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과 생각은 실체가 없다 / 해월 스님
인연과 생각은 고정불변하는 실체가 없다.
석가모니는 無常 . 無我의 理致인 因緣법을 가르쳐 주셨다.
이 세상 모든 존재하는 것, 현상은 因과 緣으로 생겨났고,
因緣을 이어가다가 因緣이 다하면 사라진다.
인연에 의해서 생겨난 존재로서 인연에 따라서 일어나는
희노애락애오욕이 삶이다.
인간들의 삶은 인연 속에서 허덕인다.
인연이 무거운 사람, 인연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
인연들에게 묶여있는 사람, 인연에 얽히는 사람,
인연이 버거운 사람, 인연을 푸는 사람,
인연을 즐기는 사람 등등 삶은 이처럼
과거든 현재든 미래든 因緣에서 自由롭지 못하다.
수행자는 과거 인연들에게 아파하지 말아야 한다.
그 어떤 인연들에게 걸려 헤매지 말아야 한다.
수행자도 인연을 否定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인연으로부터 自由스러울 수는 있다.
인연에는 고정불변하는 실체가 없다는
事實을 올바르게 알고 바르게 이해할 때 자유롭다.
외식제연 내심무천 심여장벽 가이입도
(外息諸緣 內心無喘 心如牆壁 加以入道)라 했다.
밖으로는 모든 인연을 쉬고 안으로는
마음에 헐떡거림이 없어서 모름지기 마음이 벽처럼
흔들리지 않고 움직임이 없어야 비로소 능히 道에 들 수 있다.
因緣 즉, 業을 짓는 行爲가 생각이다.
이 세상은 온통 생각의 投影일 뿐인 것이다.
이 世上은 생각놀음, 槪念놀이의 場일 뿐이다.
생각이 일어나서,
생각이 변하고,
생각에 갈등하고,
생각에 울고 웃는다.
생각은 꿈, 幻想, 허깨비, 신기루, 아지랭이, 물거품 그림자 같은 것이다.
생각은 아지랑이, 생각은 물안개,
생각은 外來者, 생각은 분열자, 생각은 差別者와 같은 것이다.
생각은 二重性이다.
수행자는 생각에서 생각으로 생각을 씻는다.
물에서 물로 물을 씻는 格이다.
수행자는 생각을 다스려야 한다.
삶에서 인연 따라서 일어나는 문제를
문제라고 생각하는 그 생각이 문제이다.
생각을 부리는 者, 생각을 부리는 主人이 되어야 한다.
생각을 부리는 主人이 못되면 생각의 노예가 될 뿐이다.
스스로 일어나는 생각을 스스로가 이겨내야 한다.
생각은 본바탕
즉, 存在의 根源에서 생겨나오는 것이 아니다.
生覺은 因緣에 依持해서 생겨나오는 것이다.
因緣에서 생겨나오는 것이 생각이라면
본바탕 즉, 存在의 根源이 道다.
道는 만들어지고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太初부터 본래 텅~비어 있는 사실 그대로 일 뿐이다.
道는 바로 눈앞 지금
여기 텅~빈 바탕 이 자리로 있는 그대로 있을 뿐이다.
如如할 뿐이다.
수행자는 생각에게 걸리지 않는다.
수행자는 생각을 바르게 정견으로 본다.
수행자는 생각으로 부터 自由로워야 한다.
생각이 오고 가면 오고가는 생각을 그대로 두고 볼 뿐이다.
道人이 보여주는 생각은 같은 생각을 보여줘도 같은 것이 아니다.
道人의 생각은 根本이 因緣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道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불교신문
'법문·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삼재라는 것은 (0) | 2021.12.06 |
---|---|
지금 여기서 주인 되어라 / 월호 스님 (0) | 2021.12.02 |
마음을 깨치면 행복을 얻는다 / 청담 스님 (0) | 2021.10.12 |
'염불은 가장 쉬운 참회기도법이다' (0) | 2021.07.17 |
지극한 그리움이 망상을 그치게 한다 / 정목 스님 (0) | 2021.06.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