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말씀

생과 훌륭하게 타협하는 방법

선바우1 2021. 7. 11. 22:21

 

생과 훌륭하게 타협하는 방법




우리들은 가끔 이 세계가 부정으로 가득 차 있는 것처럼 
생각이 되어 좌절감을 느끼게 되는 일이 종종있다. 
부정이 너무나도 사회에 만연되어 있어 우리들의 
가는 길을 가로막고 있는 걸로 생각되는 경우이다. 

 
그러므로 부정에 대항해 싸우기보다는 타협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하고 느껴질 때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너무나 지쳐 있다면 
조금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보라 부정에 대하여 
싸우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의 일을 해보는 것이다. 

 
이것을 질병에 비유해 보자. 
큰 병에 대항해 투병을한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열이 나서 약을 먹으면
또 그 약의 부작용이 일어 날지도 모른다.

 
그럴 경우 또 약을 먹는다. 
그러나 사후약방문을 하기보다는 미연에 
건강을 강화시키는 것이 좋다.

 
운동 균형 있는 식사 규칙적인 생활 등이 
인간을 건강하게 만든다. 
건강을 강화시킴으로써 어떤 병에 걸리더라도 
그 병을 이길 수 있다.


요컨대 생사의 갈림길에서 삶 쪽을 강화하면 죽음은 
그만큼 약화된다는 뜻이다. 이것은 질병에 대해 
치료를하는 것과 같이 죽음과 직접 싸울 것이 아니라 
생과훌륭하게 협력하라는 것이다.

 
생과 생의 사이에도 같은 관계가 성립된다. 
자신이올바른 생활을 함으로서 세상의 
부정을 이겨 낼 수가있다.

 
다른 사람이 부정을 저지르는 데 대해서 
공박을 하는 것도 하나의 수단이다. 

 
그러나 자신이 올바르게 처신하고 
정당한 생활을 하는것이 보다 더 그만큼 세상으로부터 
부정을 몰아내는 결과를 가져 올 수가 있다.


<탈무드>는 이렇게 비유하고 있다.


누군가가 촛불을 들고 있으리라 생각하고 
어두운 방 안에 들어갔는데
어느 한 사람도 촛불을 들고 있지 않았다. 
어두운 방일지라도 한 사람이 하나씩 촛불을 들고 있다면 
방 안은 대낮처럼 환하게 될것이다. 
좋은 것은 나누어 가지면 좋지만 
자기의 책임은 나누어 갖지 말라. 


또 고대 랍비는 이렇게 경계하고 있다. 

 
어떤 일을 환경이나 다른 요인으로 책임을 
전가시키려 할지라도 
언제나 자신은 그곳에 남는다.

 
그런데도 타인의 탓으로 돌리려고 하는 것은 
이기심의 발로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이기심이 개입되어 있는 자체가 자신이 
분명하게 존재하고 있다고 하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결국 세계의 중심에 자신이 있는 것이다. 

 
자신을 완전히 없앨 수가 있다고 한다면 자신의 
책임을 없앨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자신이 있는 한 50퍼센트는 환경의 탓으로 
돌릴 수 있다고 하더라도 나머지
50퍼센트는 항상 자신에게 책임이 주어진다. 

 
자신으로부터 도망칠 수는 없다. 
타인으로부터 자신을감추려고 하는 것은 쉽지만, 
자신의 양심으로부터 도망칠 수는 없는 
것이 하나님이 주신 인간이다.



- 탈무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