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건판 궁궐사진 2. 경복궁 2. 경회루,수정전,사정전- 1920년대와 2000년대..
경회루- 국보 제 224호
(문화재 정보센터 자료 인용)
경복궁 근정전 서북쪽 연못 안에 세운 경회루는, 나라에 경사가 있거나 사신이 왔을 때 연회를 베풀던 곳이다.
경복궁을 처음 지을 때의 경회루는 작은 규모였으나, 조선 태종 12년(1412)에 연못을 넓히면서 크게 다시 지었다.
그 후 임진왜란으로 불에 타 돌기둥만 남은 상태로 유지되어 오다가
270여 년이 지난 고종 4년(1867) 경복궁을 고쳐 지으면서 경회루도 다시 지었다.
연못 속에 잘 다듬은 긴 돌로 둑을 쌓아 네모 반듯한 섬을 만들고 그 안에 누각을 세웠으며,
돌다리 3개를 놓아 땅과 연결되도록 하였다.
이때 연못에서 파낸 흙으로는 왕비의 침전 뒤편에 아미산이라는 동산을 만들었다.
앞면 7칸·옆면 5칸의 2층 건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누각건물에서 많이 보이는 간결한 형태로 꾸몄다.
태종 때에는 48개의 기둥에 꿈틀거리는 용을 조각하였으나,
다시 지으면서 지금과 같이 간결하게 바깥쪽에는 네모난 기둥을, 안쪽에는 둥근기둥을 세웠다.
1층 바닥에는 네모난 벽돌을 깔고 2층 바닥은 마루를 깔았는데, 마루 높이를 달리하여 지위에 따라 맞는 자리에 앉도록 하였다.
경복궁 경회루는 우리 나라에서 단일 평면으로는 규모가 가장 큰 누각으로,
간결하면서도 호화롭게 장식한 조선 후기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는 소중한 건축 문화재이다.
수정전(修政殿)
경회루의 남쪽에 있는 건물이다.
편전 중의 하나로 원래 집현전이 있던 자리라 한다.
그러니까 한글이 창제된 연구소였던 셈이다.
세조때 집현전을 파하고 임진왜란 때 건물은 소실,
고종 때 중건하면서 수정전이라고 명명했다.
일제 때는 박람회장으로도 쓰여 졌다고 한다.
(여기까지 수정전)
사정전(思政殿)
근정전의 뒤, 사정문을 지나면 사정전에 들어가게 된다.
(사정문)
(사정문)
(사정전)
근정전의 바로 뒤에 있는 세 전각 중 중앙에 있는 건물이다.
동쪽의 건물이 만춘전, 서쪽이 천추전이다.
다음 문화원형사전에서 인용 :
사정전(思政殿)은 왕이 일상 업무를 보는 편전이다.
앞면 11칸, 옆면 3칸의 33칸 규모로 다포계 양식의 단층 팔작집이다.
태조 4년(1395) 세워졌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 고종 4년(1867)년에 중건되었다.
사정이라는 이름은 모든 이치는 생각하면 얻고 생각하지 않으면 잃는다는 뜻이다.
여기서는 왕이 정사를 보고 문신들과 함께 경전을 강론하고 종친 대신들과 주연을 함께 하기도 하고,
왕이 친히 참석하여 문무 과거를 보이기도 하는 곳이다.
(사정전,만춘전)
(만춘전)
(천추전, 사정전)
(천추전)
(강녕전 지붕과 사정전)
(강녕전의 지붕)
앙부일구(해시계)
당시의 앙부일구는 현재 복원한 것처럼 돌출형이 아니고 매립형이다.
아래 사진을 보면 차이를 볼 수 있다.
(여기까지 만춘전)
계속됩니다-왕과 왕비의 침전인 강녕전과 교태전, 후원인 아미산
http://blog.daum.net/oldpavilion
다음 블로그. '옛정자 그늘'
파빌리언.
(스크랩:O, 개작,변조,상업적이용,출처삭제:X)
'귀한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유리건판 궁궐사진 6. 경복궁 6- 건청궁 - 일제시대와 2000년대... (0) | 2018.02.01 |
---|---|
[스크랩] 유리건판 궁궐사진 3. 경복궁 3. 강녕전,교태전 - 1920년대와 2000년대.. (0) | 2018.02.01 |
[스크랩] 유리건판 궁궐사진 1. 경복궁 1. - 1920년대와 2000년대... (0) | 2018.02.01 |
[스크랩] 悲運의 大韓帝國 王室 (0) | 2018.02.01 |
[스크랩] 경성(京城)이라 불리던 시절의 서울 모습 (0) | 2018.02.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