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탐방열차’ 타고 떠나는 겨울여행
설레는 가슴들을 실은 백두대간 탐방열차가 기적소리를 울리며 서울역을 출발한다.
불을 환하게 밝힌 고층빌딩 사이를 달리던 기차가 경기도 남양주에서 북한강철교를 건넌다.
차창 밖은 짙은 어둠의 연속이다.
추억을 찾아 나선 연인들이 김 서린 차창을 편지지 삼아 밀어를 나누는 사이 기차는 양평,
강원도 원주, 충북 제천과 단양을 지나 소백산의 죽령터널로 빨려든다.
그리고 연인들이 설핏 단꿈에 젖은 사이 영월, 정선, 태백, 동해를 달려 정동진역에서
거친 호흡을 멈춘다.
강릉 정동진역은 바다와 가장 가까운 간이역으로 플랫폼에서 한걸음만 내디디면 파도가
밀려오는 모래사장이 펼쳐진다.
정동진(正東津)은 서울 광화문에서 정 동쪽에 위치한 나루터가 있는 마을이란 뜻.
인근의 탄광이 폐광되면서 폐역 위기에 처했던 정동진역은 1995년 드라마 ‘모래시계’로
단숨에 스타 간이역으로 부상했다.
당국의 수배를 피해 외딴 어촌에서 숨어살던 혜린(고현정 분)은 경찰의 추격을 피해
정동진역의 작은 소나무 아래에서 초조하게 기차를 기다린다.
멀리 기적이 울리고 역내로 서서히 기차가 들어오지만 경찰이 한발 먼저 들이닥친다.
기차는 그냥 출발하고 혜린은 손목에 수갑이 채워진 채 안타까운 눈빛으로 기차를 바라본다.
‘모래시계’를 대표하는 이 명장면으로 인해 작고 볼품없는 소나무는 명물로 부상했다.
‘고현정 소나무’로 불리던 해송은 고현정이 결혼을 하면서 ‘모래시계 소나무’로 이름이
바뀌었다. 18년 세월이 흐르면서 어린아이 팔목처럼 가냘프던 소나무는 어느새 어른
허벅지만큼 굵어져 정동진역을 찾는 연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정동진은 동해안 최고의 해돋이 명소로 해변 남쪽의 갯바위 지대가 감상 포인트.
겨울철에는 정동항 방파제에 설치한 범선 조형물 뒤에서 해가 솟는다.
수평선에서 오메가를 그리며 불끈 솟은 정동진의 태양은 남성적이다.
그러나 수평선을 수놓은 구름을 오렌지색으로 채색하는 태양은 혜린의 눈빛처럼
서정적이다. 해돋이를 전후해 관광객들이 날려 보내는 풍등은 한 폭의 그림. 하트
모양의 풍등이 연인들의 소망을 싣고 하늘 높이 올라가면 백두대간 탐방열차가
기적을 울린다.
정동진역을 출발한 백두대간 탐방열차는 해안선을 따라 달리다 삼척에서 느릿느릿
오십천을 거슬러 올라 도계역에서 잠시 호흡을 고른다. 삼척 도계역에서 태백
통리역까지 17㎞는 기차가 가파른 고갯길을 오르내리는 스위치백(switchback)
철도 구간으로 유명한 곳이다.
스위치백은 기차가 급경사 구간을 달리도록 지그재그 형태로 놓인 대표적인
산악철도. 양쪽에 상부역과 하부역이 있고, 그 사이를 기차가 전진과 후진을 반복해
올라가거나 내려간다. 그러나 지난해 6월에 태백 동백산역과 삼척 도계역을 나선형으로
연결하는 16.2㎞ 길이의 솔안터널이 완공되면서 스위치백은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블랙홀을 연상시키는 솔안터널을 통과한 백두대간 탐방열차는 태백의 철암역에서
원시의 낙동강을 만난다. 철암은 요즘도 무연탄이 생산되는 탄광촌으로 산더미처럼 쌓인
검은 탄가루와 하얗게 쌓인 눈이 흑백의 대비를 이룬다.
철암에서 석계를 거쳐 승부까지는 원시의 낙동강이 흐르는 협곡지역으로 비경의 연속.
경북 봉화의 승부는 태백산 자락인 비룡산과 오미산 등 해발 1000m가 넘는 산들에 둘러
싸인 육지 속의 섬마을이다.
아직도 나무로 군불을 때고 밥을 짓는 오지로, 마을 앞에는 투구처럼 생긴 투구봉이 걸개
그림처럼 걸려있다. 승부리 주민들은 대부분 화전민의 후손. 그들은 손바닥만한 밭에서
옥수수와 한약재를 재배하며 학처럼 살아간다.
첩첩산중 산골역인 승부역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10여 년 전 눈꽃열차가 운행되면서부터.
승부역을 찾는 겨울 나그네들을 위해 눈꽃차가 한두 차례 한시적으로 정차하는 것을 제외
하곤 하루 몇 차례 왕래하는 무궁화호가 바깥세상을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였다.
지금은 석포에서 승부까지 도로가 개설됐지만 옛날에는 주민들이 외지로 나가려면 유일한
교통수단인 철도를 이용해야 했다.
승부역이 시(詩)나 기행문의 단골 소재로 유명해진 것은 ‘승부역은/ 하늘도 세 평이요
/ 꽃밭도 세 평이나/ 영동의 심장이요/ 수송의 동백이다’라는 짧은 시구 때문.
1962년 승부역에서 근무했던 역무원 김찬빈씨가 역사 옆 화단 바위벽에 흰 페인트로
한 편의 시를 써놓았다.
험준한 산에 둘러싸인 승부역에서 숨통을 틔워주는 것은 하늘뿐.
그러나 이곳에서는 그 하늘마저 손바닥으로 가릴 정도로 앙증맞게 작다.
승부역과 터널 사이에 위치한 역마을 동구에는 ‘영암선 개통비’가 우뚝 서 있다.
1955년 12월 개통한 영암선은 강원도의 석탄을 수송하기 위해 영주에서 철암까지
87㎞ 구간에 33개의 터널과 55개의 교량을 세운 그 시절 최대의 역사. 순수 우리
기술로 건설한 영암선 구간 중 가장 힘들었던 승부역에 이승만 대통령의 친필을 받아
개통비를 세웠다.
승부역에서 한 시간 정도 휴식을 취한 기차는 영동선 분천 임기 녹동 춘양 법전 등
간이역을 숨 가쁘게 달려 영주역에서 정차한다.
경북 영주는 산세가 웅장하면서도 부드러워 ‘어머니의 산’으로 불리는 소백산을
품은 고장. 산과 마을은 겨우내 쌓인 눈으로 설국을 연출하고 있다.
영주역에서 버스로 갈아탄 승객들이 찾는 곳은 소수서원, 선비촌. 부석사. 풍기인삼
시장 등. 풍기인삼시장에서 영주 사람들의 넉넉한 인심을 맛본 겨울 나그네들을 태운
기차는 서울역을 향해 차가운 밤공기를 가로지른다.
그리고 나그네들을 떠나보낸 정동진역과 승부역, 그리고 영주역은 그리움과 외로움에
사무쳐 긴 겨울밤을 하얗게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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