慶州校洞崔氏古宅
- 중요민속문화재 제27호 -
300여 년 동안 만석꾼을 지낸 조선 최고의 부자였던 경주 최부자집
경주 최부자댁은 신라시대 요석공주가 살았던 요석궁터였는데,
조선시대 경주 최부자가 살게 되면서 300여년동안 부를 누리며
살았던 곳이다. 1700년대 지어진 가옥으로 전한다.
이 곳은 일제시대 독립운동가들의 은신처가 되기도 하고 최부자
일가 또한 독립운동의 주체가 되었으며, 상해 임시정부에 자금을
대기도 했다.
해방후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여 대학을 설립하기도 했다.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를 뜻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집안으로 300여 년 동안 내내 부를 누리면서도, 양반, 상민 할 것
없이 세인들의 공경을 받으며 살았던 경주 최 부자 집안에 관한
이야기중에 가장 인상적인 그 집안의 가훈(家訓)이리라
집안을 다스리는 제가(齊家)의 가훈 '육훈'(六訓)과 자신의 몸을
닦는 수신(修身)의 가훈 '육연'(六然)이 그것이다
경주 최부자댁 家訓
[집안을 다스리는 6敎訓]
1.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의 벼슬은 하지 말라.
2. 만석 이상의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라.
3.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4. 흉년에는 땅을 사들이지 말라.
5. 주변 100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6. 시집온 며느리들은 3년간 무명옷을 입게 하라.
[修身의 6然(行動강령]
1. 自處超然(자처초연) : 홀로 있을때는 스스로 초연하게 지내라.
2. 對人靄然(대인애연) : 타인을 대할때는 온화하게 대하라.
3. 無事澄然(무사징연) : 일이 없을때는 맑게 지내라.
4. 有事敢然(유사감연) : 유사시에는 용감하게 대처하라.
5. 得意淡淵(득의담연) : 뜻을 얻었을때는 담담하게 행동하라.
6. 失意泰然(실의태연) : 실의에 빠졌을 때에도 태연하게 행동하라.
경주 최 부자는 최치원의 17세 손인 최진립과 그 아들 최동량이 터전을 이루고 손자인 재경 최국선으로부터 28세 손인 문파 최준에 이르는 10대 약 300년 동안 부를 누린 일가를 일컫는 말이다. 엄청난 재산을 오랫동안 간직해 온 경주 최 부자의 가문을 일으킨 사람은 바로 마지막 최 부자 최준의 11대조인 정무공 최진립장군이다. 경주 최씨 사성공파의 한 갈래인 가암파의 시조인 최진립은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왜적과 싸우고 나중에 무과에 급제한 뒤 정유재란 때 다시 참전했다. 그 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최전선에서 적군과 싸우다가 순국하니 그의 나이 예순아홉이었다. 평소의 생활도 청렴하였던 최진립은 이렇듯 일생을 장렬하게 마쳤다 한다. 최진립이 살았던 "충의당(忠義堂)" 忠義堂 의 사랑채 대문과 행랑채 본래 최 부자집은 99칸의 대저택이었다. 1970년에 화재로 소실된 사랑채는 근래에 새로 지어졌다. 사랑채에 걸려있는 현판.최 부잣집의 가훈을 함축적으로 표현하자면 중용(中庸)과 의(義)로움이다. 어느 것이든 완벽한 한 가지는 없으며, 좌우에 치우침이 없이 의롭게 산다." 이런 중용의 덕을 뼈에 심기 위한 듯, 마지막 최부자 최준의 祖父 최만희의 호는 "대우(大愚: 크게 어리석음)"였으며, 親父 최현식의 호는 둔차 鈍次: 재주가 둔해 으뜸가지 못함)였다. 용암고택(龍庵古宅)이란 현판글씨는 최진립장군의 14대 종손이며 높은 품위와 忠과 義의 가풍을 잇는 21세기 선비인 충의당(忠義堂) 주인 최채량(崔採亮)의 글씨다. 최채량(崔採亮)의 아호 역시 '어리석은 산(愚山)'이다.
경주시 내남면 이조리에 소재해 있는 최 부잣집의 파시조(派始祖)
100여명의 식객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었다는 경주 최부자 집의 사랑채.
"치우치지 말고, 성급하지 말고, 욕심 내지 않는다.
퇴계 선생의 정신을 계승한 대한민국 유필(儒筆)의 品格이 드러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