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詩·書畵

조선 왕들의 친필

선바우1 2019. 12. 13. 17:22

 

 

조선 왕들의 친필


조선조 열성 어필12편(鮮朝 列聖御筆12編)



숙종대왕 어필(肅宗大王御筆)


使人長智英如學:지혜를 기름은 배옴만한 것이 없고
若玉求文必待琢:구슬의 문채는 다듬기를 기다리는 법.
 經書奧旨干誰問:경서의 깊은 뜻을 누구에게 물으랴?
師傳宜親不厭數:스승을 친히하여 자주 물어야 한다네.
 

英祖大王御筆
 
 

익종대왕어필(翼宗大王御筆)
 
 

인조대왕어필(仁祖大王御筆)


千門中斷楚江開:천문산 끊긴 곳에 초강이 열리고
碧水東流至北廻:동으로 흐르는
푸를 물은 북쪽에서 돌아 흐르네.
兩岸靑山相對出:양 언덕의 청산이 마주하여 솟았네
孤帆一片日邊來:한 조각 외론 배가 태양가로 나오네.
 

정조대왕어필(正祖大王御筆)
 
 

현종대왕어필(顯宗大王御筆)


晩日催絃管:저물녘에 음악을 재촉하니
       春風人綺羅:붐바람이 비단장막에 들어오네.
  杏花如有意:살구 꽃잎 마치 정이 있는듯
偏落舞衫多:춤추는 소매에 많이 지네.
 

효종대왕어필(孝宗大王御筆)
 
 

경종대왕어필(景宗大王御筆)
 
 

문종대왕어필(文宗大王御筆)
 
 

선조대왕어필(宣祖大王御筆)
 

夭桃一孕花:온 가지에 곱게 핀 복사꽃이
變幻三二色:두세 가지 빛갈로 변환했네.
植物尙如玆:식물도 오히려 이와 같아니
人情宜反覆:인정이 번복함은 마땅하구나.
 

성종대왕어필(成宗大王御筆)


   遠上寒山石徑斜:멀리 가을 산을 오르니 돌길이 비껴 있고
白雲深處有人家:흰 구름 깊은 곳에 인가가 있구나.
停車坐愛楓林晩:저녁의 단풍 숲이 아름다우 수래를 멈추니
 霜葉紅於二月花:서리 맞은 잎새는 봄 꽃보다 붉구나.


세조대왕어필(世祖大王御筆)

 

                   

정조 어렸을 때 쓴 언문(한글) 편지 

 

  

이 아이는 커서 이렇게 됩니다....

  

정조 <국화도>



      철종대왕 어필        

 

          

철종어필

                         

'강화도령'이라고 칭하는 제25대 철종 임금님은 본명이 이원범이다.

아버지는 영조 들 사도세자의 서자인 은언군으로 강화도에 유배되어

모함으로 사약을 받으셨다.

1831년 서울에서 태어나 14세 되던 해에 강화도로 내려오셔서 19세 되던 해인

1849년 6월 6일 영의정 정원용이 내려와  한양으로 모셔간 후 정순왕후에 의해 

순조의 양아들이 되어 6월 8일 덕완군으로 봉해진후 6월 9일 철종 임금님으로

창덕궁 인정문에서 별안간 즉위하신 것이다.

부인은 김문구의 딸 철인왕후이다.

그러나 강화도에서 양순이라는 처자를 좋아했던 임금님은 늘 강화도의

밴뎅이와 새우젓, 순무 등을 가져다 드시며 양순이를 그리워 했다.

세도와 궁중의 자유롭지 못한 생활로 여변에 빠져 33세 되던 해인

1863년 12월 8일 승하하였다. 능은 고양시 예릉이다.

안동 김씨 세도정치를 벗어나지 못하고 민란을 잡고자 동학 교주

최제우를 처형하는 노력을 하셨다.

8명의 왕비와 혈육으로는 5명의 왕자(모두 서거했음), 옹주 한 분이 계셨고 

박영효에게 출가하였다.

그러나 철종에 이어 12세 고종이 세도가에 의해 즉위하였다.

강화도 주민을 위한 특별한 과거도 시행하셨고 순무와 벤뎅이,

새우젓을 가져다 드시곤 하였다.

이에 강화도 주민들은 늘 강화 도령 철종 임금님 이야기를 하면서

그리워 했다.이에 이런 역사적 배경이 있는 '강화도령'이라는 표장을

특허청에 출원하여 상표와 서비스표를 등록 받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