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

안동 임청각

선바우1 2018. 10. 19. 22:22



안동 임청각

(보물 제182호)



 

임청각의 역사

건립
1519년 조선중종 때(조선중기) 이명이 임청각 건립

계승
18세기 11대 종손 허주 이종악(1726년~1773년)이 집주인이 됨


독립운동의 산실
석주 이상룡 선생을 비롯하여, 선생의 아들, 손자 등 독립운동가 9명을
배출하는 등 3대에 걸쳐서 독립운동을 한 독립운동의 산실입니다.
석주 이상룡 선생은 경술국치 이듬해인 1911년 1월 전 재산을 처분하여
독립운동자금을 마련하여 만주 망명길에 올라 독립운동기지인 경학사와
신흥무관학교를 세웠으며, 1925년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맡아 독립
운동계 분파 통합을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망명 직전에는 "공자와 맹자는 시렁 위에 얹어두고 나라를 되찾은 뒤에
읽어도 늦지 않다"며 독립운동에 매진할 것을 다짐하였습니다.

또한 선생은 망명 직전 임청각에 있는 사당으로 올라가 신주와 조상
위패를 땅에 묻고 나라가 독립되기 전에는 절대 귀국하지 않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다지기도 하였습니다.
만주 망명길에 오른 2년 뒤인 1913년에는 아들 이준형에게 “조선으로
(국내로) 들어가 임청각을 처분하라”고 하였으며, 그 후 국내로 들어온 아들
이준형이 “임청각을 팔겠다”고 하자, 문중에서 이를 말리면서 독립운동
자금 500원을 만들어 주기도 하였습니다.



일제에 의해 강제 철거

일제 강점기에는 '불령선인'(일제가 불온하고 불량한 조선 사람을 일컫던 말)이

다수 출생한 집이라 하여 중앙선 철로 부설 때 50여칸의 행랑채와 부속 건물이 철거당함.






임청각

임청각은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살림집으로 500년 역사를 지닌 안동의 고성이씨 종택이다.

조선 세종 때 영의정을 지낸 이원(1368-1429)의 여섯째 아들인 영산현감 이증이 이곳에 자리를 잡아

입향조가 되었다. 18세기 11대 종손 허주 이종악(1726~1773)이 집주인이었고

특히 한말 독립운동가 아홉분이 이 집에서 출생한 충절의 집이기도 하다,

특히 석주 이상룡선생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령(국가원수)을 역임한 분이다.



군자정(보물 제182호)



행랑채




















임청각은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살림집 중에서 가장 오래된 집으로
500년의 유구한 역사를 지닌 안동 고성이씨의 종택입니다





























































'전통문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亭子기행] 풍암정(楓岩亭)  (0) 2019.01.15
경상감영공원  (0) 2018.11.23
의성 김씨 학봉종택   (0) 2018.10.19
경주 최부자댁  (0) 2018.07.12
양동마을  (0) 2018.06.02