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로 2가에 있었다. 일본 정부로부터 거액의 융자를 받아서 한국의 토지를 손에 넣었다.
토지조사사업이 끝났을 무렵에는 7만8천정보 이상의 토지를 소유하여 한국 최대의 지주가 되었다.
東拓의 소작료는 일반 민간보다 상당히 고율이었을 뿐 아니라, 수탈 방법도 악랄하였으므로,
한국인들의 東拓에 대한 원한이 매우 깊었다. 현 을지로쪽 명동 입구
근대주의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양식이다.
퇴락하였으므로 이를 헐어버리고 홍예(虹霓)만 남겨 두었는데, 일제는 혜화동과 돈암동 사이의 전차길을 내면서 이마저 헐어버려 그 형태도 찾을 수 없도록 만들었다. 당시 北門(북대문)은 일반인의 통행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이 문은 양주·포천 방면으로 통하는 중요한 출입구 구실을 하였다.
출처 : 당신이 머문자리는 아름답습니다
글쓴이 : 커피 사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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