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순례

扶安 開岩寺

선바우1 2018. 1. 30. 16:38



扶安 開岩寺


대웅보전(보물 제292호)


개암사는 634년(무왕 35) 백제의 왕사 묘련이 창건한 고찰이다.

사찰 이름을 ‘개암(開巖)’이라 부르게 된 배경은 뒷산 정상의 웅장한

 ‘우금바위(또는 우금암)’의 전설과 관련된 것으로 여겨진다.

 

즉 마한의 효왕 28년에 변한 문왕이 진한과 마한의 난을 피해 이곳에 도성을 쌓을 때,

우(禹)와 진(陳)의 두 장사를 보내어 감독하게 하고 좌우 계곡에 왕궁전각을 짓게 했는데,

동쪽을 묘암(妙巖), 서쪽을 개암(開巖)이라 부른데서 비롯됐다.


삼국통일 후에는 원효 스님, 의상 스님이 우금바위아래 우금굴서 정진하며

암자를 중수했는데 지금도 원효방으로 불린다.

 진표율사가 개암사 부속암자인 ‘부사의방장(不思議方丈)’서 참선 득도한 기록도 있다.

 

진표율사는 개암사에서 전수한 이래 불가에서 민간요법으로 전수돼 오는

개암죽염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백제무왕 16년(676)년에 원효와 의상대사가 이곳에 와 머물면서

고려 때는 원감국사가 황금전을 중심으로 해 동쪽에는 청련각, 남쪽에는 청허루,

북쪽에는 팔상전, 서쪽에는 응진당과 명부전을 지었으며, 총 30여 동의 건물을 세워

<능가경>을 강의하면서 많은 사람을 교화해 이곳 산의 이름을 ‘능가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러나 고려 말 조선 초를 거치면서 서해안에 왜구들로 인하여

다시 폐허가 되었으며 조선태종14년 1414년에 선탄스님에 의하여 중수되었으며 
인조 15년 1636년 계호대사가


대법당을 중건한 후 약 370년에 걸쳐 절 안의

많은 건물과 주변암자를 정비하여 대 가람의 면모를 갖추었으나

이때 중창된 전각 중 현존하는 것은 대웅보전뿐이다.




바위 모습이 멀리서 보면 크게 둘로 이루어진 듯해 ‘바위가 열린 상태’라는 의미에서

 ‘개암’이라 칭했다는 구전도 있다.









지장전


관음전




산신각




대웅전의 내부에는 두 개의 고주를 세워 후불벽을 형성했다.

통례와 같이 측면 평주 보다 고주를 뒤로 물려 배치하고 충량이 대량에 걸치도록 하였다.

그 위에 세 단의 층급천장을 구성함으로써 내부 공간은 실제보다 높게 느껴지는데

이 공간을 용과 봉황으로 가득 꾸미고 있다.

특히 전면 주간포와 귀포 그리고 두 개의 충량에서 뻗어 나온 9개의 용두는 강렬하게

불단을 장엄하고 있으며, 주간포에는 용두와 어우러져 날개를 활짝 핀 봉황을 배치하고 있다.

불단에는 석가삼존불을 봉안하였고 상부에는 닫집을 설치했다.

닫집은 정자형의 물림닫집으로 정면 처마 위에 박공면을 가진 특수한 형태이다.

그 속에는 세 마리의 번용(飜龍)이 또아리를 틀고 매달려 있으며 공중에는 구름과 여의주를 장식하였다.

이처럼 이 건물은 안팎을 연꽃, 용, 봉황 등 불교적 상징물로 가득 장식하여

부처님이 주재하는 불국토를 상징하고 있다.




영산회 괘불탱(보뭉 제1269호)


석가가 영축산에서 설법하는 장면을 그린 영산회괘불탱으로, 괘불이란 절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행하기 위해 법당 앞 뜰에 걸어놓고 예배를 드리는 대형 불교그림을 말한다.

괘불에서 많이 그려지는 영산회상도는 석가가 설법하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이다.

 
길이 14m, 폭 9m의 이 괘불은 석가를 중심으로 좌우에 문수·보현보살이 서 있고

뒷쪽에는 다보여래, 아미타여래, 관음보살, 세지보살이 있으며, 앉아 있는 2구의 작은 불상도 보인다.

석가는 머리끝에서 다섯 줄기의 빛이 나며 오른쪽 어깨가 드러난 우견편단의 옷을 걸치고 서 있는 모습이다.

각 상들의 얼굴 형태와 어깨는 각지게 표현하여 경직되어 보이며, 눈썹은 처지게 처리했고

선은 매우 정밀하고 세련되어 강한 인상을 준다. 채색은 주로 붉은색과 녹색에 금색을

사용하였고 군청색을 넣어 색채 대비도 보여주고 있다.
조선 영조 25년(1749) 승려화가 의겸이 참여한 그림으로 화면을 꽉 채운 구도와 경직된 형태,

강렬한 색채 등으로 18세기 중엽의 양식적 특징을 보여주는 뛰어난 작품이며,

제작연대도 확실하여 우리나라 불교회화 연구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개암사 괘불탱의 밑그림도 남아 있는데, 현재 밝혀진 유일한 것으로 당시 괘불화의

 제작과정과 필치 등을 파악하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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