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래인 정행과 안동 송천동 모감주나무
안동시(예천 일부를 포함)가 다른 시군과의 치열한 경쟁 끝에
경상북도 도청을 유치했다.
뒷이야기로 문화재가 다른 시군에 비해 많았던 것도 평가에 보탬이
되었다고 한다. 이에 누군가 이의를 제기했으나 다시 조사해보아도
역시 안동이 더 많았다고 한다.
역사성이 있는 오래된 나무가 당국의 충분한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꾸준히 지적해 온 필자로서는 복음(?)과 같은 이야기로 들렸다.
이런 점에서 안동시 송천동의 모감주나무는 안동시의 문화재 행정이
다른 시군보다 우수함을 나타내는 증표이기도 하다.
이 나무는 1651년(효종 2) 석문 정영방의 둘째 아들 정행(1604~1670)이
심었다고 하니 지금부터 360여년 전의 일이다.
석문 정영방(1577~1650)은 조선 중기 성리학자다.
윤선도(1587~1617)의 ‘보길도원림’(명승 제34호), 양산보(1503~1557)의
‘소쇄원’(명승제40호)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민가(民家) 정원의 하나로
꼽히는 영양 서석지(瑞石池`중요민속문화재 제108호)를 조성한 탁월한
조경가이기도 하다.
공은 본관이 동래로 1577년(선조 10) 예천 용궁현 포내(현 풍양면 우망리)
에서 태어났다.
우복 정경세로부터 학문을 배워 1605년(선조 38) 진사시에 합격했다.
학문이 깊고, 인격이 훌륭한 공을 아깝게 여긴 우복이 벼슬길에 나아
가기를 권했다. 그러나 당파로 싸움이 끊이지 않는 정국(政局)을 보면서
초야에 묻혀 살기를 원했다고 한다.
병자호란으로 나라가 다시 시끄러워지자 아예 세상과 담을 쌓기 위해
영양군 입암으로 거처를 옮겨 넷째 아들 제와 함께 지내며 경정(敬亭)을
짓고, 연못을 파서 상서로운 돌이 가득한 곳이라는 뜻에서 서석지라
이름을 붙였다. 공은 그곳에서 자연을 벗 삼아 소요하며 학문을 연마
했으며 매(梅), 국(菊), 죽(竹)과 함께 소나무를 사우(四友)라 좋아했고,
특히 모감주나무를 사랑했던 것 같다.
이런 점에서 석문은 모감주나무의 조경적 가치를 우리나라에서 맨 처음
으로 인정한 분이 된다.
영양으로 옮겨 살기 전 안동 송천에서 읍취정을 짓고 살았는데 둘째 아들
행은 효성으로 아버지를 모셨고 1650년(효종 1) 만년에 다시 돌아와 살 때
에도 또한 같았다. 그러나 천명은 어쩔 수 없어 74세로 이승을 마감했다.
이듬해 행이 아버지가 살았던 영양 자양산을 찾아가 평소 아버지가 좋아
했던 나무를 가지고 와서 심은 것이 지금의 모감주나무(경북도 기념물
제50호)다. 이런 정황을 볼 때 이 나무를 문화재로 지정할 수 있는 기회는
영양군이 더 많았다. 그러나 자생하고 있는 사실을 몰랐거나 설령 알았
더라도 그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 안동시가 문화재로
지정하여 오늘에 이른다.
자기 지역에 무엇이 있고, 어느 것이 가치가 있는지 일일이 찾아내
그것이 단지 나무 한 그루라고 하더라도 문화재로 지정하는 이런 공무원
들의 노력이 쌓여 결과적으로 안동시가 도청을 유치할 수 있었다고 본다.
문화재가 많다는 것은 지역의 품격이 그만큼 높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입증하는 지표가 된다.
모감주나무가 있는 곳은 안동에서 영양으로 가는 국도변 반변천이
휘돌아나가는 선어대(仙魚臺) 부근이다.
뿌리 부분이 돌 위에 일부 노출되어 생육환경이 좋지 못하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때 신작로를 내면서 밀어버리지 않은 것은 정말
큰 다행이다. 정행의 효심이 만들어 낸 기적이 아닌가 한다.
모감주나무는 중국이 원산지로 알려진 세계적인 희귀종이다.
특히 꽃이 귀한 6월 하순에 황금색 꽃이 피고, 단풍도 비교적 아름
답기 때문에 최근 조경수로 많이 심고 있다.
열매로 염주를 만들어 일명 염주나무라고도 한다.
충청남도 태안군 안면도 방포리 해수욕장 부근에서 자생지가
확인된 것에 대해 ‘중국에서 떨어진 열매가 해류를 타고 서해를
건너와 싹이 튼 것’으로 추정했다.
1962년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천연기념물(제138호)로 지정되었다.
그런데 안동의 모감주나무가 360여 년 전 내륙 깊숙한 영양 자양산에
자생했다는 사실은 놀라운 사건(?)이다.
대구 내곡동의 자생지는 1990년 대구시기념물 제8호로,
포항시 동해면 발산리는 1992년 천연기념물 제371호로, 전남 완도군
군외면은 2001년 천연기념물 제428호로 지정되는 등 정부가
보호에 앞장서고 있다.
최근 달성의 화원동산, 검단동의 왕옥산, 고산의 천을산,
경북 영천시 금호강 유역에도 군락이 발견되어 원산지에 우리나라가
포함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정행의 수식(樹植) 사실이 일찍 알려졌으면 우리나라 식물학계에
귀중한 자료가 되었을 것인데 그렇지 못해 아쉽다.
대구생명의 숲 운영위원(ljw167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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