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원이 55세가 되던 1845년, 이조 판서에서 물러난 7월 5일과 예조 판서에 제수된 8월 29일 사이에 지은 시이다. 그는 26세에 문과에 급제한 이후 관각, 시강원, 대각, 육조의 요직을 두루 거치며 중간에 큰 침체기 없이 관료 생활을 해 왔다. 그러다가 신병(身病)을 이유로 사직을 청하는 소장을 올려 잠시 관직에서 물러나 몸과 마음을 쉴 기회를 얻는다.
말 한 마디 발 한 걸음 사이에도 영욕(榮辱)이 교차하는 조정에서, 그것도 인사를 담당하는 요직 중의 요직인 이조의 장관(長官)을 맡으면서는 그야말로 매일매일이 긴장의 연속이었을 테고 하루하루가 격무의 시간이었을 게다. 이러한 그의 심정은 그가 사직을 청하며 올린 소장에 잘 드러나 있다. 요직을 맡은 수년 이래로 능력에 비해 과중한 직책을 맡은 탓에 두려움과 분주함 속에서 심신이 모두 지쳤으며, 특히 그해 여름의 무더위를 겪는 동안 설사와 식은땀 등의 증상을 얻어 더 이상 공직을 수행하기 어렵다는 내용이다.
분주히 보내는 시간 속에서 자신만의 세월을 잃어가고 있던 그에게 찾아온 자신과 자신 주변을 가만히 관조할 수 있는 여유는 그래서 더욱 소중했을 것이다. 계절의 흐름도 잊고 오로지 공무에만 몰두하다가 그 시공간을 떠나서 만난 섬돌의 국화와 밭의 토란에서 그는 어느덧 찾아온 가을의 한 조각 모습과 누구에게나 곁을 내어주는 대자연의 넉넉한 정취를 발견하게 된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눈에 들어오는 문자가 보기만 해도 지끈지끈해지는 공문서가 아니라 반갑고 아침저녁으로 오가는 곳이 생각만 해도 지긋지긋한 직장이 아니라 발걸음이 가볍기만 하다. 정원 한 쪽에 있는 네모난 못은 어떠한가. 서늘한 가을비가 가득 차서 열병처럼 쌓였던 스트레스를 시원하게 씻어버릴 만하다.
일과 사람 속에서 밥벌이를 하며 살아가는 지금 사람도 옛사람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생계를 위하여 어쩔 수 없이 생업에 종사해야 하기에 바쁜 일상 속에서 나의 세월이 점점 민멸되어 가고 있지만 우리는 한가한 때야말로 나의 시간이고 그 시간에서만이 내가 원하는 참다운 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마음속 한 자리에 옛 고향집 정원을 아직도 두고 그리워하며 사는지도 모른다. 당장은 가기 어렵지만 언젠가는 그곳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그렇지만 현실적인 한계 때문에 당장은 떠나지 못하니 어떻게 해야 할까?
언젠가 아주 오래 전 외숙부께서 하신 말씀이 있다. 마음에 정원 하나를 그려서 그곳에 나무도 심고 꽃도 심어 아름답게 가꾸라고 하셨다. 그것이 나의 마음을 아름답게 가꾸라는 말씀인 줄로 알고 어렴풋이 되뇌며 살았던 것 같다. 이제 그 말을 내가 여러분께 돌려드린다. 당신 마음에 정원 하나를 그려서 그곳에 나무도 심고 꽃도 심어 아름답게 가꾸시라는 말이다. 그래서 세상이, 사람이 당신을 힘들게 할 때 그곳에 잠시 머물며 나무와 꽃을 구경하고 그곳에 놀러온 벌이랑 나비와 함께 춤을 추시라. 그렇게 한다면 한때는 넉넉히 버틸 수 있는 힘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