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詩·書畵

내 마음속의 정원

선바우1 2019. 11. 21. 11:33

 

한시감상
2018년 9월 19일 (수)
백여든여덟 번째 이야기
내 마음속의 정원
   

전조(銓曹)의 직임을 벗고 한가하게 지내며
기쁨에 겨워 입으로 읊다[解銓任閑居喜甚口呼]

 

세월은 대부분 분주한 가운데서 민멸되나니
한가한 때야말로 나의 시간이로다
거친 섬돌의 국화엔 가을 풍경 남아 있고
해묵은 밭의 향긋한 토란엔 한가한 마음 넉넉하네
경서며 사적은 헤어졌던 벗처럼 반갑고
지팡이며 짚신은 둥지로 돌아오는 새처럼 가벼워라
네모난 못에 비 지난 뒤 맑은 물이 흥건하니
속세 시름 한번 씻어 가슴속을 깨끗이 해야지

 

歲月多從忙裡沈세월다종망리침
閑來方是我光陰한래방시아광음
荒階菊秀餘秋景황계국수여추경
老圃芋香饒野心로포우향요야심
書史欣如經別友서사흔여경별우
筇鞋輕似返巢禽공혜경사반소금
方塘雨過淸漪足방당우과청의족
一洗塵愁凈滿襟일세진수정만금

- 박영원(朴永元, 1791~1854), 『오서집(梧墅集)』 책3 「상견록(常見錄)」

   
해설

   박영원이 55세가 되던 1845년, 이조 판서에서 물러난 7월 5일과 예조 판서에 제수된 8월 29일 사이에 지은 시이다. 그는 26세에 문과에 급제한 이후 관각, 시강원, 대각, 육조의 요직을 두루 거치며 중간에 큰 침체기 없이 관료 생활을 해 왔다. 그러다가 신병(身病)을 이유로 사직을 청하는 소장을 올려 잠시 관직에서 물러나 몸과 마음을 쉴 기회를 얻는다.

 

   말 한 마디 발 한 걸음 사이에도 영욕(榮辱)이 교차하는 조정에서, 그것도 인사를 담당하는 요직 중의 요직인 이조의 장관(長官)을 맡으면서는 그야말로 매일매일이 긴장의 연속이었을 테고 하루하루가 격무의 시간이었을 게다. 이러한 그의 심정은 그가 사직을 청하며 올린 소장에 잘 드러나 있다. 요직을 맡은 수년 이래로 능력에 비해 과중한 직책을 맡은 탓에 두려움과 분주함 속에서 심신이 모두 지쳤으며, 특히 그해 여름의 무더위를 겪는 동안 설사와 식은땀 등의 증상을 얻어 더 이상 공직을 수행하기 어렵다는 내용이다.

 

   분주히 보내는 시간 속에서 자신만의 세월을 잃어가고 있던 그에게 찾아온 자신과 자신 주변을 가만히 관조할 수 있는 여유는 그래서 더욱 소중했을 것이다. 계절의 흐름도 잊고 오로지 공무에만 몰두하다가 그 시공간을 떠나서 만난 섬돌의 국화와 밭의 토란에서 그는 어느덧 찾아온 가을의 한 조각 모습과 누구에게나 곁을 내어주는 대자연의 넉넉한 정취를 발견하게 된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눈에 들어오는 문자가 보기만 해도 지끈지끈해지는 공문서가 아니라 반갑고 아침저녁으로 오가는 곳이 생각만 해도 지긋지긋한 직장이 아니라 발걸음이 가볍기만 하다. 정원 한 쪽에 있는 네모난 못은 어떠한가. 서늘한 가을비가 가득 차서 열병처럼 쌓였던 스트레스를 시원하게 씻어버릴 만하다.

 

   일과 사람 속에서 밥벌이를 하며 살아가는 지금 사람도 옛사람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생계를 위하여 어쩔 수 없이 생업에 종사해야 하기에 바쁜 일상 속에서 나의 세월이 점점 민멸되어 가고 있지만 우리는 한가한 때야말로 나의 시간이고 그 시간에서만이 내가 원하는 참다운 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마음속 한 자리에 옛 고향집 정원을 아직도 두고 그리워하며 사는지도 모른다. 당장은 가기 어렵지만 언젠가는 그곳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그렇지만 현실적인 한계 때문에 당장은 떠나지 못하니 어떻게 해야 할까?

 

   언젠가 아주 오래 전 외숙부께서 하신 말씀이 있다. 마음에 정원 하나를 그려서 그곳에 나무도 심고 꽃도 심어 아름답게 가꾸라고 하셨다. 그것이 나의 마음을 아름답게 가꾸라는 말씀인 줄로 알고 어렴풋이 되뇌며 살았던 것 같다. 이제 그 말을 내가 여러분께 돌려드린다. 당신 마음에 정원 하나를 그려서 그곳에 나무도 심고 꽃도 심어 아름답게 가꾸시라는 말이다. 그래서 세상이, 사람이 당신을 힘들게 할 때 그곳에 잠시 머물며 나무와 꽃을 구경하고 그곳에 놀러온 벌이랑 나비와 함께 춤을 추시라. 그렇게 한다면 한때는 넉넉히 버틸 수 있는 힘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글쓴이강만문(姜萬文)
한국고전번역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