다.

          그 짧은 궤적의 최후 7년 동안 그는 마치 하늘의 계시라도 받은 것처럼(모짜르트의 삶과 예술처럼)

          후세에 길이 남는 무수한 작품을 남겼다.

 

 

오베르 교회 전경

12세기에 지어진 교회로 1890년 6월, 고흐가 죽기 두 달 전에

오베르 교회의 전경과 6월의 푸른 하늘을

빠른 붓질과 네델란드 리모주에서 생산되는 청색으로 강렬하게 그려내었다.

Leica M6, ELMARIT-M 1:2.8 / 21mm PROVI 100F

 

          빈센트 그림의 명암

          빈센트의 삶은 살아 생전 그렇게 갈망하던 화가로서의 자립과

          가정의 독립을 이루지 못한 채 회한으로 점철됐다.

          그의 그림이 팔린 이력을 보면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빈센트가 화가 수업을 위해 네델란드의 헤이그에 머무를 무렵 예전에

          그가 일했던 구필화랑의 헤이그 지점장이 소묘화 한 장을 10굴덴(약 5000원)에 샀고

          헤이그의 풍경을 그린 작은 펜화 12점을 숙부가 30굴덴에 샀으나

          그것은 결코 생계에 보탬이 되는 수입은 아니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33세 때 파리에 있을 무렵 그는 식량을 구하기 위해

          여러 장의 그림을 고물상에 헐값에 팔아 치웠고,

          고물상은 그 그림들에 칠한 물감을 떼어내서 중고 캔버스로 만들어 팔았다고 한다.

 

          빈센트가 친구들과 자주 다녔던 파리의 ‘카페 뒤 탕부랭’ 에서 그림 경매를 할 때

          그의 그림은 10매 1세트에 50상팀(0.5프랑)밖에 되지 않았다.

          당시 카페에서 마시는 커피 값이 0.25프랑이었으므로

          그림 10장이 고작 커피 두잔 값에 팔린 셈이다.

 

          만년에 아를에서 빈센트의 치료를 담당했던 의사 펠릭스 레이는

          빈센트가 감사의 표시로 선물했던 그림을 끝내 거절하지 못하고 받긴 받았으나

          그 밖의 그림은 모두 거절했다.

          선물로 받은 그림은 잠시 펠릭스 레이의 집 다락방 창고에 보관되어 있었으나

          곧이어 닭장의 여닫이문으로 쓰였다.

 

          또한 빈센트가 정신병원에 입원했던 생레미의 의사 아들은

          빈센트가 그곳을 떠나며 남긴 그림 몇 장을 친구와 사격 연습용 과녁으로 썼다고 한다.

 

          하지만 빈센트의 그림은 죽기 전 서서히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비평가들의 입에도 오르내렸다.

          빈센트는 생전에 단 한 점 <아를의 붉은 포도밭>이 400프랑에 팔렸지만,

          사후 한 세기가 지나서 세계 경매시장에서 그의 그림은

          사상 최고가를 갱신하는 기염을 토한다.

 

          1987년, 생레미 생폴 드 모솔 정신병원 정원에서 그린 <붓꽃>은

          소더비 경매에서 3억2000만 프랑(약 768억 원)에 팔려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 값으로 기록되었다.

          그러다가 다시 1990년 크리스티경매에서

        <닥터 가쉐의 초상>이 8220만 달러에 낙찰되어 최고 경매가를 갱신한다.

          400프랑에서 8000만 달러가 넘는 금액으로 뛰었으니

          그 가치를 새삼 논한 들 무엇 하겠는가.

 

          예술의 힘이 대단하다.

          빈센트는 처절한 삶과 예술이 결국 꽃을 피워 세상에 하나의 획을 그은 셈이다.

          빈센트는 죽어서 천국과 살아서 지옥을 오간 몇 안 되는,

          전 세계 미술사가와 미술애호가들로부터 가장 사랑받는 화가 중의 한 명이 되었다.

 

          Starry, starry night

          오베르의 빈센트와 만나고 오베르기차역으로 돌아가는 길 마음이 울적했다.

          대학시절 의미도 모른 채 흥얼거렸던 돈 맥클린의「빈센트 Vincent」노랫말이 새삼스럽다.

         “별이 많은 밤입니다,

          파란색과 회색으로 팔레트를 칠해 봐요...

          나 이제 알 것 같아요.

          당신이 내게 뭘 말하려 했는지.

          당신이 온전하게 살아가기 위해 얼마나 힘들었는지,

          사람들을 자유롭게 해주기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 알아요...

          별빛 가득한 그날 밤,

          연인들이 종종 그러하듯이 당신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지요.

          하지만 빈센트, 나 당신에게 할 말이 있었어요...

          당신이 이제 무얼 말하려 했는지 나는 이해합니다.

          당신의 광기로 당신이 얼마나 고통 받았는지 당신이 얼마나 자유로워지려 했는지 말이에요...”

 

          정말 빈센트는 밤하늘의 빛나는 별이 되었을까.

          오늘밤도 별이 총총 ....

          글ㆍ사진 : 최선호 서양화가

 

          최선호

          서울대학교 회화과 및 동대학원,

          뉴욕대학교(NYU) 대학원 졸업,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동양철학 박사과정 수료.

          간송미술관 연구원,

          SADI(삼성아트디자인 인스티튜트) 교수 및 한국전통문화학교 교수 역임.

          현재 전업화가.

 

 

 

  빈센트 반 고흐 `Starry starry night 

 

 

 

 

          광기어린 예술가 빈센트 반 고흐의 신화가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은지 1세기가 넘어갑니다.

          생전에는 외면당했던 그는 사망 이후 드디어 작품이 빛을 보아 폭발적으로 번져나갔고

          강렬하고 선명한 색채로 세계를 사로잡았습니다.

          오늘날 그의 작품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귀중한 예술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

          내 손가락 안에서 붓은 마치 바이올린의 활인 양 움직여... 그리고 그건 온전히 나의 기쁨이지

          우리는 반 고흐를 생각하며 타고난 순수한 본능으로

          내면의 불꽃을 캔버스에 쏟아내는 방법을 찾아낸 기이하고 미친 천재를 떠올립니다........

          자막 중에서 발췌~

 

 

            Van Gogh - Painted with Words (BBC).smi

 

            Van Gogh - Painted with Words (BBC).torrent

            BBC torent는 시드는 있지만 처음엔 좀 느립니다.

 

 

          Van.Gogh.1991.1080p.BluRay.x264-CiNEFiLE [PublicHD].torrent

 

          Van.Gogh.1991.720p.BluRay.x264-CiNEFiLE.smi

              ↑ 용량이 5.88.....자막은 동영상 제목과 같게 하여야 ~

 

 

 

 

 

해바라기를 그리는 고흐 / 고갱作

 

 

돈맥린(Don McLean)이 작사ㆍ작곡하고 부른 노래,

화가 고호(Vincent Van Gogh)애 대한 노래이다.

가사 내용 붕 별이 빛나는 밤에(The Starry Night)라는 작품을 통해

그는 고호를 느끼고 노래한다.

 

 

 

[어린이 책]

  만화로 만나는 고흐의 삶과 그림세계 

빈센트 반 고흐 / 모나 혼캐슬

2013-02-02 / 이현정 기자

 

 

 

          살면서 예술을 아느냐 모르느냐의 차이는 사소할지 모르겠으나,

          빈센트 반 고흐를 아느냐 모르느냐는 엄청난(?) 삶의 질의 차이를 초래한다.

          인정한다.

          책 한 권 소개하려고, 과장이 좀 심했다.

 

          하지만 고흐를 모르고서 'Starry, starry night(별이 빛나는 밤에)~' 으로 시작하는

          노래 '빈센트' 를 제대로 음미할 수 있을까.

         '빈센트' 는 고흐의 고통스러웠던 삶을 이해하고 보듬는 노래다.

          심지어 무심코 지나친 커피 머그잔 하나에도

          고흐의 그림 '밤의 카페 테라스' 가 그려져 커피 맛에 의미를 더한다.

          예술은, 미술은 그렇게 커피 한 잔의 맛까지도 바꿔 놓는다.

 

          아이들이 고흐의 삶을 안다면 고흐의 그림을 달리 보지 않을까.

          그리고 고흐의 그림을 안다면,

          그래서 미술에 대해 관심을 가진다면 삶의 깊이가 좀, 달라지지 않을까.

          이 책을 소개하는 이유로 '책' 보다는

         '고흐' 에 더 방점을 찍고 싶다.

 

          고흐의 삶을 만화로 표현하고

          각각의 상황에서 탄생한 고흐의 그림까지 쉽게 소개하는 아이들을 위한 책이 나왔다.

         '빈센트 반 고흐' 는 현암사에서 펴낸 '만화로 만나는 예술가' 제 1편이다.

 

          저자는 당대에는 인정받지 못했던 불운한 화가, 고흐의 이야기를

          그의 동생 테오와의 편지 내용을 토대로 전개해 나간다.

 

          실제로 평생 동안 고흐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동생 테오는

          고흐의 재능을 인정하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 고흐의 예술가적 자질을 북돋웠다.

          또한 미술 재료비 및 생계비를 대 고흐가 그림을 팔지 않고서도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다.

 

          책에는 고흐 삶에 있어 클라이맥스라고 할 수 있었던 지점,

          고갱과의 이야기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고흐가 고갱을 기다리며 희망에 차 열다섯 점의 해바라기 그림을 그리던 모습,

          고갱과 이별하며 귀를 자르며 괴로워하는 모습에서는 몰입도가 높아진다.

 

          A4 크기 책 한 장 가득 담겨 있는 고흐의 작품은

          뛰어난 색감을 최대한 살려 내 작품집 같은 느낌도 난다.

          작품의 배경이 된 뒷얘기들이 만화로 간결하게 나와 있으니

          아이들이 부담 없이 읽기에 좋을 듯하다.

 

          고흐의 삶의 궤적을 따르다 보니

          만화 또한 '고흐스러워져' 다소 복잡해 보이기도 하지만

          앞뒷장에 나오는 고흐 작품과는 연결이 자연스럽다.

 

          뒷장에는 고흐 주변에 등장하는 사람들에 대한 소개와

          고흐에 영향을 준 인상파 화가들에 대한 설명이 나와

          다소 '교과서스럽긴' 하나 이해를 돕기에는 그만이다.

          초등학생용 / 모나 혼캐슬 글바바라 옐린 그림 / 김경연 옮김 / 현암사 / 48쪽 / 1만 5천 원. 이현정 기자

 

 

 

 

 

[사색의 향기]

  반 고흐의 위로 

안진의 화가

2013.02.21

 

 

 

          얼마 전 지인들과 함께 한 바에서 돈 맥클린의 팝송 ‘빈센트’ 를 들었다.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 The Starry Night’ 을 모티브로 만든 반 고흐의 추모곡이다.

          영롱하고 감미롭게 귓전을 두드리는 “스탈리 스탈리 나잇…”

 

          높은 회전의자에 앉아 ‘빈센트’ 를 듣는 동안,

          시선을 두고 있던 바 중앙의 청록색 당구대는

          반 고흐의 작품 ‘아를의 밤의 카페’ 에 나오는 녹색 당구대가 되었다.

 

          그리고 탁자 앞에 둔 투명한 데킬라 한 잔은

          작품에 나오는 40도가 넘는 독주, 압생트를 닮아버렸다.

          나는 노래가 흐르는 동안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날의 오묘한 경험 때문에 며칠 후, 나는 반 고흐의 전시장을 찾았다.

          그리고 그의 작품 ‘압생트와 카페 테이블’ 을 대면하는 순간 엷은 미소가 번졌다.

          압생트 그림은 그의 불운한 삶을 닮은 듯 슬퍼 보이지 않아서였다.

 

          희석해 마실 수 있는 물병을 향해 살짝 몸을 기댄 술잔은 녹색 띤 밝은 라임 빛이었다.

          압생트를 매일같이 마시면

          정신력 저하, 환각경험 등 압시틴 중독증으로 건강을 해친다는 것은,

          그가 알았어도 거부할 수 없을 만큼 너무나 따듯한 연인처럼 놓여있었다.

 

          1년 전 죽은 형과 같은 날짜에 태어나 형의 이름 ‘빈센트’ 를 물려받은 빈센트 반 고흐는

          늦은 나이에 화가로 입문해 37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10년간, 가난 속에서 창작의 갈망을 뜨겁게 키워갔다.

 

          하지만 귀를 잘라 창녀에게 보내고,

          가슴에 총을 쏘고 폐에 치명상을 입은 채 숙소로 돌아오는 등,

          불운한 삶과 기행 탓에 사람들은 작품마저 광기로 해석하려고 하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반 고흐의 그림에는 유령도 없고 환영도 없고 환각도 없다.

          그것은 오후 두 시에 내리비치는 태양이 작열하는 진실이다.”

          앙토냉 아르토의 말처럼,

          화가의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정신적 외상의 일면이 걸작을 만들었다고 속단할 수 없다.

          광기였다면 그의 테크닉이 제대로 컨트롤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는 작업하는 동안만큼은 온전한 정신으로 집중했고

          부단한 노력에 의해 그만의 방법으로 완결된 수작을 남겼다.

          반 고흐의 이러한 최고작은

          프랑스 남부 아를르와 파리 북쪽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서 끝나는 생애 마지막 약 2년간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그 토대가 만들어지는 시기는

          이번에 전시한 1886년부터 1888년 2월 중순에 이르는 파리시기다.

          그가 사실주의에서 모더니스트로 변모하기 위해 몸부림쳤던 이 시기의 작품들을 주목해 보면,

          얼마나 치열한 노력 속에 생애 마지막 빛나는 작품들이 탄생한 것인지 이해할 수 있다.

 

          전시장의 작품들을 눈여겨보면 다양한 방식과 붓질로 끊임없이 탐구하는 과정을 볼 수 있다.

          그는 문학을 가까이 했고,

          편지를 쓰면서 그의 작업에 대해 끊임없이 사색하였다.

          색실로 색채를 연구하기도 했고,

          빛으로서의 색을 탐미했고,

          서로 다른 색들을 배열함으로 병치혼합의 색채 효과를 끊임없이 찾아내었다.

 

          렘브란트와 쿠르베 같은 뛰어난 소묘력을 바탕으로 하는 대가들의 인물화를 보기 위해

          루브르를 방문한 후에는

          곧바로 자기스타일의 자화상을 만드는 작업에 몰두하였고,

 

          폴 시냑과 쇠라를 만났어도

          그와는 다른 자기만의 독특한 점묘를 시도하였다.

 

          일본판화를 접한 후에는

          이질적인 것과 자신의 고유한 것을 결합하며 독창적인 자기세계를 만들려 했다.

 

        “그림을 그리지 않았더라면 지금보다 더 불행했을 것이다” 는 말처럼

          그는 그림으로서 스스로를 구원하고자 했다.

          그는 스스로 자신의 내면을 가장 솔직하게 드러내면서

          가장 치열하게 자기의 삶을 완성하려 노력한 사람이다.

          그의 정신적 질환이 후기의 걸작을 나은 것이 아니라

          걸작을 만들기 위해 최대한의 몰입으로 뜨겁게 화폭을 달구었고,

          지금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다.

 

         “인생의 고통이란 살아있는 그 자체다” 는 그의 말처럼

          처연하게 외로움과 다퉜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도 희망이 싹트는 시간이 있기에

          다시금 그에게 붓을 들게 했을 것이다.

          그가 늦은 오후 압생트를 마시는 시간은

          어쩌면 스스로를 위로하는 사색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반 고흐의 압생트가 그를 위로하여 오늘 우리에게 위안을 준다.

 

 

 

 

[삶의 향기]

  별이 빛나는 밤에 

2013.07.16 / 중앙일보

 

김동률 / 서강대 MOT 대학원 교수

 

 

          매체경영누구에게나 추억의 장소는 한두 곳 있다.

          그 대상은 술집도 되고 밥집도 되고 또 어느 특정 지역도 된다.

          나에게 누군가 나라 밖에서 가장 정든 곳을 묻는다면

          오베르 쉬르 우와즈라는 파리 근교의 작은 마을을 꼽는다.

          내가 이 마을에 연연하는 것은 반 고흐 때문이다.

 

          지나치게 유명해진 탓에 오히려 냉소적인 감상자들이 있긴 하지만

          많은 한국인이 그랬듯이 한 시절, 반 고흐의 그림들을 좋아했다.

          사람의 기호나 취향이라는 게 늘 변하게 마련이고,

          지금에야 난해한 그림들도 제법 이해하게 되었지만

          십대 때는 반 고흐가 어쩌면 내 수준에 딱 맞는 그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반 고흐 공책에다 반 고흐 책받침을 깔고 성문기본영어를 공부하고 해법수학을 풀었다.

 

          파리 외곽 퐁투와즈 역에서 오베르로 가는 아침,

          느닷없이 떠오른 것은 ‘빈센트’ 라는 노래였다.

          반주 없이 갑자기 목소리부터 튀어나오는 “starry starry night(별이 빛나는 밤에)” 을

          노래 제목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클래식 포크다.

          그것은 마치 ‘돌담길 돌아서며’ 를 ‘물레방아 도는데’ 라는 노래의 제목쯤으로 기억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빈센트는 1960년대 유명 저항가수 돈 매클린이 반 고흐를 추억하며 부른 노래다.

         “별이 빛나는 밤에 /  당신 팔레트의 블루와 그레이로 칠하세요 /

          내 마음속의 어둠을 알고 있는 눈으로 / 빛나는 여름날을 보세요” 로 시작되는 노래는

          오랜 세월 동안 세대를 아울러 한국인들의 사랑을 받아 왔다.

 

          지난 열흘간 파리에 머물렀다.

          비어 있던 지인의 아파트에 기거하며 혼자 파리의 뒷골목을 탐닉하는 이른바 나 홀로 여행이었다.

          샹젤리제를 어슬렁거리기에는 당연히 주머니가 가볍고, 루브르는 너무 복잡했다.

          그래서 짧은 자투리 시간에는 몽소나 뤽상부르 등 시내 공원을 걸어 다니다

          문득 하루 날을 정해 오베르를 다녀오기로 했다.

 

          오베르는 빈센트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마을이다.

          이 작은 마을을 향해 가는 나의 마음은 설렌다.

          지난 90년대 신혼 초 아내와 한 번 다녀온 적이 있으니 실로 이십여 년 만에 다시 찾는 셈이다.

          파리에서 교외선 기차 SNCF를 타고 시간 반을 달리면 오베르가 나온다.

          진녹색의 우와즈 강가에 위치한 마을에는 칠월의 태양이 찌릉찌릉하다.

 

          알려진 대로 반 고흐는 생의 마지막 석 달을 이곳에서 보냈다.

          1890년 5월 21일 스스로 귓불을 면도칼로 잘라 창녀에게 선물하는 등 병적인 행각 끝에

          생 레미 정신병원에 갇혀 있다 퇴원한 반 고흐는 파리 근교 오베르를 찾는다.

          그는 그해 여름 이곳에서 수많은 걸작을 탄생시키게 된다.

          그리고 7월 27일, 마을 뒤 밀밭에서

          그림을 그리는 동안 까마귀가 극성을 부린다며 가져간 총으로 스스로에게 방아쇠를 당긴다.

          결국 파리에서 달려온 동생 테오의 가슴에 안겨 이틀 뒤 불과 서른일곱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너무나 가난해서 한평생 온기 있는 방에서 자보지도 못했던 화가,

          살아생전에는 단 한 점의 그림도 제대로 팔지 못했으나

          죽어서는 세상에서 가장 비싼 값에 팔리는 화가의 고단한 일생은 이처럼 허무하게 끝난다.

 

          오베르 마을은 적막강산이다.

          하늘을 향해 치솟은 사이프러스 나무는

          한여름 햇살이 눈부시고 까마귀가 날던 검푸른 밀밭은 꿈틀거리는 욕망에 뒤척이고 있다.

          공동묘지 북쪽에 위치한 무덤에 가 본다.

          1914년 이곳으로 이장한 동생 테오와 나란히 묻혀 있는 무덤 주위에는 장미꽃들이 만발해 있다.

          그가 얼마나 괴로워했고

          또 얼마나 자유로워지고 싶어 했는지 그때는 아무도 몰랐다.

 

          그러나

         “그가 말하고자 한 것들을 비로소 우리 모두 알기 시작한다(Now I understand what you tried to say to me).”

          무덤 앞에 선 내게 마치 노래 ‘빈센트’ 가 들리는 듯하다.

          그러나 돌아보면 아무도 보이지 않고 먼 하늘만 눈에 가득 차 온다.

          무성한 밀밭은 이제 초록에 지쳐 차라리 검푸르다.

          고흐가 몸부림쳤던 들녘은 고요하고,

          멀리서 지켜보는 오베르 교회도 세월과 함께 남몰래 야위어 간다.

          밤하늘에 빛나는 별을 보고 길을 찾았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김동률 서강대 MOT 대학원 교수매체경영

 

 

 

Writer : 고흐처럼 살고 싶다

SUBJECT : 빈센트 반고흐 _ Starry starry 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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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의

  Starry Night over the Rhone 

 

 

 

 

 

 

 

 

 

 

 

 

 

 

 

 

 

 

 

 

 

 

 

 

 

Starry Night over the Rhone

Vincent van Gogh, 1888

Oil on canvas 72.5 cm × 92 cm

Musée d'Orsay, Paris

 

 

- 2008년 Starry Night over the Rhone -

 

 

- 빈센트가 그린 Starry Night over the Rhone 의 스케치 1 -

 

 

- 빈센트가 그린 Starry Night over the Rhone 의 스케치 2-

 

 

 

 

빈센트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의 원본

 

          친애하는 테오에게,

          너의 서신과 서신에 포함되어있던 50프랑은 참으로 고마웠어.

          다리가 다시 아파오는 것은 좋지 않은 일이야.

 

       - 나의 신이시여 -

          네가 프랑스 남부에 함께 함께 사는 것이 가능하면 정말 좋을거야.

          우리는 서로가 필요하고,

          태양과 좋은 날씨 그리고 푸른 하늘은 너와 나를 강하게 만드는 치료제가 될테니까.

          이곳의 날씨는 여전히 너무나 아름다워. 항상 이렇게 아름답다면

        '그림을 그리기에 가장 좋은 낙원이라는 일본' 보다 그림을 그리기에 더 좋은 환경일 거야.

          여기있으면 너와 고갱 그리고 버나드가 생각나.

          이곳은 너무나 아름다워.

          너희들과 함께 하면 더욱 좋을텐데.

          30개의 조그만 사각형 캠퍼스에 밑그림을 그렸어.

          밤 하늘과 촘촘하게 반짝이는 별.

          실제로 그것은 환하게 느껴져.

          하늘은 투명한 남청색. 땅은 연한 자주 빛. 마을은 파란색과 보라색.

          기체는 노란빛이라고 해야할까.

          적갈색 금으로 이루어진 메달과

          초록 브론즈가 어우러져 반사되는 그런 빛의 느낌이야.

          하늘은 투명한 남청색의 들판처럼 펼쳐져있고,

          그 위에 위대한 곰이 녹색과 분홍색으로 빛나고 있어.

 

.........

 

          My dear Theo,

          thank you very much of your letter and the 50 francs note that it contained.

          It is not good that the pains in the leg have come back - my god - it would be good it if it was

          possible if you could live in the Midi too,

          because I always think that we need each other,

          and the sun and good weather and the blue air are the strongest remedy.

          The weather here remains beautiful, and if it is always like this then it would be better than the

          paradise of those painters who are in Japan itself.

          I think about you and Gauguin and about Bernard all the time and everywhere.

          It is so beautiful and I would so like to see everybody here.

          Included a small sketch of a 30 square canvas - in short the starry sky painted by night,

          actually under a gas jet.

          The sky is aquamarine, the water is royal blue, the ground is mauve.

          The town is blue and purple.

          The gas is yellow and the reflections are russet gold descending down to green-bronze.

          On the aquamarine field of the sky the Great Bear is a sparkling green and pink,

          whose discreet paleness contrasts with the brutal gold of the gas.

          Two colourful figurines of lovers in the foreground.

          Also a sketch of a 30 square canvas representing the house and its setting under a sulphur sun

          under a pure cobalt sky.

          The theme is a hard one!

          But that is exactly why I want to conquer it.

          Because it is fantastic,

          these yellow houses in the sun and also the incomparable freshness of the blue.

          All the ground is yellow too.

          I will soon send you a better drawing of it than this sketch out of my head.

         The house on the left is pink with green shutters.

          It's the one that is shaded by a tree.

          This is the restaurant where I go to dine every day.

          My friend the factor is at the end of the street on the left,

          between the two bridges of the railroad.

          The night café that I painted is not in the picture,

          it is on the left of the restaurant.

          Milliet finds this horrible,

          but I don't need to tell you that when he says he doesn't understand that one can have fun doing

          a common grocer's shop and the stiff and proper houses without any grace,

          but I remember that Zola did a certain boulevard in the beginning of L'assommoir,

          and Flaubert a corner of the embankment of the Villette in the dog days in the beginning of Bouvard

          and Pécuchet which are not to be sneezed at.

          It does me good to do difficult things. It does not prevent me from having a terrible need of,

          shall I say the word - of religion - then I go outside in the night to paint the stars

          and I dream ever of a picture like this with a group of lively figures of our pals.

          Now I have had a letter from Gauguin who seems very sad,

          and says that certainly if he made a sale he will come,

          but he doesn't say clearly that if he would simply have his journey paid

          he would agree to come down here.

          He says that the people where he lodges are,

          and have been, great to him, and that to leave them like that would be a bad thing to do.

          But that I turn a dagger in his heart if I would believe that

          he would not immediately come if he was able to.

          That besides,

          if you could sell his canvases at a low price he would be happy.

          I will send you his letter with the replies.

          Certainly his arrival would be an increase of 100 percent in the importance of this enterprise of

          doing painting in the Midi.

          And once here,

          I don't see him leaving again because I believe that he would take root here.

          And I always tell myself that what you are doing in private would in the end, with his collaboration,

          be a more serious thing than just my work,

          without an increase in the expenses and you would have more satisfaction.

          Later on,

          if maybe one day you are on your own with the impressionist paintings you will only

          have to continue and to enlarge on those which actually exists.

          Finally Gauguin says that Laval found someone

          who will give him 150 francs per month for at least one year,

          and that Laval also would maybe come in February.

          And I have written to Bernard that I think that in the Midi he could not live for less than

          3.50 or 4 francs per day just for lodging & food.

          He says that he believes that for 200 francs per month

          he would have food and lodging for all 3 which is not impossible,

          if we live & eat in the studio.

          The Benedictine father must have been very interesting.

          What would,

          according to him, be the future religion? Probably he would always say the same as the past.

          Victor Hugo says God is an eclipsing lighthouse,

          and certainly now we are passing through that eclipse.

          I only wish that someone could prove to us something calming which comforted us,

          so that we stopped feeling guilty or unhappy and that we could go forward with out

          losing ourselves in the solitude or nothingness,

          and without having to fear every step,

          or to nervously calculate the harmwe may unintentionally be doing to others.

          In odd Giotto's biography it said that he was always suffering and always full of ardour and ideas.

          There, I would like to arrive at this assurance that makes one happy,

          cheerful and alive all the time.

          That would be easier to do in the country or a small town than in that Parisian furnace.

          I would not be surprised if you will like the starry night and the ploughed fields -

          they are more tranquil than the other canvases.

          If the work always turned out like that I would have less concerns about money,

          because people would take to them more easily if the technique continued to be more harmonious.

          But this blasted mistral is very bothersome to do brushstrokes that hold and are well interwoven,

          with a feeling like music played with emotion.

          With this calm weather I let myself go and I don't have to struggle against impossibilities

          Tanguy's consignment arrived and I thank you very,

          very much for it because I also hope to be able to make something during autumn for the

          next exhibition.   

          What is now the most pressing is 5 or even 10 meters of canvas.

          I write again that I will send Gauguin's letter with the reply.

 

          Very interesting what you say of Maurin

          at 40 francs his drawings are certainly not expensive.

          More and more I come to believe that the true and proper trade of painting is one

          has to let oneself go with one's taste,

          one's learning before the masters, in short one's faith.

 

          It is not any easier, I am convinced,

        to make a good painting that to find a diamond or a pearl ;

          it requires pain and one must risk his life as a dealer or as an artist.

          But once one has some good stones then self doubt is not necessary,

          and one must boldly stick to a certain price.

          In the meantime… but while this idea encourages me to work,

          still naturally I suffer at having to spend money.

          But in the midst of my suffering this idea of the pearl came to me,

          and I would not be surprised if it didn't do you good too in times of discouragement.

          There are as few good paintings as there are diamonds.

          And there is absolutely nothing dishonest about doing business with good stones.

          One can believe in oneself when one sees that the thing one is selling is good.

          Now, if people like paste, and it pleases them and since they ask for it, good,

          one can have it in the store,

          but it isn't enough to make one feel good about oneself with the good paintings,

          yet one can feel oneself and be firm,

          since it is a pure error that there is as much as one wants.

          Perhaps I am expressing myself badly,

          but I have thought about this a good deal these days,

          and calm has come to me about this Gauguin affair.

          All these Gauguins are good stones, and so let us boldly be merchants of Gauguin.

          Milliet says a good hello.

          I now have his portrait with a red kepi on emerald background,

          and in the background the arms of his regiment, the crescent and a 5-pointed star.

          A good handshake and until next time and many thanks and I hope that the pains will not last long.

          Have you seen a doctor again[?] Look after yourself, because physical pain is so agonising.

          Ever yours,

 

          Vincent

          Editor's note :

          For many years this letter was considered as having a different ending.

          The recent re-emergence of the sketch of Vincent's house from obscurity revealed that

          he had finished his letter on the reverse side of it.

          The final four pages have been restored to their rightful place as the end of letter 541a At this time,

          Vincent was 35 year old

 

 

 
 
출처 : 사오십대 쉼터
글쓴이 : 신귀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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