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詩·書畵

諸葛亮 誡子書

선바우1 2018. 7. 12. 23:01







諸葛亮 誡子書

(제갈량 계자서)


君子之行(군자지행)

군자의 조행(操行)이란


靜以修身(정이수신)

고요한 마음으로 몸을 닦고


儉以養德(검이양덕)

검소함으로써 덕을 기르는 것이다.


非澹泊無以明志(비담박무이명지)

마음에 욕심이 없어 담박하지 않으면

뜻을 밝힐 수 없고,


非寧靜無以致遠(비녕정무이치원)

마음이 안정되어 있지 않으면

원대한 이상을 이룰 수 없다.

 

夫學須靜也(부학수정야)

배울 때는 반드시 마음이 안정되어

있어야 하며,


才須學也(재수학야)

재능은 반드시 배움을 필요로 한다.


非學無以廣才(비학무이광재)

배우지 않으면 재능을 발전시킬 수 없고


非靜無以成學(비정무이성학)

마음이 고요하지 않으면

학문을 성취할 수 없다


慆慢則不能硏精(도만칙불능연정)

마음이 방자하고 오만하면 정밀하고 미묘한

이치를 깊이 연구할 수 없고


險躁則不能理性(험조칙불능이성)

조급하고 경망하면 자신의 본성을

제대로 다스릴 수 없다.


年與時馳(년여시치)

이치를 제대로 밝히지 못하고 본성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는 사이에


志與歲去(지여세거)

나이는 시간과 함께 달려가고 의지는

세월과 함께 사라지면서 마침내


遂成枯落(수성고락)

가을날 초목처럼 시들어 갈 것이다.


悲嘆窮廬(비탄궁려)

그때 가서 곤궁한 오두막집에서 슬퍼하고


將復何及也(장부하급야)

탄식해 본들 어찌 할 것인가?


오늘날 중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고사성어 가운데 ‘담박(澹泊)’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자식을 올바르게 훈육하기 위한 선인들의 가르침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지침서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어 오고 있는 ‘계자서

(誡子書)’라는 글에서 유래되었다.

 

계자서는 삼국시대의 명 재상이요 정치가로 알려진 제갈량(諸葛亮)이

54세가 되던 해에 8살 된 아들을 가르치기 위해 지은 글이다.


제갈량은 계자서에서 “무릇 군자(君子)는 고요함으로 자신을 수양하고,

검소함으로 덕(德)을 키운다. 담박하지 않으면 뜻을 밝힐 수 없고 고요하지

않으면 먼 곳에 이르지 못한다(非淡泊無以明志 非寧靜無以致遠…)”고

가르치고 있다. 즉, 담박(澹泊)과 영정(寧靜)을 강조한 것이다.

 

‘담박’이란 깨끗하고 고요함을 유지해 스스로 담담함을 이루는 경지를

뜻하고, ‘영정’ 또한 마음에 선입견을 두지 않아 평온함을 유지하는 상태를

이르는 말이다. ‘담박’이라는 말은 바로 이 글에서 비롯되어 오늘날

중국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고사성어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다.

 

성인으로 추앙 받고 있는 공자도 아들 공리(孔鯉)를 가르치는데 온갖

정성을 기울였다. 가끔 공자는 아버지를 만날 새라 고개를 숙이고 종종

걸음으로 뜰을 지나던 아들을 불러 세우곤 했다. 그리고는 으레 두

가지를 물었다. “시(詩)는 제대로 익혔느냐”, “예(禮)는 잘 배웠느냐”였다.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두 가지를 꼭 배워 익혀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때마다 공리는 말끝을 흐리며 진땀을 흘리곤 했다.

당연히 공리에게는 힘겨운 시간이었다.

 

공자는 이처럼 아들에게 세세한 가르침을 주지 않고, 그저 뜰을

지나는 아들을 불러 간접적으로 가르침을 주었을 뿐이다. 《논어(論語)》

〈계씨(季氏)〉편에 나오는 이야기로 부모가 정원에서 자식을 깨우친

다는 뜻의 ‘정훈(庭訓)’은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뜰을 지날 때의 가르침

이라 하여 과정지훈(過庭之訓) 또는 추정(趨庭)이라고도 한다.

 

중국 허베이성(河北省) 청더시(承德市)에는 ‘피서산장(避暑山莊)’

이라고 부르는 고색창연한 건물이 하나 있다. 청나라 황제 강희제

(康熙帝)가 1703년에 이 별궁을 짓기로 결정한 후, 옹정제(雍正帝)를

거쳐 건륭제(乾隆帝)에 이르기까지 건축을 시작한 지

무려 87년만인 1790년에 완성되었다.

 

이 건물은 더위를 피할 목적으로 지은 단순한 산장이 아니라 황제들이

여름 한 철 동안 집무하던 궁전으로 사용되었다. 황제는 이곳에서 각국의

사신들을 접견하거나 연회를 베푸는 등 주요 의식을 열었던 것이다.

 

연암 박지원이 쓴 ‘열하일기(熱河日記)’에도 이 피서산장이 등장한다.

정조 4년(1780)에 청나라 고종 건륭황제의 칠순연(七旬宴)에 축하사절

단의 일행으로 이곳에 와서 지역의 문인들과 사귀고 연경(燕京)의

명사들과 교유하면서 중국의 문물제도를 목격하고 견문한 바를 기록한

것이 바로 ‘열하일기’이다. 축하사절단은 바로 이곳에서 청나라 황제를

배알하고 예(禮)를 올렸던 것이다.

 

이 피서산장의 정전(正殿)은 담박경성전(澹泊敬誠殿)이다.

이 정전에는 강희제가 친히 ‘담박경성(澹泊敬誠)’이라고 쓴 편액이 걸려

있다. 담박경성(澹泊敬誠)이란 담백하고 검소하며 욕심 없이 백성을

공경하고 통치하라는 뜻이다. 강희제도 역시 제갈량의 계자서를 지침

으로 삼아 ‘담박명지’로 ‘영정치원’의 경지를 추구했던 것이다.

 

먼저 쌓은 경험과 지식을 후대에 제대로 전하는 일은 어느 누구에게나

모두 중요하다. 많은 문인과 관료, 심지어는 황제까지도 자식에게 좋은

가르침을 전하려고 노력했고 수많은 정훈(庭訓)을 남겼다. 마음

상태가 담담하지 않으면 뜻을 제대로 세울 수 없다. 외부의 선입견에

휘둘려 마음을 잡지 못하면 원대한 목표 또한 이룰 수 없는 것이다.

 

‘담박명지(淡泊明志)’ ‘영정치원(寧靜致遠)’이라는 네 글자의 성어는

바로 이런 뜻을 집약해 표현한 명구(名句)인 것이다. 오늘날 사무실에

이 글귀를 걸어놓고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사람이 많다.

 

겨울이 지나고 다시 봄이 찾아왔다. 방학이 끝나고 이제 학교도 새

학기 준비에 바쁜 시기가 된 것이다. 좋은 꽃과 열매를 맺기 위해 혼신의

힘을 쏟아야 할 우리 젊은이들에게 오늘날 주변 환경은 그리 만만하지

않다. 뿌리 깊은 나무처럼 중심을 잡아야 할 우리 젊은이들이 평정심을

잃고 이리저리 쉽게 흔들리고 있다.

 

바야흐로 만물이 생동하는 계절에 새 학기를 맞는 우리 젊은이들이

선인들의 가르침을 따라 담박(澹泊)과 영정(寧靜)을 마음에 담음으로써

자신의 원대한 꿈을 이룰 수 있는 바탕을 키우기를 간절히 바란다.



출처 :[春剛書畵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