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말씀

사람들의 기억에 어떤 모습으로 남을 것인가

선바우1 2018. 6. 20. 21:36






사람들의 기억에 어떤 모습으로 남을 것인가


 


面前的田地 要放得寬 使人無不平之歎
면전적전지 요방득관 사인무불평지탄

身後的惠澤 要流得久 使人有不櫃之思
신후적혜택 요류득구 사인유불궤지사
 
살아서의 마음은 활짝 열어 너그럽게 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불평의 탄식이 없게 하고,

죽은 후의 혜택은 오래도록 전하게 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만족하게 여기도록 하라.



菜根譚
  

[해설]
                   
너그럽다는 말은 자칫
뼈대가 없다는 말로 오해하기 쉽다.

부정(不正) 불의(不義)를 보고도
모르는 체하는 것이
너그러움이 아님은 분명하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는
가급적 관용하는 마음으로

남들과 대인관계를 맺어
상대방이 불만의 마음을 가지지 않도록 하고

세상을 떠난 후에도
가급적 많은 은혜를 남겨서

많은 사람들에게 만족감을 주어야 한다는
이타적(利他的)인 철학이다.


아낌없이 나누어 주어야 하는 것은
물질적인 재화만이 아니다.

지식도, 기술도 그리고
경험도 선선히 가르쳐 주는 것이

남이 보기에도 좋은 일이며
자기 자신의 진보와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


요컨대 사랑을 나누어 주는 마음가짐이
이런 이타적 생활을 영위하는 근원이 된다.

조선 중종(中宗) 때
영의정(領議政)을 지낸 정광필(鄭光弼)은
성품이 너그럽기로 유명하였다.


한번은 암행어사가 되어
진도 군수(珍島郡守)의 부정을 적발하기 위해
그곳으로 향했다.

그런데 벽파정(碧波亭)이란 곳에 이르자
아직 해가 많이 남았는데도 곧바로
동헌(東軒)으로 들지 않고

여관에서 하룻밤 자고 내일 출도하겠다고
아랫사람에게 분부하는 것이었다.


이튿날, 그 군수는 탐욕스러움이 밝혀져
봉고파직(封庫罷職)되었으나

별로 억울해 하는 기색이 없이 오히려
어사의 처분을 고맙게 여기는 눈치였다.

한 사람이 정광필에게 물었다.


"어제 곧바로 출도했으면 군수의 죄가
이렇게 가볍게 되지는 않았을 것 아닙니까?"

그러자 정광필은 빙그시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바로 그것을 바랐던 것이다.


저 무식한 무인(武人)이 목민(牧民)하는 도리를 몰라
탐욕을 마음껏 부렸으니

실제대로 하면 어찌 죽음을 면하겠는가?
그래서 짐짓 하룻밤을 묵으면서
여유를 준 것이다."


그 군수는 어사가 나타났다는
주막집 주인의 보고를 받고
그날 밤 부랴부랴 장부를 맞추었던 것이다.

법만을 지켜 죽이기 보다는
개과천선의 길을 열어주는 것이
낫다는 판단에서였다.

이런 정광필이지만
결코 줏대 없는 재상은 아니었다.


연산군(燕山君) 때 일이다.
황음무도(荒淫無道)한 임금의 잘못을 간(諫)하다가
마침내 노여움을 사고 말았다.

"전하의 행동은 나라를 망치고 말 것입니다."


자신을 망국의 임금에게 비유하자
연산군은 손수 칼을 뽑으면서 무사에게,

칼을 다 뽑거든
정광필의 목을 치라고 명하였다.


그러나 정광필은 조금도
얼굴색을 변하지 않고 여전히
임금의 잘못을 간하니,

흉폭한 연산군도 마침내
어쩔 수 없음을 알고는 그만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