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丹楓)
- 이장용(李藏用),紅樹
一葉初驚落夜聲 千林忽變向霜晴
일엽초경낙야성 천림홀변향상청
最憐照破靑嵐影 不覺催生白髮莖
최련조파청람영 불각최생백발경
廢苑瞞旴秋思苦 遙山唐突夕陽明
폐원만우추사고 요산당돌석양명
去年今日燕然路 記得屛風障裏行
거년금일연연로 기득병풍장리행
한 이파리 바스락 지는
밤 소리에 깜짝 놀라,
천산의 숲들 문득
서리 내린 갠 아침에 상기됐네.
가엾어라, 푸른 산 기운
비춰 깨뜨림이여 !
알지 못했네,
흰 머리 카락 재촉할 줄을 ..
거친 뜰 바라보는
가을 회포 쓸쓸한데,
먼 산에 부딪쳐 타는
눈부신 석양이여 !
기억도 새로워라.
지난 해 바로 오늘,
그 병풍 그림 속을 거닐던
연연(燕然)길이 ..
*
燕然 :
외몽고에 있는 산 이름.
*
마냥 여름인 양
느직이 누리던 푸른 잎들이
어느 깊은 밤
한 잎 바스락 떨어지는 첫소리에 깜짝 놀라,
일시에 가을임을 깨닫고는
천하의 잎들이 홀연 상기되어
서리 내린 아침 햇빛 아래
눈부신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숙살(肅殺)의 가을 !
단풍의 붉은 빛이 온 산의 푸른 기운을
무참히 비추어 깨뜨림을
가엾이 여기며,
황폐해진 정원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노라니,
광음의 신속함이 새삼 느껍고
어느새 부쩍 는 흰 머리카락을 의식하고는
씁쓸한 감회에 젖는다.
그러나 문득 머리를 드는 순간,
한 새로운 놀라움에 부딪친다.
대지에는 모음(暮陰)이
바닷물처럼 고이어
사방 산들은 이미
정수리까지 잠기었는데,
멀리 동편의
높은 산정(山頂) 하나가
아직 어둠의 수위(水位) 위로
섬처럼 돌출하여 ,
바야흐로 남은 석양을 독차지하여
눈부시게 불타고 있는 것이다.
보라 ,
석양과 단풍과의
당돌한 맞부딪침에서 발화(發火)한
저 맹렬한 불길은,
어둠에 잠긴 대지에 홀로
당돌하게 켜든 횃불의 아우성이다.
그 눈부신 광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문득 몽고 사신 길에 거쳤던
연연(燕然) 땅의
단풍 풍경..
그것은 공교롭게도
지난 해의 바로 오늘이었지마는..
연도(沿道)에는 가도 가도 찬란한
북국의 단풍 !
마치 둘러친 산수 병풍의 그림 속을 걷고 있는
화중(畵中)의 인물인 양,
화려한 착각에 도취되었던
그때의 기억들을 ,
저 - 遙山唐突夕陽明(요산당돌석양명)- 에서
점화(點火)되듯 기억해 내고는 ,
목전의 현실에다
환상의 당시를 겹포갠,
사차원의 시공 세계에서
스스로 황홀해 하고 있는 작자이다.
단풍을 주제로 하면서도 `단풍`은 물론 ,
그 `붉음`마저 한 자 언급이 없이,
그러면서도 `붉게 타고 있는 단풍`을
극명하게 그려내면서
시종 완곡하고 은근한 표현 묘사로
위세(委細)한 정곡(情曲)을 다하고 있다.
*
이장용(李藏用,1201~1272)
고려 때의 문신. 학자. 자 현보(顯甫).
중서시랑(中書侍郞) 등 역임.
본관 인주(仁州 - 仁川).
시호 문진(文眞).
원종(元宗)을 따라 몽고에 갔을 때
해동 현인으로 칭송받았다.
불서(佛書). 경사(經史).
의약 등에 정통했으며 문장에 능했다.
저서에 <선가종파도(禪家宗派圖)>
<화엄추동기(華嚴錐洞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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