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산송림사 (八公山松林寺)
소재지 : 경상북도 칠곡군 동명면 구덕리 96-1
신라 진흥왕 때 진(陳)의 사신 유사(劉使)가 중국 유학승인 명관대사(明觀大師)와 함께 신라에 오면서
불경 2,700권과 불사리(佛舍利)를 가져왔는데, 이후 불사리를 봉안하기 위하여 창건한 사찰이다.
1092년(선종 9)에 대각국사 의천이 중창하고, 1243년(고종 30)에 몽고의 침략으로 가람이 소실되었다.
임진왜란 이후 송림사 재건은 1649년 대웅전 중창이 이루어진 뒤, 1655년 극락전 석불상 조성,
1657년 대웅전 소 삼존불상 조성, 1665년 삼장보살상과 시왕상 조성, 1686년 기성대사의 중창,
1755년 대웅전 중수, 1830년 건물 조성, 1850년 대웅전 중수 등이 이루어진 사실을
알 수 있지만, 임진왜란 이전의 역사는 불명확하다. 1858년에 영구가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99년 6월 4일에 요사채와 응진각, 수각 탑보호 봉향각, 산신각, 배전, 화장실이 증축되었다.
대웅전 앞의 5층전탑은 보물 제189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1959년 탑을 해체,
수리할 때 많은 유물이 발견되었다.
소나무 숲에서 절이 솟아낫다는 전설을 간직한 松林寺(송림사)
1597년(선조30)의 정유재란 때 왜군에 의해 다시 소실된 것을 숙종12년(1686)에
箕城(기성)대사가 대웅전과 명부전을 중창하였는데 숙종이 '大雄殿(대웅전)'
현판을 직접 써서 절에 내렸다한다.
5층 塼塔(전탑)
대웅전 앞에 서있는 5층 塼塔(전탑)은 흙으로 구운 벽돌을 이용해 쌓아 올렸다.
탑을 받치는 基壇(기단)은 벽돌이 아닌 화강암을 이용하여 1단으로 마련하였으며,
기단의 4면에는 각 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조각하였다.
塔身(탑신)은 모두 벽돌로 쌓아올렸다.
기단의 각 面石(면석)에는 隅柱(우주)와 5개의 撑柱(탱주)를 모각하고,
그 위로 甲石(갑석)을 덮은 후 중앙에 1단의 화강암으로 탑신받침을 마련했는데
이것은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의 수법과 같다.
후대에 여러 차례 보수한 것으로 짐작된다.
1959년 이 오층전탑을 해체 복원할 때 사리장엄구에서 불지사리 4과가 발견되기도 했었다,
대웅전
응진전
冥府展(명부전)
범종루
송림사는 조선 세종때에는 교종, 선종 36사중 하나에 포함된 큰 사찰이었으나
조선후기에 팔공산 동화사가 창건되면서 지금은 동화사 말사로 지정되었다
삼천불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